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김대중) 대통령을 수행해 북한을 방문했던 대표단은 15일 귀국 후 평양에서의 경험과 소감을 다양하게 털어놓았다.

○…북한의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5일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한 방북 대표단을 위한 고별 오찬석상에서 “서울에 가겠다”고 답방(답방) 의사를 거듭 밝혔다.

오찬에서 박지원(박지원) 문화관광부 장관이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란 대중가요를 부른 뒤 “위원장님, 꼭 서울 오십시오”라고 요청하자 김 위원장은 그같이 대답하고, 박 장관의 노래 솜씨에 대해 “인민예술가 수준”이라고 칭찬했다고 참석자들이 전했다.

김 위원장은 또 자신이 이날 국방위원회를 소집해 대남 비방을 하지 말도록 지시했다는 말을 전하면서 “군대는 가만 두면 늘 주적(주적)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되니, 그러지않게 하자면 일을 시켜야 한다”면서 “경의선 철로 복원사업이 벌어진다면 인민군들을 투입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이번 방북단에 공식수행원으로 다녀온 한 인사는, 북측이 김 대통령을 비롯한 우리 대표단에 대해 김일성 사체가 안치된 금수산 의사당을 참배하거나 주체사상탑을 방문하라는 요청은 처음부터 아예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14일 일정은 원래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단독 정상회담이 오전에 잡혀있고 김 대통령과 김영남(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의 ‘공식면담’이 오후로 잡혀있었으나, 북측이 단독 정상회담을 오전에 하면 시간이 너무 짧다는 이유로 두 일정을 바꾸어, 단독회담에서 두 정상이 충분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방북대표단의 한 당국자는 “14일 만찬 후 헤어질 무렵 김정일 위원장은 김 대통령에게 ‘내일 공항에 나가 대통령을 환송하겠다. 그리고 그 전에 오찬도 모시겠다’고 말했는데, 그것이 김 위원장 일정을 북측이 사전에 확인해 준 유일한 케이스였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김 위원장은 한결같이 김 대통령에 대해 높이 평가했는데 특히 국내 일부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대북(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한 점을 높이 사더라고 전했다.

북한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전 정권들은 우리하고 대화하자고 하면서도 뒤에서는 봉쇄정책을 폈다. 외교할 수 있는 길을 모두 막아 버렸다. 그러나 김 대통령은 우리가 이탈리아, 필리핀과 관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해줬다”고 말했다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이 당국자는 또 북측 관계자들이 “김 대통령이 방북한 것은 용단”이라는 표현들을 많이 썼고, 임동원 국정원장에 대해서도 국내에서 비판을 많이 받으면서도 햇볕정책 전도사 역할을 수행한 점에 대해 잘 알고 친근감을 갖고 있더라고 전했다.

○…손병두(손병두) 전경련 부회장은 김정일 위원장에게서 받은 인상을 ‘판단력이 빠르고, 유머있고, 좌중을 리드하는 능력이 있으며, 예의바른’ 인물로 표현하고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14일 만찬 때 박권상 KBS 사장에게 “나는 남한 방송을 볼 때 KBS를 먼저 보고 다음으로 MBC, SBS를 본다”면서 “역시 우리는 관영(관영)을 먼저 봅니다”는 말로 웃음이 터지도록 했다고 손 부회장은 전했다.

그는 정몽헌(정몽헌) 전 현대회장에게는 정주영(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건강 등 안부를 물은 뒤 “다음 번 방북할 때는 꼭 모시고 오라”고 말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정 명예회장이 방북할 때는 막걸리도 꼭 가져오시게 해달라”고 말했다고 손병두 부회장이 전했다.

○…김재철(김재철) 무역협회 회장 등 경제인 10명을 비롯한 특별수행원 24명은 남북 정상회담의 역사적인 현장을 함께 한 인연을 기념해 즉석에서 ‘주암계’를 조직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병두 부회장은 “특별수행원들이 묵었던 주암산 초대소 이름을 따서 ‘주암계’로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우리 측 특별수행원들은 14일 남북 정상이 5개항에 대해 합의한 사실을 기념해 숙소로 돌아와 밤 늦게까지 축하 술자리를 가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구본무 LG 회장이 가져간 발렌타인 17년산 2병을 꺼내놓고,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숙소 방에 있던 술을 꺼내와 “이렇게 기쁜 날 축하 건배없이 지나칠 수 없다”며 새벽 1시가 넘도록 술을 마셨다고 했다.

○…김재철 회장은 15일 김정일 위원장이 베푼 오찬에서 김 위원장의 누이 남편인 장성택의 권유로 헤드테이블로 가 김 위원장에게 술잔을 권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김 회장이 “남북경제공동위원회를 빨리 가동하자”고 제의하자, 김정일 위원장은 “노력합시다”는 말로 화답했다.

○…한 특별수행원은 북한 사람들에 대해 “탁 털어놓고 말하는 것 같았다”며 “식량은 여전히 문제다” “에너지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세상 많이 바뀌지 않았소?”라는 말을 자주 했고, “신의를 지킵시다” “6·25, 7·27 때 물고 늘어지지 말자”고도 하더라고 했다.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한 고은(고은) 시인은 북측에 대해 ▲남북이 함께 읽을 수 있는 남북 통합의 문학독본을 함께 만들자 ▲북한 시인을 초대해서 남쪽에서 시 낭송 모임을 갖고, 남쪽 시인들이 북한을 방문하자 ▲문학작품의 무대가 됐던 곳을 상호 답사하자는 등의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김창균기자 ck-kim@chosun.com

/서교기자 gyose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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