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남북 축제의 감흥에도 면역되다시피 한 우리를 다시 감동시킨 사흘간의 평양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이제 중대한 역사적 전기를 맞았다. 5개항의 포괄적 원칙 선언만을 두고 이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당장 평가하기는 힘들다. 드러나지 않은 어떤 다른 성과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분단 55년 만에 얻어 낸 이 역사적 기회가 진정한 축복으로 뜻매김될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회담 이후의 남북관계 진전에 달린 문제라는 사실이다. 과거의 남북관계사를 되돌아 볼 때 정작 중요한 것은 회담에서 산출된 선언이나 합의문서가 아니라 그 문서의 운명을 결정짓는 그 이후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회담성과의 평가보다도 회담 이후의 역사에 각인되어야 할 첫 정상회담의 의미와 그 실현을 위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의 규명에 역점을 두고자 한다.

첫째로 강조할 것은, 평양정상회담이 어두운 과거의 남북대화 전통으로부터의 명확한 이탈을 획정하는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과거의 남북대화는 각자의 편의에 따라 합의하고 필요에 따라 파기하는 악습을 남겨 놓았다. 합의란 이행과 실천에 대한 약속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남북기본합의서의 기구한 운명이 말하듯 과거의 대화에서 남겨진 것은 실천 없이 휴지화된 합의문서의 사장(사장)이었다. 이 부끄러운 유습(유습)의 청산 없이는 어떤 새로운 대화의 성과도 전혀 무의미하다. 따라서 과거의 어떤 남북대화와도 차원을 달리하는 이번 평양정상회담이 남북간에 ‘약속의 믿음’을 회복하고 대화 문화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의 계기가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둘째로 이번 역사적 회담을 남북관계 개선의 발전적 계기로 만들기 위해서는 북한의 긍정적 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우리의 내외적 역량 강화가 긴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북한의 변화는 신뢰할 수 있는 한반도 평화구축의 가장 중요한 선행요건이라는 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의 변화를 효과적으로 촉진할 수 있는 성공적 대북정책 운영의 뒷받침은 안으로 확고한 국민적 지지와 안보(안보), 그리고 지속적 경제 성장과 안정의 확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밖으로는 무엇보다도 미국 및 일본과의 공조(공조)를 공고히 유지하는 것이 그러한 성공의 요체가 될 것이다.

정상회담의 위력은 당장 대북정책을 둘러싼 논쟁을 침묵시킬 수 있을 것이나 회담의 후속과정 진전 여하에 따라서는 더욱 첨예한 갈등과 논쟁으로 발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더구나 정상간의 큰 합의를 실무협상 등으로 구체화하는 후속과정이 순조롭지 못하거나 북한의 방편에 따른 태도 표변이 있을 경우 국론분열의 여지는 그만큼 커질 것이다.

또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앞으로 대북 문제의 특수과제에 대한 편중적 관심이 지나친 열기로 확산될 경우, 경제나 안보와 같은 평상적 국정과제에 대한 관심이 그 이상(이상) 열기 속으로 매몰돼버릴 수도 있다는 점을 극력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족적 애정과 열의 없이 민족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러나 정치적 성격이 강한 오늘의 남북문제 해결의 현실과제가 또 다시 순수한 민족주의적 낭만과 신화의 영역으로 되돌려질 수 없는 것 또한 명백하다. 따라서 우리는 정상회담 이후의 대북정책 운영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말한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의 균형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변화 유도를 위해 중요한 것은 이 전환기적 상황에서 동요될 수도 있는 대미·일 공조체제를 재점검·정비하는 과제이다. 이것은 대북정책 성공을 위한 국제적 역량 강화의 문제로서 평양 정상회담을 계기로 대미·일 공조가 분업적 공조로부터 협업적 공조로 전환되는 데서 유발될 수 있는 갈등을 원만히 소화하는 과제이다. 독일 통일의 실현이 일차적으로 서독의 대서방(대서방) 동맹외교의 견고한 기반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새삼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덧붙일 이야기가 있다. 우리 정부는 궁지를 정면 돌파하는 비상한 저력을 이번 정상회담의 극적 실현에서도 유감없이 과시했다. 외국인들조차 경탄하고 있는 이 엄청난 힘도 중요하지만 궁극적 대북정책의 성공을 위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끝까지 목표 실천에 매달리는 지구적(지구적) 집착력이다. 감격적 평양 정상회담이 일과성 행사로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 또한 이 때문이다. / 김 덕 전 통일부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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