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남북 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통일의 자주(자주) 원칙(1항) ▲우리측 남북 연합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논의(2항) 등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 문제를 조망키 위해 본사는 16일 오후 백진현(백진현)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김영수(김영수) 서강대 정외과 교수의 좌담을 가졌다.

김영수 서강대교수

백진현 서울대교수

▲백진현=개인적으로 상당히 놀랐다. 우리 정부는 남북 정상회담에 임하면서 베를린 선언 4개항을 이야기했다. 김대중(김대중) 대통령도 취임 이후 통일은 먼 훗날의 일이고, 평화 정착의 계기를 만드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평화정착과 냉전 종식을 강조해 온 점을 비춰볼 때, 이번 선언은 예상 밖이었다.

특히 통일문제를 다룬1·2항에 놀랐다. 북한이 원한 내용으로 이해된다. 우리는 1·2항에 평화정착의 내용이 담기길 원했을 것이다. 북한이 통일문제를 정상회담의 대표적인 화두(화두)로 삼으려 했던 것같다. 정상회담을 부각시키고 선전한 것도 공동선언의 핵심을 통일 문제로 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영수=공동선언 중 1·2항은 가장 중요하지만 구체성은 가장 덜한 부분이다. 공동선언 2항은 접점을 찾는데 목적을 둔 것이다. 하나 하나의 자구에 집착하기 보다는 큰 원칙에 합의한다는 데 더 비중을 두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합의를 김 대통령과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문 이니셜을 따 ‘DJI’ 공조라고 부르고 싶다. 1·2항은 지향점을 만들어놓고 가야 동반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남북관계를 적대관계에서 비(비)적대 관계로 돌려 놓으면 결국에는 하나의 지향으로 수렴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담고 있는 것이다.

▲백=지금 단계에서 남북연합과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공통점을 찾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연합이란 ‘1민족 2정부 2체제’이고, 제도적으로 서로 협력·협의하는 장치를 갖춘 단계가 남북 연합이다. 북한은 80년 고려연방제를 제의했다. 이것이 90년대 들어 지역정부에 더 권한을 부여하는 ‘느슨한 형태’의 연방이라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연방은 중앙정부가 있고 상당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인데, 당장 연방이 어렵다면 본격적인 연방으로 가기 전에 느슨한 연방을 먼저 거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상당부분 남북연합과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역시 낮은 단계든, 높은 단계든 연방제란 중앙정부를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연합제와 다르다.

▲김=우리는 연합을 콘페더레이션(Confederation), 연방을 페더레이션(Federation)이라고 한다. 북한은 연방을 콘페더레이션이라고 쓴다. 아직 용어 조차 통일이 안 된 것이다.

그래서 김 대통령도 남북의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연구·검토해야 된다고 말했다. 문제는 연방과 연합이라는 것은 서로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체제들이 논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비슷한 체제끼리 가능한 것이라는 데 있다. 연방은 정치 우선주의, 연합은 비정치 우선주의이기 때문에 이를 놓고 앞으로 첨예한 논란이 있을 것이다.

▲백=연합과 연방의 차이는 분명하다. 연합은 두 국가를 이야기하고, 연방은 한 국가를 말한다. 남북한은 국가관계가 아니니까 국가연합이 아니고 남북연합이다.

▲김=김 대통령은 교류 협력을 진행시켜 나가다 보면 북한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게 되고 연합단계로 갈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것은 김 대통령의 생각이다. 연합으로 가려면 우리도 내부적으로 복지 제도 등이 보다 확충되어야 한다. 우리는 사회주의의 복지를 받아들이고, 북한은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서로가 살기에 불편하지 않게 되어야 연방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선언에 나온 ‘낮은 단계의 연방’은 합의를 도출해내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북한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여야 연합이 가능하다. 여기에 우리도 복지를 받아들이는 것이 충분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백=공동선언 2항을 보면 절차적으로 미흡한 점이 많다. 우리측 관계자들도 그렇고 언론도 그렇고, 김 대통령의 3단계 통일 방안의 첫단계라고 해석하는데, 3단계 통일 방안은 김 대통령이 과거 개인적으로 만든 안이지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 방안은 아니다.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나, 이런 절차적인 문제는 굉장히 신경을 써야 한다. 김 대통령의 통일방안이 훌륭하다면, 그것이 우리 정부의 통일 방안이 될 수 있지만, 절차를 밟아야 한다. 남측의 연합제안이라는 말이 너무 애매하다는 것도 문제다. 보완 작업이 필요하다. 국체(국체)와도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다. 이번 공동선언은 반드시 국민의 동의를 묻는 절차를 거쳐야 된다고 생각한다.

▲김=현재까지 공식적인 ‘국민의 정부’의 통일 방안은 없다. 평화 공존에 비중을 뒀기 때문에, 현실적인 평화 정착에 신경을 썼다. 통일 방안의 법통을 따지자면 김영삼 정부의 민족공동체 통일방안만 남아 있을 뿐이다. 국민의 정부의 이런 접근은 실용적이었다.

그동안 ‘평화’를 강조하던 정부가 이번 선언이후 ‘통일’을 말하는, 그 간격을 어떻게 홍보할 지 주목한다. 우리의 연합과 북측의 연방의 공통성을 인정한다고 했는 데, 공통점이란 결국 점진적으로 해나가자는 것이다. 그것 밖에 없는데 이런 합의문구를 만들어낸 것만 해도 대단하다.

