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서울서 열린 남북통일축구경기를 지켜본 대다수 국민들은 오랜만에 남북한 젊은이들이 스포츠를 통해 한데 어울리는 모습에서 흐뭇한 감회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남북간에 이런 행사들을 갖는 데 있어 개최 자체가 목적이 되는 바람에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원칙과 가치마저 이랬다저랬다 흐리멍텅하게 만드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이 점에서 이번 남북축구경기때 주최측이 한때나마 관중들이 태극기를 갖고 들어가지 못하게 만류하고 심지어 ‘압수’까지 했다가 다시 허용한 ‘왔다 갔다’ 해프닝은 『무슨 이런 원칙없는 나라가 있나?』하는
일본 축구가 해군학교의 영국인 교관이 쉬는 시간 틈틈이 공을 차게 한 것이 시작이듯이 한국 축구도 제물포항에 정박 중인 프라잉피시호의 해군 병사들이 부두에 내려와 공을 찬것이 시작이다. 하지만 축구를 정착시킨 것은 선교사요, 온상은 미션 스쿨들인 데도 양국이 공통되고 있다. 유교 사상의 영향이 덜한 평양을 중심으로 한 서북 지방이 초기 선교의 텃밭이었고, 일본 선교사들의 텃밭은 고베(神戶)였으며 두 나라 축구의 고장이 이 두 도시인 것도 그 때문이다. 평양의 장로교파 학교인 숭실학교와 안창호 선생이 설립한 대성학교에서 축구를 익힌
지금 북한에서는 언뜻 보기에 상반된 두 가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하나는 주민들의 북한땅 탈출이 봇물을 이루고 있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지도부의 경제개혁 시동(始動)이다. 그러나 실은 하나가 다른 것의 원인이요 결과인 것이다. 주민들이 빈곤과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하는 사태가 가속화하자 북한정권은 더이상 과거의 삶의 방식과 주민생활의 비참상을 방치할 수 없는 막다른 길목에 도달한 것이다. 경제를 살려 주민의 엑소더스를 막아 보자는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이 제시한 길은 ‘사회주의에 기초한 독립채산의 도입과 가격조정’(김용술
오늘 남북통일축구대회가 열리는 서울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는 태극기를 일절 볼 수 없게 됐다. 국기게양대에는 태극기와 인공기(人共旗) 대신 한반도기가 올라간다. 우리 선수들 가슴에도 태극 마크 대신 한반도기가 새겨진다. 관중석에서도 태극기를 사용할 수 없고, 태극기를 갖고 온 관중들은 경기장 입구에서 한반도기와 바꿔야 한다.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북한은 경기장에 태극기가 걸리면 대회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고집했고, 우리 측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의 염원을 담은 행사인 만큼 태극기와 인공기를 모두 배제하자는 취지
지금 중국 베이징(北京) 주재 한국 총영사관에는 약 50명의 탈북자들이 들어와 한국행을 요구하고 있고 이 중 21명이 6일 필리핀을 거쳐 서울에 올 예정이다. 베이징 독일인학교에도 15명이 들어가 있다. 사흘 전에는 12명이 에콰도르 대사관에 들어가려다 중국경찰에 체포되거나 도망쳤고, 열흘 전에는 7명이 중국외교부 앞에서 시위를 벌이다 체포됐다.이러한 현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탈북자들의 집단망명 러시가 이제 분명한 대세로 굳어졌고, 이것은 어떤 물리력으로도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개개인들의 단순한 ‘도주사건’이 아니라 북
서울지법이 1968년 울진ㆍ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나어린 초등학생 이승복군이 무참히 살해당하면서 외친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가 ‘조작’이라면서 조선일보의 명예를 훼손한 김주언 전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에게 징역6월을, 그리고 김종배 전 미디어오늘 편집장에게 징역10월을 선고했다.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이 판결은 무엇보다도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보면 현정권 4년여 동안 휩쓸었던 ‘현대사 비틀기’에 대한 재교정(再矯正)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데에 이 판결의 또 다른 의
“일본이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선수가 되는 것은 한국에 ‘양날의 칼’과 같다.”일·북 정상회담 발표 후 한 외교전문가가 건넨 말이다. 양측은 1989년 다케시타 당시 총리의 북한에 대한 ‘과거사 사과 표명’을 시작으로 국교정상화 협상에 착수했다. 1990년 가네마루 당시 부총리와 북한 노동당 사이에 ‘국교 정상화와 과거 배상’을 명기한 공동성명이 발표됐고, 정부 간 교섭은 1992년 11월까지 8차례 벌어지며 급진전되는 듯했다.여기에 ‘찬 물’을 끼얹은 것이 ‘이은혜 사건’이다. 1987년 대한항공기 폭파범 김현희 조사에서
