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50돌을 앞두고 학계의 6·25연구가 붐을 이루고 있다.

정치학계의 대표적인 6·25 전쟁 연구자들 모임인 한국전쟁연구회(회장 박두복ㆍ박두복)는 최근 ‘탈냉전시대 한국전쟁의 재조명’(백산서당)을 펴냈다. 또 출판사 다 미디어는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나―한국전쟁의 진실과 의미’를 출간했다.

70년대까지 학계의 연구는 김일성 남침책임론 중심의 전통주의가 지배했고 80년대 들어 미국의 비밀문건이 해제되면서 커밍스와 콜코부부, 스톤과 메릴 등의 저작이 번역되면서 6·25전쟁의 구조적 원인으로서 내전에 주목하는 좌파성향의 수정주의가 유행했다. 수정주의에 반박을 가한 계기는 역설적으로 90년대 들어 구 소련과 중국 등의 비밀자료들이 공개되면서부터였다. 이런 흐름은 당초 수정주의 세례 하에서 이 분야 연구를 시작한 국내의 30~40대 소장학자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수정주의 비판이 과거식의 전통주의로 회귀한 것은 아니라는 게 학계의 지적이다. 이완범교수는 “6·25전쟁은 어느 하나의 이념 스펙트럼에 집어넣을 수 없을 만큼 복합적이라는게 최근 미 러 중 등에서 공개된 아카이브(문서)가 말해주는 진실”이라고 말했다. 냉전 종식과 함께 오히려 6·25전쟁에 대한 객관적 연구의 길이 열렸다. 김명섭 한신대교수는 이를 “냉전의 종식이 6·25전쟁연구의 열전을 촉발시켰다”고 표현했다.

학계에서는 6·25전쟁에 대한 가장 최근의 유행방법을 ‘다국(다국) 사료 교차분석’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전쟁연구회 박두복회장은 “최근에는 미 러 중 일 등에 산재한 1차 문헌자료들을 상호비교하는 다국사료 교차분석법이 유행하면서 완화된 형태의 전통주의와 수정주의가 서로 수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자료가 풍부해지면서 과거보다 이념이나 입장에 덜 좌우되는 것도 주목할 특징이라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다루는 주제도 다양화하고 있다. 노근리 사건처럼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 문제는 이미 공론화됐다. 이에 대해서는 재미사학자 방선주박사가 계속 문헌추적을 하고 있다.

김귀옥 박사는 ‘월남민들의 이주촌’ 문제를 연구하고 있고 나종일 한국밀레니엄연구원장은 ‘한국전쟁기 2개월간 남한에 의한 북한통치’를 연구주제로 삼고 있다. 전쟁기간 북한에 의한 남한통치와 남한에 의한 북한통치 모두 서로에 대해 부정적 영향을 줬다는게 이 분야 연구의 대체적 결론이다.

그밖에 6월10일 한국역사연구회(회장 방기중) 주최 ‘한국전쟁의 재인식’ 학술대회, 13일 서울대 법학연구소(소장 최대권) 주최 심포지엄 ‘6·25의 법적 조명’에서 발표된 ‘1949~50년 38선 충돌과 북한의 한국전쟁 계획’(정병준ㆍ국사편찬위원회)과 ‘한국전쟁기 주한미군사고문단의 조직과 활동’(안정애ㆍ인하대)과 ‘전시하의 헌법체제’(한상희ㆍ건국대), ‘부역자 처벌의 법적 문제’ (한인섭ㆍ서울대) 등도 새로운 경향을 보여준 논문들이다.

/이한우기자 h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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