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요즘 유머에 부쩍 관심을 쏟고 있는 듯하다.

북한 유일의 국적통신사인 조선중앙통신사가 최근 일반 주민들을 위해 세계 각국의 생활유머 모음집인 「세계의 유모아」를 내놓은 데 이어 평양의 인민대학습당에서는 유머를 주제로 강의를 실시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세계 유모아」는 시리즈로 발간될 예정인데, 지난달 말 나온 제1권에는 세계 각국의 재미있는 유머 가운데서 가려뽑은 생활유머 700여 건이 수록돼 있다고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최근호(9·26)가 소개했다. 북한이 유머집을 발간하는 목적은 『사람들이 사업과 생활을 더욱 낙천적으로, 다정다감하게 해나가도록 하고 그들의 사유능력과 웅변능력을 높여주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려는 데 있다』고 조선신보는 전한다.

북한 최대의 국립도서관이자 교육문화센터의 기능을 겸하고 있는 인민대학습당에서는 오는 30일 「사람들의 언어생활과 유모아」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실시한다고 조선중앙TV가 9일 보도했다. 인민대학습당에서는 정기적으로 과학기술분야나 문화예술 등 교양·문화적 주제를 가지고 강의를 실시하고 있는데 유머를 주제로 강의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경제사정이 급격히 어려워지자 94년 12월 평양 중구역에 재담·촌극·복화술·만담 등을 통해 웃음을 선사하는 「웃음극장」을 개관했으며, 이듬해 9월에는 이곳에서 전국 예술인·노동자·사무원·학생들이 참여하는 "전국 웃음극경연"을 개최했다. 96년부터는 각급 공장·기업소와 협동농장 등 생산현장에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는 대형 표어를 등장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실제로 주민들의 삶에서 얼마나 건강하고 신선한 웃음을 자극했는지는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이고 보면 일상에서 시름을 잊고 마음껏 웃을 일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품을 적게 들이고도 삶에 활력를 불어넣는 조미료와 같은 것이 웃음이라고 하면 누구보다도 북한 주민들에게 웃음이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동안 북한 주민들 속에서 통용되는 유머는 뒤틀린 현실에 대한 회의와 조소가 비낀 것이 주류를 이뤘다고 탈북인들은 귀띔한다. 고단한 삶과 메마른 세태의 한 가운데에서 다른 나라의 유머가 북한 주민들에게서 엔돌핀을 끌어내는 두레박 구실을 할 수 있다면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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