중국 경찰이 조선일보 베이징(北京) 지국에 사전통보나 영장도 없이 한밤중에 무단으로 진입해 가택수색을 벌이고 특파원을 심문한 일은 현대 국제사회의 척도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합법적 절차를 무시하거나 도(度)를 넘어 지나치게 행사하는 공권력은 폭력과 다를 게 없다. 중국 경찰은 밤 11시30분에 7명이 들이닥쳐 2시간 동안 집과 사무실을 마구 뒤적였다. 영장 제시도 없었다. 특파원에게는 인적사항과 이주신고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었고, 특파원 가족들도 공포에 떨어야 했다.중국 경찰은 심야 가택수색의 이유도 분명하게 밝히지
일본정부가 어제 발표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평양 방문 및 일·북 정상회담 개최는 일반의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 전개다. 지난 7월 이후 일·북관계가 일정한 탄력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했지만, 공식 외교관계도 없는 상태에서 일본총리가 평양을 방문한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정상회담이 갖는 정치적 상징성과 위험을 감안할 때, 일·북 간에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비밀 협의가 진행되어 왔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당연히 제기되는 의문이 일·북간에 오고간 협의 내용이 무엇이며, 그 과정에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 경협추진위원회가 4일간의 서울회담 끝에 30일 내놓은 합의사항들은 현재의 남북관계에서 추진할 수 있는 경제분야의 실질문제들을 거의 망라하고 있으며, 향후 추진일정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데 이르렀다.물론 아무리 구체적 표현으로 만든 남북간 합의일지라도 북측의 일방적 계산과 트집으로 어느 한 순간에 뒤집혀 온 것이 그동안의 경험이었고, 이번 합의 내용들도 대부분 옛것의 재탕 삼탕이라 “이번만은 틀림없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분명한 근거는 없다. 다만 지금 북한은 내부적으로 체제운명을 걸다시피 한 이른바 ‘경제관리 개선조
한국을 방문중인 존 볼턴 미국 국무부 차관이 전달한 부시 행정부의 메시지는 일관되고 분명하다. 북한은 핵·생물무기 같은 대량살상무기(WMD)와 미사일을 개발·수출하는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정권이고 “미국은 이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이는 지난 2월 방한한 부시 대통령이 밝혔던 것과 같은 내용이다. 볼턴 차관은 또 “북한을 ‘악의 축(軸)’이라고 규정한 것은 수사학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부시 미국 정부는 현재 외교안보팀의 역량이 총투입돼 있는 이라크 후세인 정권 처리문제가 일단락되면, 어떤 형식으로든 북한의 WM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태극기와 북한 인공기(人共旗)의 사용범위와 위상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남북관계의 변화 속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어떻게 유지·확립해 나갈 것인가 하는 근본적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그만큼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다. 태극기는 ‘한민족’보다는 ‘대한민국’의 이념과 가치를 담고 있는 최고 상징물이며, 그 어떤 편의적 목적을 위해 간단히 내팽개칠 수 있는 종속물이 아니다. 또한 아시안게임은 민족단위가 아닌 국가단위로 참가하는 행사이며, 더구나 대한민국은 이번 대회의 주최국이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최초의 전화번호부는 191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로 13㎝, 세로 19㎝ 크기의 이 전화번호부는 경성·인천·용산의 3개 우편국에 등록된 4000여개의 전화번호를 관공서 관리 등 43개 분야로 나누어 싣고 있다. 전화번호는 한 자리에서 네 자리까지이고, 이완용의 번호는 464였다. 일반인 중에는 극장·양복?ㅐ슬컨?등을 소유한 재력가들과 일본상인들이 많다.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지금도 북한에서는 전화번호부가 일반인들은 가질 수 없는 일종의 비밀문건으로 돼 있다.
