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째 붓을 놓고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화단의 대원로, 운보(운보) 김기창(김기창·88)화백은 요즘 두가지 큰 기대로 모처럼 들떠 있다. 어쩌면 그의 생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회고전 ‘바보예술 88년―운보 김기창 미수 기념특별전’(7월 5일부터 조선일보 미술관과 갤러리현대)의 개막을 앞두고 있는 데다, 남북 화해 무드에 따라 북한에 있는 동생 기만(기만·72)씨를 만날 수 있으리란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충북 청원군 북일면 ‘운보의 집’을 최근 찾았을 때, 그는 ‘운보’란 글자가 새겨진 빨간 양말에 회색 모자를 쓰고, 오렌지색 한복에 십자가가 달린 염주를 목에 맨 채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바보예술 88년’ 전시회 포스터부터 보이자, 운보는 입가에 특유의 천진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들 김완(김완·51)씨 수화 통역을 통해 운보는 “포스터에 그려진 ‘십장생’이란 작품은 마음에 안들어 몇번이고 찢어버린 후 완성한 그림”이라고 말했다. 미수(미수)를 기념해 88점의 작품이 전시된다고 설명하자, “나도 꼭 전시회 개막행사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 기념전은 운보 예술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도록에 나온 운보의 작품 4000여점 중 엄선한 88점이 전시된다. 인물 화조 산수 등 다양한 장르에, 30년대 선전(선전)에 출품했던 ‘동자’ ‘가을’에서부터, 50년대 대표작인 ‘예수의 일생’ 연작 중 5점과 ‘복덕방’ ‘보리타작’ 연작, 60년대 500호 대작 ‘군마도’와 70년대 이후의 청록산수, 바보산수 대표작들, 90년대 대걸레로 그린 ‘점과 선’ 등 근작들이 출품된다.

그러나 막상 그림 이야기를 꺼내자, 운보는 손을 내저었다. 붓을 놓은 이후 운보는 그림 이야기는 피한다고 했다. 작업을 중단한 노화백이 쓰러진 후 처음 대형 회고전을 맞는 심정은 그래서 복잡다단할 것 같았다.

96년 쓰러진 후, 운보는 심장질환에 중풍 노환이 겹쳐 요즘은 하루 2~3시간 정도밖에 앉아 있을 수 없다. 연신 흘러내리는 침을 옆에서 닦아줘야 한다. 한때 100kg에 육박하던 몸무게는 63kg으로 줄었다. 그러나 정신만은 또렷했다.

화제를 남북정상회담으로 돌렸다. “이제 북의 동생을 만나셔야죠”하고 묻자, 운보의 첫 반응은 뜻밖이었다. “밖에 누가 없는가 살펴보라”는 것이었다. 아들 완씨는 “북의 작은 아버지 때문에 아버지가 그동안 당했던 고초는 말로 할 수 없다”며, “북한 얘기만 나와도 사람을 잘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운보와 동생 기만씨는 남북한의 정상급 형제 화가로도 유명하다. 기만씨는 6·25 때 월북, 평양미술대학을 나와 공훈예술가가 됐다. 화조도의 대가인 그는 평양 조선미술박물관에 작품 20여점이 소장됐을 만큼 북한서 대화가로 컸다. 90년 이후 화해무드를 타고 주위에선 북경에서 동생과 상봉하도록 주선을 제의했지만 운보는 남과 북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그간 거절했다고 했다. 운보는 “이번엔 쇼가 아니겠지, 그렇다면 당연히 만나야지, 정말 보고 싶어”라고 말했다. 동생 기만씨 그림을 본 적이 있냐고 묻자, 운보는 “수준이 떨어져. 정신이 안 담기고 기교만 있어”라고 혹평을 했다.

그는 “요즘 비디오 보는 게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집안 여기저기 수십개의 비디오가 눈에 띄었다. ‘쥬라기 공원’ ‘이레이저’ ‘데몰리션맨’ 등 액션, 스릴러가 많았다.

이날 운보는 근래 드물게 1시간 30분 가량 방문객과 함께 했다. 운보의 집에는 마라토너 손기정씨, 시인 구상씨, 주영하 세종대 이사장 등 옛 친구들이 때때로 찾아 온다고 했다.

“바보란 덜 된 것이며 예술은 끝이 없으니 완성된 예술은 없다. 그래서 바보산수를 그린다”고 했던 운보. 그의 바보예술 88년이 화려하게 펼쳐질 미수 기념 전시회에 맞춰 분단의 상징과 같이 남과 북으로 갈려 붓을 잡았던 화가 형제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청원=진성호기자 shj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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