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된 지 6개월 만에 16일 열린 제5차 남북 장관급회담의 출발은 일단 순조로웠다. 남북 양측은 그동안 합의하고도 이행하지 못한 과제들을 일제히 의제로 내놓았고, 북한은 ‘대화의지’를 과시나 하려는 듯 무려 11개의 의제를 꺼냈다. 그러나 남북은 회담에 임하는 입장 등에 있어 미묘한 차이를 보인 데다, 북한은 개별 과제들을 어떻게 이행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을 제시하지 않아, 실효성 있는 결론을 맺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특히 북측 대표인 김령성 단장은 16일 기조연설 중 70~80%를 이른바 “민족문제의 자주적 해결”을 강조하는 데 할애했다. 김 단장은 지난 6개월간 당국간 회담이 중단된 이유에 대해 “외세와 보수세력의 책동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민족문제를 우리끼리 해결해 나가는 것이 북남 공동선언의 핵”이라고 강조했다. 북측의 목적이 ‘자주정신’의 재확인인지, 미이행 과제 실천 일정 합의인지 분간이 잘 되지 않을 정도였다.

지난 3월 5차 장관급회담을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던 북한은, 이날 그동안 이행되지 못했던 과제 8가지 외에 새로운 과제 3가지를 더 꺼냈다. 이와 관련, 우리 측 회담 관계자들은 “북측이 지난 4차례 회담을 ‘총화(總和)’한다는 생각으로 이번 회담에 임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북측이 11가지 과제 중 남측이 수용하는 것들을 일단 합의하되, 그 이행 과정에서 미국의 강경정책 등을 핑계로,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피해 나갈 여지를 마련해 두려는 양면 전술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우리 정부는 이런 북측의 전술을 감안하면서 동시에 재개된 남북대화의 불씨를 살려나가야 한다는 입장 아래, 북측이 제기한 의제 중 상당부분을 합의하겠다는 방침이다. 북측이 제의한 11가지 과제 중 우리 측이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것은 비전향장기수 송환문제 한 가지다. 전력지원 문제도 그동안 실무협의를 해왔으나, 최근 국내 반대 여론을 감안하면, 이번 회담에서 합의해 주기는 곤란한 사안이다. 우리 측은 두 가지 사안에 대해 “북측이 미이행 과제를 열거하면서 꺼낸 것일 뿐, 이를 고집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측이 새롭게 제시한 남북 상선의 상대측 영해통과 문제는 우리 정부도 ‘남북 해운합의서’ 체결을 구상하고 있는 상황이라, 반대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며, 남북한과 러시아 철도연결과 가스관 통과문제 역시 최근 남북간 이 문제 협의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합의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우리 측 회담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이 밖에 경의선 복원과 도로건설, 개성공단 건설, 임진강 수해방지, 북한 동해어장 공동이용, 태권도 시범단 교환 등도 원칙적 수준에서 합의가 이루어지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산가족 문제는 일단 4차 적십자회담 일자만 확정하고, 구체적인 협상을 떠넘기는 선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측 회담 관계자들은 “북측이 여러 가지 과제들을 제시했으나, 경의선 복원 등 그동안 상당한 수준까지 진척된 사안들부터 이행하자는 데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라며, 비교적 낙관적으로 이번 회담을 전망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이 과거 합의한 사항을 북측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행하지 않아, 다시 합의하는 것이라, 이번 합의 역시 제대로 이행될지는 미지수이다.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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