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착잡한 林통일- 임동원 통일부 장관이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외교·안보분야 장관 간담회에 앞서 김하중 외교안보 수석과 얘기하고 있다./정양균기자 ykjung@chosun.com

햇볕정책 전도사 임동원 통일부 장관의 거취 문제가 결국 김대중 대통령과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간의 정면 대립 양상으로 발전하고 있다. 김 대통령이 24일 임 장관을 지킬 뜻을 명확히 했으나, 김 명예총재는 자민련 이완구 원내총무를 통해 임 장관 사퇴 촉구 의사를 다시 한번 밝혔다. 마치 진보적 입장과 보수적 입장이 한 정권 내에서 격돌하는 듯한 양상이다.

이 충돌 양상은 구조적으로는 타협점을 찾기가 어려운 형국이다. 김 대통령 입장에선 임 장관을 잃을 경우, 정권의 명운을 걸고 있는 햇볕정책이 흔들리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김 명예총재는 친북 세력이 북한에서 벌인 행태를 용납할 수 없는 입장인 데다, 또 이미 임 장관 사퇴 촉구를 당론으로 발표한 이상 이를 거두고 후퇴할 경우 타격을 입게 된다.

두 사람이 모두 물러서지 않을 경우, 한나라당이 이날 국회에 제출한 임 장관 해임건의안의 표결에서 자민련 의원들이 무더기로 찬성표를 던지게 된다. 그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면 정치권 전체가 격랑에 휩싸이게 된다.

이에 따라 김 대통령과 김 명예총재는 김 명예총재가 일본 방문을 마치고 귀국하는 28일 직후 만나 일단 현실적 타협점을 모색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해서만큼은JP의 결심이 크며 ‘결과’를 보고자 하는 것으로 알려져 DJP 관계가 심상치 않게 돌아갈 전망이다.

강경한 JP

24일 일본으로 출국한 김종필 명예총재는 자기 입으로는 임동원 장관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모든 관련 질문에 대해 “노 코멘트”라며 언급을 피했다. 그러나 방북단 사태에 대해서는 “누가 봐도 지나친 점 사실 아니야. 본인들이 옳게 깨달아줬으면 좋은 일이고”라고 했고, “어제를 소중히 해야지. 요즘은 어제는 다 잘못됐고 자기만 잘한다고 해”라고도 말해, 최근 정국에 강한 불만이 있음을 내비쳤다.

그는 구체적인 질문에는 동석한 이완구 총무에게 답변을 돌렸는데, 이 총무는 “자민련의 입장은 어제 상황에서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단언했다. “야당이 제출한 해임 건의안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게 당 분위기”라는 것이었다. 그는 김 명예총재가 이날 아침 현안들에 대해 보고받은 뒤 “원내 문제는 사령탑인 총무가 소신껏 하되, 공동 정권이 공조한다는 점도 유념해 달라”고 지시했다고도 전했다. 그는 그러나 김 명예총재의 당부의 ‘강조점’은 “소신껏 하라”는 데 있다고 덧붙였다.

자민련은 ‘해임건의안 동의 불사’란 배수진 아래, 이날은 더 강경한 기조로 임 장관의 자진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변웅전(변웅전) 대변인은 임 장관을 향해 “정부를 욕되게 하고 국민을 분노케 했으면 책임을 지는 것이 공직자의 자세다”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하는 처사”라는 등 거친 표현들도 썼다. 이 총무는 “장관 한 명 바뀐다고 DJ의 햇볕정책 근간이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 이철민기자 chulmin@chosun.com

배수진치는 DJ

청와대는 24일 핵심인사들이 총동원돼 임동원 장관 교체론의 진화에 나섰다.
박준영 대변인은 자민련까지 가세한 정치권의 임 장관 교체 요구에 대해 “방북단 일부의 돌출적인 행동은 문제지만 임 장관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다른 문제”라면서 “(임 장관 경질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브리핑했다.

한광옥 비서실장과 박지원 정책기획수석도 나섰다. 한 실장은 “방북허가와 일부의 둘출행위는 구분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고, 박 수석은 자민련이 집권당임을 강조했다.

한 실장은 전날 자민련의 임 장관 교체 요구에 대해 “자민련의 통일된 견해가 아닌 것으로 안다”고도 말했다. 한 실장 뿐만 아니라, 여권내에서는 “김 명예총재의 진심은 아니라고 하더라” “김 명예총재가 자민련 대변인을 질책했다고 하더라”는 등의 소문도 나돌았다. 이로 미루어 자민련 내부에 대해 자민련이 공개적으로 주장하는 것과는 다른 ‘잘못된’ 정보보고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관측도 나돌았다.

청와대가 임 장관 유임을 고집하는 진짜 이유는 임 장관 교체가 곧 햇볕정책의 후퇴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자민련까지 가세한 야당과의 ‘기싸움’에서 질 경우, 실제로 햇볕정책 자체가 심대한 타격을 입게되고, 가뜩이나 남북대화가 정체된 상황에서 북한측이 완전히 돌아서는 상황까지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될 경우 김정일 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더욱 어려워지게 될 것이란 판단이다. 때문에 김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이 문제에서만큼은 절대 물러설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 김민배기자 baiba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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