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지난 16일 전 북한 노동당 비서 황장엽(황장엽)씨에 대해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정치인과 언론인 면담을 금지시키고 외부강연 및 책 출판 등도 금지시켰다고, 황씨가 20일 성명을 통해 주장하며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관련기사 5면황장엽씨는 1997년 함께 귀순한 김덕홍(김덕홍)씨와 공동명의로 20일 언론사들에 배포한 ‘남북통일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성명서에서 “통일문제와 관련한 우리의 글이 일본 신문에 공개된 것과 관련, 국가정보원측이 16일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도높이 비판했다’며 우리의 활동을
북한 개성공단 1단계 사업부지가 휴전선 북방 한계선에서 북서쪽으로 4km 떨어진 개성시 판문군 평화리 근처 경의선 봉동역 남쪽으로 정해졌다. 한국토지공사는 현대아산과 함께 조성하는 북한 개성공단 첫 사업부지 100만평의 위치를 북한측과 협의 끝에 이같이 확정하고 20일 발표했다. 토지공사 김용채 사장은 지난 14~18일 북한을 방문하고 난 뒤 “북한 민족경제협력연합회 및 조선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개성공단 사업에 대해 논의했다”며 “정부로부터 공단 조성 사업자 승인을 받아 내년 상반기중 착공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위재기자
사업차 중국을 드나들면서 조선족을 자주 만나는데, 그때마다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동안 같은 사회주의 체제의 가난한 북한만 보아왔던 조선족들은 최근 부유한 한국인들을 만나면서 또 다른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가졌다고 한다. 그런데 일부 몰지각한 한국인들이 조선족 사회에서 저지른 사기행각 등으로, 이제는 한국인들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 한국과 조선족들 사이에 깊게 파인 감정의 골을 메워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앞으로 ‘조선족’이라는 말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선족은 중국이 쓰는 말인데 우리가 그들을
우리나라 화폐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화폐전시실이 광주에 마련됐다. 한국은행 광주지점은 한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지난 6개월간 전국 각 지점을 돌며 열었던 ‘지역순회 화폐전시회’가 끝남에 따라 당시 전시 화폐를 영구 보관하는 전시실을 설치했다. 화폐전시실에는 세계최초의 금속화폐로 알려진 도전(도전) 및 포전(포전)과 우리나라 최초의 은화인 대동은전, 최초의 기념주화인 대한민국 만년역사 기념주화, 북한의 기념주화 등 희귀 고화폐, 세계 각국의 화폐 등 1280여점이 전시된다. 광주지점은 또 한국은행과 경제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
황장엽씨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위하여’라는 글을 지난 10월에 썼다. 원고지 400장 분량이며 ‘독재와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는 부제가 붙어 있다. 월간조선 12월호에 전문이 실린 이 글에서 황씨는, 북한은 전혀 변화하지 않았으며, 외투를 벗은 쪽은 오히려 남쪽이라고 했다. 연방제는 남한내 친북세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며, 수령 독재체제가 변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북 경제지원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했다. 또 원칙적인 길이 가장 지름길이며, 수령 독재체제를 평화적으로 붕괴시키는 데 대북 전략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했다
국정원이 그동안 자신의 소신을 밝히지 못하도록 여러가지 방법으로 방해를 해왔다는 황장엽씨의 성명은 충격적이다. 그 성명에 따르면 국정원은 현정부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자신의 글을 발표하지 못하게 했으며 언론과의 인터뷰도 막았다는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후 그가 현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한 몇가지 문제에 대하여’라는 견해를 탈북자 소식지인 ‘민족통일’에 발표하려고 했으나 국정원의 간섭으로 그의 이름대신 ‘편집부’이름으로 발표되었다고 한다. 또 지난 10월에는 ‘탈북자 동지회 내부 교양자료’라는 제목의 통일문제에 관
유진벨재단 회장인 스티븐 린튼(한국명 인세반) 박사는 1995년부터 대북 식량 지원 사업을 펼치다가 1997년부터 북한의 결핵퇴치 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금까지 40여 회 방북한 그는 6·15 정상회담 이후에도 세 차례 북한을 다녀 왔다. 일최근에는 북한의 어디를 다녀 왔는가?“지난 8월, 9월 말~10월 초, 10월 말~11월 초에 다녀왔다. 평양을 비롯해 평성의 평남 제3예방원과 평성시 제3요양소, 정주의 하담결핵연구병원, 염주의 제3요양소, 신의주의 평북 제3예방원, 강원도 원산 제3요양소, 사리원의 황북 제3예방원 등을 방문
북한도 입시철이면 전국이 들썩거린다. 학부모들의 교육열도 남한 못지 않다. 자녀를 대학 보내는 데 모든 걸 건다. 대학, 그것도 명문대학을 나와야 출세길이 쉬운 것은 남과 북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대학 진학은 남한보다 훨씬 힘들다. 고등중학교(남한의 중고교를 합친 것) 졸업생의 10% 정도만 대학에 갈 수 있다. 좋은 대학에 많은 학생을 진학시킬수록 명문 고등중학교로 통한다. 졸업반이 되면 공부 잘 하고 집안 배경 좋은 학생들로 따로 1~2개 특수반을 만들어 집중적으로 입시 공부를 시킨다. 개인과외나 학원은 물론 없다.
