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 통일부 장관 사퇴 문제로 틀어진 DJP가 임 장관 해임 건의안 국회 표결을 앞두고 완전히 등을 돌린 모습이다. 이미 ‘결별’까지 각오한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당초 임 장관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면서 DJP공조는 유지할 뜻을 밝혔으나 김대중 대통령은 이 문제는 DJP공조의 본질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면서 차라리 표결하겠다는 입장을 굳혔고, 김 명예총재도 그러면 건의안을 가결시키겠다고 맞받아쳤다. 피차 임전무퇴의 자세인 양측은 공조 붕괴 이후의 정국까지 언급하기 시작했다.

DJ의 선택은

김종필 자민련 총재와의 공조를 깨더라도 임동원 통일부 장관을 사퇴시킬 수 없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결심은 매우 굳다고 참모들은 말한다. 김 대통령이 1일 민주당 고문단과 최고위원들을 청와대로 긴급 소집했을 때부터 그 징후는 이미 감지됐다.

청와대 관저에서 만찬을 겸해 2시간여 동안 계속된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대통령은 정면대결을 주장하는 최고위원들의 주장을 제지하지 않고 들었다. 최고위원들은 대체로 “햇볕정책은 민족의 장래가 걸린 국민의 정부의 정책근간”이라면서 “임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에서 지더라도 자민련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강경론을 폈다.

고문단 오찬회의에서도 “공조를 한다면서 국회에서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끝내 자민련이 다른 선택을 해서 불행한 결과가 빚어지면 새로운 정치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왔다. 김 대통령은 두 회의에서 모두 “의견이 하나로 모아지는 것 같다. 참고하겠다”고 화답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DJP 결별을 각오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 대통령은 건의안 표결 하루 전인 2일에는 별다른 일정없이 줄곧 관저에 머물렀으나, 참모들은 ‘DJP 결별 이후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를 할 것’이란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청와대 당국자는 “공동정부란 말 그대로 정부를 공동 운영하는 것인데 어떤 경우는 공조를 하고, 어떤 경우는 안 하는 것은 맞지가 않다”면서 “(해임안이 가결되면)매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한 핵심인사는 “해임안 가결은 공조파기가 명백하며, 소수파 정권으로서 이후 국민상대의 정치를 할 수밖에 없고, 야당과의 관계도 재정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인사는 “해임안이 가결되면 자민련 이적의원 4명의 민주당 복귀로 자민련이 원내교섭단체의 지위를 상실하고, 자민련 출신 장관·정부 산하단체장들의 정리와 맞물려, 불가피하게 정치권의 ‘새판짜기’로 연쇄 후폭풍을 촉발하게 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임 장관의 해임건의안이 정계재편의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이 임 장관을 사퇴시키고 DJP공조를 유지하는 손쉬운 길을 놔두고 이처럼 험로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참모들은 “우리도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밀릴 경우 김 대통령 지지세력이 흔들리게 돼 내부로부터의 권력누수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에서의 소수파 전락이 가져올 또다른 권력누수 현상을 막을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는 아직 누구도 자신있게 얘기하지 못하고 있다.
/ 김민배기자 baibai@chosun.com

JP의 선택은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는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을 하루 앞둔 2일 오후 마포당사에서 의원총회를 직접 주재했다. 김 명예총재는 의총과 이를 전후해 당직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솔직담백하게 토로했다.

“투표 안하고 해결 봤으면 했다. 그런데 표결까지 가게 됐다. 안타깝다. 하지만 이제 우리의 뜻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결과가 가든 부든 제 갈 길로 가는 것이다. 그 후로는 공조를 복구하기 힘들 것이다.”

그는 청구동 자택을 찾은 이완구 원내총무에게는 “표결 전 5분발언을 통해 우리의 단호한 의지를 알리는 연설을 잘 준비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 발생 이후 김 명예총재를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있는 정진석 자민련 의원은 “어제 밤까지 격렬한 분노를 토로하더니 오늘은 평소의 담담한 표정을 되찾았다”며 “결심 끝낸 후의 평온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김 명예총재의 결심은 1일 저녁 이미 끝났다. 민주당이 ‘1일 보고, 3일 표결’이라는 한나라당 제안을 자민련과 상의없이 수락함으로써 자신이 내민 악수의 손길을 걷어차 버렸다고 판단하고, 이후 주변 정리와 수하 단속에 나선 것이다.

정황을 종합하면, 김 명예총재는 처음부터 사태가 이렇게 발전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임 장관의 자진사퇴’라는 자신의 ‘중용지도’를 김대중 대통령이 적절한 선에서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 시종 공조유지를 강조했다.

그러나 자신의 의견이 김 대통령에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자, 김 명예총재는 생각을 고쳐잡기 시작했다. 특히 청와대와 민주당 인사들의 발언이 그를 더욱 자극했다. “JP가 단 것 다 빼먹었다”는 한 여권인사의 발언이 실린 신문을 집어던지며 “단 걸 뭘 빼먹었단 말이야”라고 했고, 다른 당직자가 ‘반통일세력’이라고 한 데 대해서는 “그걸 말이라고 하나”라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그는 이번 사태를 자신의 정치적 야망으로 해석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강한 거부감을 토로했다. 1일 의원총회에서 “대망론이다 뭐다 연결시키는데, 나 그런 거 없어. 내가 그런 생각 갖고 이렇게 할 것 같으면 1980년에 벌써 했을 거야”라고 말했다.

김 명예총재는 2일 의원들에게 95년 민자당 탈당 당시를 회고하며 “5명만 갖고도 했는데…” “잘들 생각하시오”라고 했다. 김 대통령과의 결별 이후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당부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 최구식기자 qs1234@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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