김창기/국제부장 changkim@chosun.com미국 국무부에서 핵무기와 미사일의 비확산 문제를 담당하는 존 볼턴(Bolton) 국무부 차관이 28일 서울에 왔다. 흔히 강경파로 알려진 그가 29일 한국의 정부 인사, 언론인, 학자, 재계 인사 등 100여명을 상대로 미국의 대북 정책에 관해 연설할 예정이어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주목된다.그는 한국에 오기에 앞서 26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언론인 10명과 대화의 자리를 가졌다. 한 시간 동안 진행된 문답의 3분의 1 가량이 북한 문제에 할애됐다. 볼턴은 요컨대, 북한의 무기 확산
/경희대 평화복지대학원장·전 유엔대사제네바에서 열렸던 유엔 인권소위원회(7.28~8.16)는 「난민의 국제적 보호」라는 의제하에 중국 내 탈북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중요한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유엔의 인권기구가 탈북자 문제에 대하여 결의형식으로 작년에 이어 공식입장을 표명했다는 점은 실로 그 의의가 크다. 올해 인권위 토의과정에서 중국과 북한 대표는 중국에는 ‘탈북자’가 없고 오직 ‘경제적 유민’만이 있을 뿐이므로 1951년도 난민협약상의 피난민은 없다는 반론을 제기했고, 특히 북한대표는 탈북자 문제가 한국 정부의 조작이라는
탈북자 7명이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시위를 벌이며 난민신청서를 공식 제출하기 위해 외교부에 들어가려다 전원 체포당한 것은 자신들의 절박한 처지를 세계에 알리려는 처절한 외침이다.이들의 시위는 중국정부에 탈북자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외국공관 등을 통한 우회적인 방법이 아니라 정공법으로 당당하게 중국정부가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인정해 줄 것을 행동으로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자유를 찾아 북한을 탈출했다고 밝히고, 북한에 송환될 경우 북한 형법 47조에 의해 처벌된다고 호소했다. 이 조항은 ‘공
朴勝俊한·중(韓中)수교가 24일로 10주년이 됐다. 우리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10년이면 한 사람의 인생이 변하고, 30년이면 한 나라의 운명이 변한다”고 말한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살림살이가 중국보다 조금 낫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 차이는 크게 줄어들었다. 요즘 추세대로라면, 중국사람들의 말대로, 앞으로 20년 뒤 두 나라 살림살이 우열은 뒤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10년 전 베이징(北京)거리에 한국사람들이 나서면 옷차림만으로 중국사람과 금방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어제 5박6일간의 러시아 극동지역 방문을 마치고 귀로에 올랐다고 한다. 우선 의아한 것은 왜 하필이면 러시아 극동지역에서 경제개혁의 모델을 찾고자 하느냐 하는 점이다. 푸틴 대통령은 23일 김정일과의 정상회담 후 언론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은 러시아가 한반도 안정에 대해 지속적 관심을 갖는 것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결국 한반도 상황에 ‘러시아 변수’를 적극 끌어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셈이다. 북한 지도부가 진정 북한이 현재의 정?ㅀ姸─ㅏ倂냅?고립에서 벗어나길 희망한다면, 러시아 변수에 의존하기보다는 한·미·
오늘은 한·중(韓·中) 수교 10주년이 되는 날이다. 외형상 지표로 나타난 한·중 관계의 발전과 성장은 놀라울 정도다. 냉전(冷戰)구도가 갈라놓았던 반세기의 벽을 뛰어넘어 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다방면에서 가깝고도 중요한 이웃으로 발전한 것이 지난 10년의 성과다.이제 한·중관계는 외형적인 성장에 걸맞은 질적(質的)인 발전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최근 들어 한·중 관계는 탈북자 처리 문제부터 무역·어업 분야까지 곳곳에서 갈등과 마찰을 빚고 있다. 한·중 간 연간 방문객 수만 200만명을 넘는 상황을 감안할 때 어느 정도의 갈등
북한이 부산 아시안게임 개회식과 폐막식에서 남북한 선수단이 한반도기를 앞세워 동시 입장할 것을 요구해 정부가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정부가 크게 고민할 일이 아니다. 대회 개최국으로서 태극기를 포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태극기는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체성, 그리고 건국이념과 가치를 상징하는 존재다. 남북화해라는 명분만 앞세우면 언제 어디서나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그런 장식물이 아닌 것이다.2년 전 시드니 올림픽 때 남북한이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동시 입장한 전례가 있지만, 이번은 대한민국이 주최국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