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국방위원회는 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더불어 마련된 통일건설에 대하여 만족한 생각을 갖고 높이 평가합니다. ”

한 정치인의 연설이 아니다. 북한 노동당의 정치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조명록(조명록) 군 총정치국장이 15일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 주최의 오찬에서 김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행한 연설내용이다. 조 총정치국장은 군 계급으로 따지면 원수와 대장의 사이인 차수다. 북한에 차수 계급을 가진 사람은 상당히 많지만 유독 그의 파워가 돋보인다. 그는 많은 국방위 부위원장들 중에서 제1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각종 행사때 호명(호명)순서인 권력서열도 그는 ‘명예직’ 원로를 제외하면 김정일, 김영남(김영남·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이어 3~4위(홍성남·홍성남 총리를 3위로 분석하는 경우도 있음)다.

그런 그가 군복도 아닌 양복 차림으로 오찬에 참석,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김 국방위원장의 현지지도나 공식행사장에 빠짐없이 군복을 입고 나타난 그였다. “공동선언으로 남북간 화해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군복을 입으면 어색하니 그랬을 것”(한 고위탈북자)으로 짐작되지만 그같은 ‘배려’ 자체가 이례적이다.

김 위원장의 지명에 의해 오찬사를 읽은 그는 “북남 사이에 형식적 장벽이 있고, 군대가 대치하고, 총포도 겨누고 있는 엄혹한 정세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천리혜안으로 민족이익을 첫째로 해, 민족이익과 자주권을 생명으로 지켜 두 분이 도량으로 민족앞에 역사적 결단을 내려주었다”고 공동선언을 평가했다. 그는 “이번에 국방위원회 김정일 위원장과 김 대통령이 뜻깊은 상봉을 하시고, 민족앞에 북남선언을 천명해 통일의 이정표를 세운 것은 온겨레에 기쁨과 희망을 던져주었다”며 “우리는 헤어져도 오늘을 잊지 말고 북남선언을 성의있게, 신의있게 실천하자”고도 했다. 한 통일부 당국자는 “남북한 사이의 군사적 대결상태가 엄연한 가운데 김 위원장이 조 총정치국장을 지목, 오찬사를 읽게 한 것은 군부가 공동선언을 전폭 지지한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며 “그만큼 실천가능성을 높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병묵기자 bm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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