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은 한반도와 주변 4강들 사이의 복합적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벌써 한·미·일의 기존관계에 변화를 불러올지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는가 하면, 중국·러시아 등 과거 북한과 특수관계였던 국가들의 대(대)한반도 정책에도 영향을 줘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강의 외교가 더 치열해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한·미·일 공조의 변화 가능성은 미국과 일본 언론들에서부터 제기되기 시작했다. 남북공동선언 1항의 ‘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 언급이 한·미·일 공조 강화와는 다른 방향이라는 듯한 해석을 낳기 때문이다. 남북이 ‘외세(외세)’를 배격하고 관계개선에 주력하면 북한을 대상으로 한 한·미·일 3국의 정책 공조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잖으냐는 것.

특히 미국은 정상회담 이후 주한미군 문제가 현안으로 급부상하는 것을 부담으로 느끼는 눈치다. 워싱턴에서는 이번 정상회담의 파장을 면밀하게 분석,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방안 모색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28일부터 뉴욕에서 재개되는 북한과의 미사일 회담에서 북한의 본심을 파악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그동안 한·미·일 공조를 계기로 동북아 정세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왔으나, 이에 대한 역할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대일(대일)관계에 대한 남북한의 공동대처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외교안보연구원 이서항(이서항) 교수는 “미국·일본의 대(대)한반도 전략에 급격한 변화는 없겠지만,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문제 해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라며 “정부가 이들의 주요 관심사에 대해 소홀히 대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는 남북관계 개선을 계기로 재편될 동북아시아 역학 구조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5월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베이징(북경)으로 불러 남북 정상회담을 비롯한 양국간 협력문제를 깊숙이 논의한 중국은, 남북 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대(대)한반도 영향력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남북한이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다음달 북·러 외교관계상 처음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며, 곧이어 한국도 방문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러시아는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통한 실익보다는 북한과의 긴밀한 관계 재구축으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릴 것으로 관측된다.

정종욱(정종욱) 아주대 교수(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동북아에서 새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강대국의 게임이 시작되면서 중국과 러시아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며 “이런 때일수록 굳건한 한미관계를 바탕으로 변화상황에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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