늦었지만 지금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지난 23일 국방부가 6·25 전쟁 발발 50주년을 맞아 오는 4월부터 그 당시 전사한 국군 장병들에 대한 대대적인 유해발굴 작업을 추진하겠다는 기사를 보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서린 반 세기를 보내야만 했던 유가족들은 물론이고 6·25 전쟁 당시 그들과 전투에 참전했던 성우회 원로 예비역 장성들도 감회의 눈시울을 적시고 있다. 지난날 국방 정책부서에서 근무했던 사람으로서, 자식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한 평생 한을 품고 살다가 대부분 노령으로 작고했을 영령들의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 그지없다.

미국정부는 이미 1985년부터 한국전에서 전사해 북한 땅에 묻힌 미군 유해를 송환하기 위해 북한측과 협상을 벌였고, 1990년 5월28일부터 1999년 6월29일까지 미군 유해 243구를 발굴해 송환했다.

미군 유해송환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미국은 90~92년 송환된 미군 유해 46구에 대해 보상금 89만7000달러를 지급했고, 93년 이후 송환된 162구에 대해서 보상금 200만달러를 지불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은 전사한 군인의 시신을 반드시 가족에게 넘겨주었고, 적진 속에 버려진 아군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또 다른 희생을 무릅쓰고 적진에 뛰어들었다. 전장에 버려진 유해를 발굴하여 이들의 명예를 드높이고 안장시키는 일들은 국가의 일차적 의무였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포연이 자욱한 전장에서 군인들에게 국가를 위해 싸울 수 있는 용기와 자부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지금 시신을 찾지 못한 10만3000여 위의 호국 용사들은 국립현충원 현충탑 내에 있는 봉안소에 위패만 모셔져 있다. 바라건대, 6·25 전사장병 유해발굴 사업이 6·25 전쟁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일과성이거나 전시적인 행사 성격이 돼서는 안된다.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준비 단계부터 발굴 안장 단계에 이르기까지 “내 부모 산소를 이장한다”는 심정으로 정성과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국방부가 밝힌 바로는 금년부터 3년여에 걸쳐 ‘다부동’전투 등 주요 전투지역 58개소를 선정하여 주민의 협조와 증언자를 확보하여 발굴작업을 벌인다고 한다.

차제에 50년 세월에 두개골과 정강이뼈만 남아있을지라도, 유해와 함께 묻힌 군번표나 유류품도 손상되지 않게 주의를 기울이고, 그들과 함께 싸웠던 성우회 원로회원이나 참전자들의 진솔한 자문에 귀를 기울여주기 바란다.

오랜만에 국방부가 내놓은 신선한 국방정책을 추진하는 데는 목적을 위해 임시 조직되는 육군 유해발굴기획단(가칭) 설치보다는, 실질적으로 업무를 추진할 수 있도록 육군의 관련 기존 조직에 임무를 부과하고 인원 보강과 예산 배정을 하여 책임과 의무를 확실하게 하여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라고 사료된다.

숭고한 유해발굴 사업이 유가족의 상처를 비롯한 동족상잔의 비극의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이 나라 안보를 더욱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포성이 쏟아지던 전장의 현장에서 한 서린 날들을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묻혀 계신 호국의 영령들이여, 빛을 보소서.

/윤창로 예비역 육군준장·대한민국 성우회 홍보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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