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산좌담

남북정상회담은 남과 북 양 사회에 이미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 그 파장은 더 넓고 깊게 퍼질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대 이호재(이호재), 연세대 정진위(정진위), 국민대 배규한(배규한) 교수의 좌담을 통해 앞으로의 파장을 중심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종합 결산해보았다.

▲이호재=반세기가 넘는 남북대결이라는 체제가 부서지기까지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놀랍게도 단 한번의 정상회담으로 분위기가 상당히 바뀌었다. 그동안 우리 한민족은 싸우기만 하고 협상을 못한다는 이미지가 형성됐는데, 이번에 이것도 일거에 해소된 느낌이다. 오히려 (협상이) 너무 빨리 갈까봐 다른 나라에서 경계할 정도의 정치적 성숙함을 보였다. 조심스럽게 유종의 미를 거둬야 한다.

▲정진위=세계적으로 냉전이 끝난 지 10년이 지났다. 유일무이하게 한반도만 이념대결, 냉전구조가 존재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냉전구조를 타파하고, 제1단계로서 평화공존체제를 구축할 때가 됐다. 획기적이고 좋은 시작이다.

▲배규한=전쟁위협 감소를 향한 출발점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미래학자들은 정보사회에서는 이념보다는 문화 중심의 민족 단위로 삶이 재편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번 정상회담이 우리도 민족 단위로 재편되는 과정의 출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남·북한도 다원주의에 가치를 두는 방향으로 바뀌어 갈 수 있다.

▲이=지난 반세기 동안 과장해서 말하면 남한은 극우, 북쪽은 극좌노선이었다. 대화와 타협을 모색하는 중도노선은 실제 정치에서는 매몰되곤 했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서 남한에서는 중도노선, 남북협상파가 재조명될 것으로 기대한다. 북한에서도 공산주의 이념에 집착하기보다는 실질을 중시하는 실용주의가 등장할 수 있다. 이 세력이 마주하면 과거와는 다른 정치노선을 모색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정=정상회담을 전후해 동북아 질서도 변하고 있다. 미국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든 반면, 중국·러시아·일본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 정상회담을 통해 평화공존의 틀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새롭게 변하는 동북아 질서에 적응하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이=남북정상회담이 남북 서로에 충격인 것은 분명하다. 북한의 충격이 더 클 것이다. 우리만 해도 햇볕정책, 그 앞서서는 북방정책 등으로 한반도 상황 변화에 대한 어느 정도의 면역성을 갖고 있다. 우리 경제가 북한에 진출해 교류가 활발해지면 북한도 우리 못지않은 충격을 받고, 또 이것이 정치논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우리의 충격도 작다고는 하기 어려운데, 최근에 등장하고 있는 통일논쟁이 그 예다. 이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유도하려면 과거의 반공(반공)교육과는 다른 탈(탈)냉전, 통일지향적인 국민교육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남북이 합치는 것이 민족의 최대 이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김구(김구), 김규식(김규식) 선생의 노선을 재평가·재정립해야 하고, 북쪽도 그런 교육을 해야 할 것이다. 통일지향적인 제3의 노선을 개발해 교육하는 것이 남북정상회담의 충격을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정=정상회담은 획기적인 시작이다. 그러나 정상회담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믿고, 기대하는 것 같은 들뜬 분위기에 젖는 것은 곤란하다. 일부에서는 통일이 곧 이뤄진다는 성급한 기대를 가질 정도다. 정부도 냉각기랄까 좀 차분히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또 언론이나 학자들 모두 냉정해져야 한다. 그런데 정부 당국자들이 “국군포로가 법적으로 없다”, “남북 군축(군축)에 나서겠다”는 식의 발언을 왜 자꾸 하는지 모르겠다.

▲배=외형만 놓고 본다면, 폐쇄된 체제인 북한의 충격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충격과 당혹감은 남한이 더 클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권위는 무오류성이다. 판단은 김정일이 하고 인민은 따라가는 식이지만, 우리는 다르다. 스스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받아온 교육과 오랜 기간 형성된 이미지가 있는데,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한 시기의 언론의 엄청난 보도를 보면서 흔들리고 있다. 지금의 대단한 흥분과 감격은 그 먼지가 가라앉을 때 갈등으로 번질 소지를 안고 있다고 본다.

