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허버드 주한 미국대사는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대북정책과 관련해 『한국정부와 북한정부는 부시 행정부가 클린턴 행정부와는 다른 고유의 정책을 추진해 가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미국이 처음으로 현정부를 향해 『우리는 일방적 대북유화책을 쓰지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전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출범 후 북한에 대해서는 분명한 목소리를 내왔으나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자제해 왔다. 그런 상태에서 허버드 대사가 한국정부에 대해 클린턴 정부와는 다른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선 것은 김대중 정부의 「햇볕」 추진방식에 대해 중요한 문제제기가 아닐 수 없다. 부시 정부의 달라진 대북정책에 맞춰서 「햇볕」의 방식을 재조정할 것인지, 아니면 클린턴 시대에 맞춰진 「햇볕」 방식을 그대로 밀고 나갈 것인지 현정부로서는 뭔가 입장을 정해야 할지 모른다.

지금까지 김대중 정부의 대북인식은 유화적인 클린턴 정부의 것과 궤를 같이 해왔다. 북한에 대해 일방적으로라도 「선공」으로 나가면 북한이 변할 것이라는 전제였다. 김대중 정부는 그런 기조하에서 부시 행정부 출범 후 줄곧 미국에 대해 「유연한 입장」을 가지고서 북한과 대화에 나서달라고 설득해 왔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김정일에 대해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주민들의 생활개선에 관심을 갖도록 촉구하고 있으나 「김정일은 믿을 수 없는 사람」이란 인식을 갖고 있다. 따라서 북한의 구체적이고 분명한 변화 의지가 보일 때까지 일방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이런 단호함에 비추어 현정부의 대북정책은 불가피하게 내부조정의 과제를 안게 된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