북한여자의 이름에서 ‘자(자)’로 끝나는 이름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 70년대 이래 대대적인 개명작업으로 없애왔기 때문이다. 이유는 왜풍이라는 것. 북한의 이름짓기 관습은 이제 우리와 많이 달라졌다. 형제자매간에 돌림자를 쓰는 관습은 여전하지만 친족, 성씨간의 항렬자를 따지는 일은 거의 없다. 본관을 따지지 않고 한자이름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이름은 대체로 부모가 짓는다. 남자아이의 경우 강한 느낌을 좋아한다. 그래서 ‘철’자가 많이 들어간다. 한자는 안 쓰지만 대개 ‘쇠 철(철)’로 인식한다. ‘용’ ‘남’ ‘일’ ‘춘’
우리 나라 최북단인 함북 온성이나 무산, 혜산에서는 10월 중순이면 “김장전투”가 시작된다. 북쪽에서 시작된 김장은 점점 남쪽으로 내려와 11월 중순까지는 북한전역의 김장이 거의 마무리된다. 북한에서는 중요한 일에는 ‘전투’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봄에 모내기 전투, 가을에 가을걷이 전투와 함께 김장도 ‘전투’ 반열에 올라 있다. 북한에서 김장은 ‘반년(반년)식량’이라고 한다. 가을부터 다음해 이른봄까지 김치가 거의 유일한 반찬이기 때문이다. 김장철만 되면 온 동네가 배추바다로 변한다.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씻고 양념을 무치느라 온
지금까지 미국에 대한 북한의 일반적인 인식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 원쑤”, “흉악한 제국주의 우두머리”였다. 그러나 이런 표현에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약간씩 어감의 차이가 느껴진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사가 발간하는 ‘조선중앙년감’은 대내문제와 함께 세계 각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분야별 변화상을 소개하고 있는데 북한당국의 공식 입장과 견해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시사점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눈에 띄는 것은 1973년판이다. 연감은 미국의 인구를 소개하면서 “(미국)주민의 90%는 구라파에서 옮겨
북의 동생이 2차 이산가족방문단으로 18일 확정됐지만, 형인 운보 김기창(김기창·88) 화백은 그 며칠 전부터 지병 악화로 중환자실로 옮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패혈증으로 투병 중인 김 화백은 지난 10월 말 북한에서 화가로 활동 중인 동생 기만(71)씨가 2차 방문단에 포함될 것이란 소식을 전해들은 뒤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 자신의 집에서 동생과의 상봉을 기다려왔다. 김 화백은 그러나 지난 5일 패혈증에 고혈압과 하반신 마비증세가 겹쳐 서울 삼성서울병원으로 급히 옮겼으며, 19일 현재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이다. 병원
지난 9월 13일 개막된 ‘제7회 평양 국제영화제’에서 일본영화 6편이 특별 초대 작품으로 상연되었고, 영화제가 끝난 후 평양시내 일반극장에서도 상연되었다고 한다. 초대된 작품은 야마다 요지(산전양차) 감독의 ‘남자는 괴로워’ 등이다. ‘남자는 괴로워’는 무려 48편까지 연작(연작)이 만들어져 기네스북에 오른 화제작이기는 하지만, 일본의 서민생활을 모르고 보면 별로 재미가 없고, 그다지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도 아니다. 그런데 그 많은 일본 영화 중에서 왜 이 작품이 초대되었을까? 아마도 해답은 김일성 주석이 생전에 이 영화의 주인공
남북 영화 교류의 윤곽이 조금씩 가시화되고 있다. 북한 민족화해협의회(위원장 유미영) 초청으로 지난 11일 방북, 7일 간의 일정을 마치고 19일 북경을 거쳐 귀국한 임권택 감독과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문성근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이사장, 이용관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 강우석 감독 등 한국 영화인 10명은 남한의 영화진흥위원회와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를 창구로 남북간 인적·기술적 교류를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포 공항에서 만난 방북단은 “학술 교류와 영화제 교류에서 먼저 구체적 성과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방북 결