▲백=북한이 1,2항의 이행을 위해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올 것이다. 김 대통령의 생각을 잘 모르겠지만, 공동선언에 통일 조항이 들어간 만큼 북한이 적극적으로 나올 것임은 분명하다. 지금은 당장 진지한 통일협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북한이 통일 공세를 취해오면 현실 여건을 잘 설명하고, 서둘러서 될 일이 아니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김=1항의 ‘자주’ 문제를 놓고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건 문제가 아니다. 그냥 우리끼리 한다는 정도이다. 오히려 2항의 연방제안이 마음에 걸린다. 91년에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안을 꺼낼 때도 연방을 할 수 있는 그 전제가 외세배격, 주한미군 철수였다. 북한은 연방제라는 캡슐 속에 미군 철수 문제를 담아두고 있다.

▲백=이번 공동선언은 1,2항을 같이 읽어야 한다. 북한의 기존입장에 비춰 볼 때 주한미군, 국가보안법 문제가 들어있다. 북한이 연방제를 말할 때 항상 내세우는 선결조건이 ‘어느 동맹에도 가담하지 않은’이라는 말이다. 후속회담이 개최되면 북한의 입장이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다.

▲김=DJ식 통일 방안은 실용주의적 접근이다. 북한의 연방제와 비슷한 단계를 밟으면서도, 점점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던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 등과도 다르지 않게 됐다는 해석을 받으면서, DJ의 3단계 통일방안은 탈(탈)이데올로기화된 것이다.

▲백=통일 방안은 통일에 이르는 비전을 제시하는 정도로 충분하다. 그것을 현실에 그대로 맞추려 하는 것은 굉장히 비현실적이다.

통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3단계냐, 4단계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통일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의 기본 가치인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에 바탕한 통일이라는 확고한 신념이 통일 문제의 본질이다.

▲김=우리는 이번에 김정일의 새로운 모습을 봤다. 그러나 나는 ‘새로운’ 모습을 봤다고 하지, 변화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달의 앞면만 보다가 뒷면을 잠시 본 격이 아닐까. 점 하나가 아니라 앞으로 두개 세개 이어지는 점을 연결해보아야 (변화 여부를) 알 수 있다.

▲백=통일문제의 자주적 해결이 주변국들의 역할은 전혀 없고, 주변국들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배타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남북 당사자가 해결해 나가면서 주변 4강의 지지를 얻어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한반도 문제의 자주적인 해결을 추구해 나갈수록 외교적 과제는 더 커지게 되고, 외교의 중요성이 더 늘어나는 것이다.

▲김=당사자 원칙 천명은 옳은 일이고, 주변4강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은 이제 고체 상태에서 액체상태로 흐르기 시작했고, 주변 4강의 한반도에 대한 전술도 달라질 것이다. 중국의 역할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확대되고 있고, 이에따라 미국도 달라질 것이다. 푸틴의 러시아도 과거와는 다르다. 바둑으로 비교하면, 이제 다면기(다면기)를 두어야 하는 상황으로 변한 것이다.

▲백=지난주까지만 해도 통일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모두가 통일을 이야기 하고 있다. 지난 일주일간 객관적인 조건이 얼마나 바뀌었는가? 기대나 인식이 현실에 비해 너무 앞서가는 현상은 바람직하지 않다. 앞으로 통일 열풍이 몰아칠 것 같은데 냉정하게 대처해야 한다. 통일이 지고(지고)의 가치가 되고 다른 가치들은 희생되어도 괜찮다는 분위기가 등장할 수도 있다. 통일만 되면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우리의 기본 가치도 타협할 수 있다는 생각이 확산될 수도 있다. 이는 우려할만 하다.

▲김=해방 이후 남북한이 함께 만세를 부른 것은 이번 정상회담이 처음이었다. 97년말 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국민 사기에서 볼 때 일종의 카타르시스같았다. 앞으로는 남북대화보다 남남(남남) 대화(남한 내부의 대화)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분위기는 공동 선언의 성과를 달리 보거나,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안 되는 것처럼 돼 있다. 김 대통령의 지도력이 남남대화에도 발휘되어야 한다. 이번 선언 중 김 대통령이 임기 중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이산가족을 빼곤 많지 않다. 그렇다면 김 대통령 임기가 끝난 후 이 일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래서 남남대화가 중요하다. 공동선언에 모두가 공감하도록 강요하지 않았으면 한다.

▲백=지난주까지 우리는 남북한의 적대적 관계 해소와 평화공존을 고민하다, 불과 일주일만에 이 단계는 뛰어 넘어 통일단계로 왔다. 이 과정에 무리가 있고, 또 작위적이다.

본래의 관심사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의 관심은 여전히 평화공존이다. 남의 관심사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정상회담의 과정에서 여론과 언론의 쏠림 현상을 봤다. 과연 평양 거리의 60만 인파를 자발적인 환영으로 볼 수 있는 것인가. 연출된 환영 행사이고, 현실과 괴리된 것이다. 냉정히 봐야 한다.

▲김영수=통일과 관련, 우리의 사회 심리적 역량이 아직은 미숙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통일 수용지수가 한참 밑에 있다. 하나 하나의 행사에 일희일비하다, 북한의 작은 도발이라도 나오면 다시 ‘빨갱이’라는 말이 금방 튀어 나올 것이다.

/정권현기자 khjung@chosun.com

/박두식기자 ds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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