북한은 세계적인 사회환경 속에서 변하지 않을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고, 김 위원장이 그 노선을 지키려 하는 한 일사불란하게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남한은 현재의 감격이 당장 결실로 연결되기 쉽지 않다. 너무 많은 쟁점이 있다.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의 3단계 통일방안은 과연 정부의 공식방안인가라는 문제부터 납북어부, 국군포로, 주한 미군 등등 모든 내용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갈등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그러잖아도 세대간 이념과 가치관이 다른데, 남북정상회담 후 더 깊어질 수 있다. 과거 정치지도자들이 김정일의 부정적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강화한 부분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 관리나 정치인들이 말하는 내용도 김정일의 이미지를 왜곡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에는 너무 부정적으로 왜곡했다면, 지금은 지나치게 미화하고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이=남북 정상이 합의가 불가능한 것들을 뒤로 미룬 것은 상당히 지혜로운 태도였다고 본다. 주한 미군, 국가보안법, 한·미동맹 문제 등은 지금 체제에서는 타협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에서는 어려운 문제를 모두 들고 나오고 있다. 예를 들면, 주한 미군 문제에 대해서는 왜 분명하게 안 했느냐 하는 식이다. 남북 당국자가 당장 답을 내놓을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한 답을 자꾸 내놓으라고 하면, 과거 냉전시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배=정상회담 후 국민들의 기대 수준이 높아졌다. 어떻게 기대 수준을 떨어뜨리느냐가 앞으로의 관건이다.

▲정=김정일 체제의 북한은 냉정하게 관찰해야 한다. 김정일이 과연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해 답할 수 있기 전에는 신중해야 한다. 김정일이 북한을 휘어잡고 (합의사항을) 실천해 갈 수 있느냐를 지켜보고, 이에 따라 협상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김정일이 한국을 답방할 것인가가 상당히 중요하다. 김정일이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북한 내 여건이 마련됐는가를 측정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건으로 김정일을 영웅시하고, 앞으로 남북관계가 순조로울 것이라고 보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다.

▲이=북한이 어디까지 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김정일이 과연 중국의 등소평 같은 철학을 갖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시대적 요구를 알고, 이에 적응할 수 있는 실용주의적 철학을 갖고 있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김정일의 답방도 너무 서두르지 말고 1년, 2년이 걸리든 좀 두고 보자. 경협 등 남북의 기본문제에 대해 가시적인 결과를 낸 후에 방문하는 것이 의미가 있고 바람직하다. 그저 남북 간의 좋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이번으로 충분하다. 정상회담을 서두르기보다는 공통이익이 있는 영역, 즉 철도 연결, 송전문제 등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배=우리는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 첫째,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다지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 남북관계와 관련한 우리의 인식체계와 정책의 방향은 있는 그대로 현실을 인정하고 출발하는 것이어야 한다. 통일보다 공존을 지향해야 하는데, 중간단계의 연합제가 그것이다. 셋째로는 신뢰 구축이 있어야 한다. 그간 불신의 극단에 있던 남북이 경제협력이나 통신·과학기술 교류 등을 통해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 한민족 인터넷 같은 것도 생각해 볼 아이디어다. 마지막으로 통일교육의 문제다. 어떻게 하면 지배체제가 서로 연합을 할 수 있고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 등을 고민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정=대북(대북) 경협, 특히 북한의 기간산업은 엄청난 돈을 필요로 한다. 우리 경제도 그렇게 여유 있는 편이 아닌데, 단지 이상적 차원에서만 접근하지 말고, 되도록 국회의 동의와 토의를 거쳐 우리의 능력범위에서 경협을 추진해야 한다.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미국 내에는 남북정상회담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과 염려가 공존하는 것 같다. 주한미군 문제는 (북한에) 절대 양보하면 안 된다. 미군은 앞으로도 상당한 기간 한반도에 있어야 하며, 이것이 남북관계 증진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이=양쪽 모두 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현재 우리 내부에서는 대북정책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정쟁화할 가능성도 보이고 있다. 우리 목소리를 하나로 내면서, 이를 대북협상에서 최대화해야 할 과제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조건이나 전쟁가능성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필요하다. 현재의 한반도는 서로가 아무리 군비를 갖춰도 무력대결을 할 수 없는 일종의 ‘포화’ 상태이다. 전쟁이 일어나면 상멸(상멸)한다는 것을 남북이 알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주한 미군은 절대적 조건이라기보다는 상징적인 지원수단이다.

▲정=정상회담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국민적 정서, 군의 사기, 교육문제 등에 대해 장기적 안목으로 착실하게 실천해 나가는 것이 필요한 때가 됐다.

▲배=정치인들은 개인 차원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자신들의 기여도를 알리려는 노력을 자제하고, 김대중 정부의 체제 홍보 차원에서 정상회담을 선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정상회담에 관해 언론도 더이상 센세이셔널한 것만을 추구해서는 안된다.

▲이=남북이 함께 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다. 그러나 북한이 쉽게 변하겠는가. 북한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갖지도 말고,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지도 말아야 한다. 북한이 변화할 수 있는 시간과 조건이 형성되도록 기다리며, 하나하나 점진적으로 냉전의 해체, 그리고 궁극적으로 통일로 가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정리=박두식기자 dspark@chosun.com

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사진=김창종기자 cjkim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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