북한은 18일 남측에 전달한 2차 이산가족 교환방문단 최종명단(100명)에 1차 교환방문 후보명단에 올랐다가 탈락한 인물 72명을 포함시켰다. 이들 중에는 김영황 김일성종합대학 교수 등 북한의 유명학자와 예술가, 관리 등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남측은 컴퓨터추첨을 통해 방문단을 구성, 눈에 띄는 인물을 찾기 힘들었다. 남한을 방문할 북측의 유명인사는 김영황 교수를 비롯해 김규서 농업과학원 연구사, 김기만 평양미술대학 교수, 김봉회 한덕수평양경공업대학 강좌장, 로승득 자강도 임업연합기업소 자재상사 사장, 림순응 평양외국
“50년 만에 막내동생을 만나면 먼저 끌어안고 펑펑 울고 싶습니다. ” 18일 발표된 이산가족 북측 방문단에 북한 김책공업종합대 강좌장(강좌장) 하재경(하재경·65)씨가 포함됐다는 소식을 들은 남쪽의 형 재인(재인·74·서울 서초구 잠원동)씨는 “살아서 동생 얼굴을 다시 볼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재인씨는 8·15 해방 후 고향인 충북 괴산에서 동생 재경씨와 차례로 상경, 성북동 하숙집에서 함께 지내다 전쟁이 일어나면서 동생과 생이별했다. 재인씨는 그해 7월 학교에 간다고 집을 나선 동생이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요. 북한 영화인들과 수차례 만나 남북 영화교류에 대한 열정을 확인하고, 앞으로 어떻게 교류할 수 있을 지에 대해 폭넓게 논의했다는 게 이번 방북의 소득입니다. ”11일부터 18일까지 북한을 방문하고 19일 중국 베이징을 거쳐 귀국한 임권택 감독은 “조선예술영화촬영소를 방문해 많은 북한 감독 및 배우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며 “북측이 남측 영화인 방문단에 대해 상당히 성의를 보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곳에서 임권택 감독을 비롯한 남측 방문단은 야외 촬영현장을 견학하고, 더빙이나 믹
북한에도 광고가 있다. 물론 ‘북한식’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북한 신문에는 ‘광고’가 등장했다. 노동신문 등과 달리 그나마 주민들의 생활 관련 정보를 조금이라도 담고 있는 평양신문이다. 매일 4개면으로 발행되는 이 신문에는 어떤 상점에 어떤 물건이 들어와서 팔린다는 광고가 실린다. 극장에서 상영중인 영화 프로도 나온다. 좀 오래되긴 했지만 1992년 10월 15일자 평양신문 4면 하단에는 이런 안내광고가 실려 있다. “우리 직매점에는 싸리광주리, 삼태기, 휴지통 등 싸리제품들과 굵은 고무줄 위에 섬유 피복을 씌운 자전거잠바,
판문점 남측 지역 자유의 집 3층 남북 연락사무소 한 구석에는 두 달 가까이 읽지도 않은 국내 일간신문과 경제신문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북한의 노동신문, 민주조선과 교환돼 북으로 올라갈 신문들이지만 북측이 받기를 거부해 ‘대기상태’에 있다. 남북한은 지난 8월 남한 언론사 사장단 방북시 합의에 따라 10월2일부터 판문점 남북 연락사무소를 통해 남한의 10개 중앙 일간신문과 4개 경제신문 각 5부씩 70부와 북한의 노동신문 민주조선 각 35부씩 70부를 교환했다. 그러나 북한은 닷새 만인 6일부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일방적으로 신문
최근 북한 각지에 컴퓨터를 활용한 ‘전자도서관’이 설립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및 내각기관지 민주조선 최근호(11.3)는 “문춘길 동무가 지배인으로 일하는 공장에서 컴퓨터 등 첨단기술을 받아 들여 특색있는 전자도서관을 꾸려놓아 근로자들이 필요한 자료를 마음대로 찾아볼 수 있게 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전자도서관에는 큰 방과 많은 장서가 있지만 그것을 대출해 주는 사서가 없이 방에 설치돼 있는 몇 대의 컴퓨터가 사서일을 대신하고 있으며 컴퓨터로 손쉽게 열람할 수 있도록 실마리어(색인어), 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