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디펜스포럼 재단과 제시 헬름스 상원의원이 최근 황장엽씨를 다시 초청하고, 황씨측도 이들에게 미국방문을 희망하는 편지를 또 다시 보냄으로써 현 정부가 이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지금까지 현 정부는 황씨의 방미문제를 둘러싼 논란에서 「신변안전 보장문제」를 이유로 그의 방미를 반대해왔다. 미국정부가 황씨의 신변안전을 보장해야 하며, 그것도 양국정부 간에 합의가 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최근 미국 정부는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국무부 폴 켈리 법무담당 차관보는 헬름스 의원에게 편지를 보내 황씨가 방미할 경우 그의 안전문제를 위해 일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도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황씨가 미국에 온다면 적절한 안전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고위당국자들의 이러한 약속들은 정부가 요구하는 수준과는 거리가 있지만, 미국 정부가 황씨의 안전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낸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번 미국측의 초청목적도 과거와는 차이가 있다. 과거에는 북한의 실상, 구체적으로는 김정일 독재체제의 실상을 듣고자 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미국 테러사태 이후 세계의 주요 관심사가 된 「북한과 국제테러 네트워크와의 연관성」, 그리고 생화학 무기를 포함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것이 가장 중요한 초청목적이다. 미 국무부는 99년도 보고서에서 『오사마 빈 라덴이 북한과 연계가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권력 핵심부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황씨를 초청해 실상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황씨 자신도 미국측에 보낸 편지에서 『국회 정보위에서 북한 권력체계와 북한의 대량살상 무기 현황에 대해 증언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우리의 증언은 미국과 한국이 북한과 협상하는 데 탁월한 소재가 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혀, 북한의 생화학무기에 대한 모종의 증언을 할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 점에서 정부는 황씨 방미문제를 둘러싼 고식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황씨가 미국을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지금 전세계적으로 생화학무기 문제보다 더 중요한 이슈는 없으며, 자유민주국가 시민의 한 사람인 황씨를 무한정 잡아두는 것은 더욱 온당치 않은 처사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