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구·정치부기자
ginko@chosun.com

북한은 28일 열기로 한 6차 남북 장관급회담을 금강산에서 갖자고 18일 제의했다. 남한 내 비상경계태세가 내려져 있어 불안하니 ‘안전한’ 금강산으로 오라는 것이다.

북한은 똑같은 이유로 4차 이산가족 교환방문도 일방적으로 연기했고, 금강산 관광 활성화를 위한 2차 당국회담과 남북 경협추진위원회 2차 회의도 금강산에서 하자고 했다.

그러나 이번 장관급회담은 북한 지역에서 할 차례이므로 북측이 내세우는 ‘남한 내 비상경계태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작년 두 차례 장관급회담이 북한 지역에서 열렸으며 장소는 평양이었다. 북한이 내세운 ‘안전성’으로 말하자면 금강산보다야 ‘주체조선의 수도’가 훨씬 더 안전할 것이다.

무엇보다 금강산은 당국간 공식회담 장소로는 부적합하다는 게 그동안 세 차례의 적십자회담 등에서 판명났다. 유일한 회담장인 금강산여관은 난방은커녕 온수도 나오지 않고, 심심하면 전기가 나갈 정도로 시설이 낡았다.

지난 1월 3차 적십자회담 당시 촛불을 켜놓고 양측 대표단이 만찬을 했으며, 통신마저 두절돼 서울과 반나절 연락이 불가능했다. 현대 금강산 관광선 외에 정상적인 교통수단도 없다. 속초에서 금강산까지 4시간 걸려, 서울에서 금강산에 가는 데만 한나절을 허비해야 한다.

북측은 이런 곳에 장관급회담 수석대표인 통일부 장관을 오라고 하는 것이다. 북측이 이처럼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 것은 우리측이 “어디서든지 당국회담을 하자면 갈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준 측면이 강하다.

사실 우리측은 그동안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회담이 깨질까 우려해 금강산 회담에 응했었다. 그러나 수석대표까지 배타고 금강산으로 오라는 북측의 터무니없는 요구를 이번만은 일축해야 한다. 그래야 남북회담의 질서를 바로세울 수 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