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海賊)에 낭만적 이미지를 심어준 것은 뭐니뭐니 해도 로버트 스티븐슨의 명작 ‘보물섬’이다. ‘보물섬’의 키다리 존 실버는 해적의 삶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그들은 거칠게 살고 교수형도 감수하지만 싸움닭처럼 호기롭게 먹고 마신다. 항해가 끝나면 그들의 호주머니는 수백 파운드의 돈으로 두둑하다. 그 돈의 대부분은 럼주(酒)를 마시고 즐기는 데 쓴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바다로 나간다.” 꽉 짜인 일상에 갇힌 도시인이라면 누가 이런 자유를 꿈꾸지 않겠는가.▶해적하면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보물지도, 금은보화, 목발, 앵무새, 안대
북한의 핵시설 재가동 공언으로 고조된 한반도 안보위기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를 놓고 이회창 후보와 노무현 후보가 분명한 방법론상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은 대선(大選) 마무리 국면에서 뚜렷한 쟁점으로 부각될 만한 소재다. 문제는 양측의 논쟁이 각자의 철학과 원칙, 구체적 해법을 심화 발전시켜 나가기보다는 다분히 선거전략적인 수사학으로 일관해 마치 우리 내부를 둘로 쪼개놓는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이 후보가 북한에 대해 보다 원칙적이고 단호한 대응을 강조하면서 현금지원 중단을 촉구하고 있는 반면, 노 후보는 가급적
대한민국의 안보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외부적 요소는 크게 볼 때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변수가 지금 지극히 불안정하다. 따라서 한국의 안보 역시 불안한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 다음 5년을 결정지을 중대한 선거를 치르고 있다.국민의 결정이 안보의 향배를 가를 것이다. 북한이 핵시설을 재가동키로 해 상황은 94년 이전으로 되돌아갔다. 북한은 말로는 핵발전(發電)을 얘기하지만 세계가 우려하는 것은 핵폭탄이다. 북한은 이제 거리낌 없이 핵폭탄을 만드는 길을 열고 있다.
북한은 끝내 한반도를 핵위기로 몰아가려고 하는가. 어제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지난 94년 미·북 제네바 합의의 파기를 선언했다. 지난 8년여간 북한 핵개발을 막아온 마지막 안전장치를 제거하겠다고 밝힌 것이다.도대체 북한이 어떤 속셈으로 지금 이 시점에서 제네바 합의 파기를 선언했는지는 선뜻 이해가 되지 않지만,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은 분명하다. 북한의 핵개발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국제사회의 의지는 단호하다. 이는 단지 부시 미국 행정부만이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의 결의라고 할 수 있다. 극적인 상황 변화가 있지 않는
김태우/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지난 9일 미국 해군이 스커드 미사일들을 실은 북한의 상선을 붙잡아 검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은 미사일들이 예멘 정부가 수입하는 것으로 테러세력에 넘어갈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확인한 후 이 선박을 풀어주었다. 이렇듯 사건은 신속히 일단락되었지만 그 의미는 심상치 않다.첫째, 이번 사건은 아미티지 보고서 등이 예고했던 해상차단작전(MIO)을 미국이 실행한 것으로 향후 북한에 대해 어떤 태도를 견지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강력한 반테러 정책과 단호한 대량살상무기 반확산 정책을
북한정권은 정말 신뢰할 수도 없고 이해하기도 힘든 집단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 준비가 한창인 상황에서, 중동지역에 스커드 미사일을 수출하겠다고 나선 북한의 무모함에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결국 북한정권은 겉으로는 번지르르한 평화 공세와 선정·선동을 펼치지만, 뒤로는 핵을 개발하고 미사일을 수출하는 국제사회의 난폭자였다는 사실이 어제 예멘 인근해양에서 10여기 이상의 미사일을 탑재한 북한 선박이 나포된 사건을 통해 재확인된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북한이 ‘악의 축(軸)’이고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주장을 반박하기도 힘들게
金炯燦/미국 서부워싱턴주립대 교수·고려대 북한학과 객원교수16대 대통령선거 시기에 고국에 와 여러 가지 사회상을 목격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해외동포 학자로서, 특히 북한을 40년 동안 연구한 학도로서 이번 선거에서 제일 중요한 이슈의 하나가 새 정부가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계속 유지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새 정부가 현 정부의 정책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정책이 국가에 가져다 준 득(得)과 실(失), 그리고 국민의 바람에 비친 허(虛)와 실(實)을 자세히 분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작업은 먼
李犀(이서)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후보의 공약이 연일 쏟아지고 있지만 올 한 해 국내외 언론을 뜨겁게 달궜던 탈북자 문제에 대한 공약을 접하기는 어렵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원론적이고 추상적 수준의 언급에 그치고 있다. 탈북자 문제는 현 정부의 햇볕정책 5년을 평?ㅉ釜뵉構?새로운 정책을 추진해 나갈 다음 정부의 실력과 도덕성을 평가하는 데 더없이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문제는 한국의 외교적 위신과 관련돼 있다.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운동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욱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미국·일본·유럽의 지식인
10년간 함남 요덕 15호 수용소(위장명칭 조선인민경비대 2915군부대)에서 지냈던 기자가 10년 전 남한으로 올 때 가졌던 바람은 딱 한 가지였다. “남한에만 가면 북한의 수용소에서 자행되고 있는 처참한 인간말살 행위를 전 세계에 폭로하고 그곳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당시 안전기획부의 조사과정에서 인공위성 사진인지 그림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요덕수용소 자료를 확인하는 순간 이제 수용소 실상이 세계에 알려져 수감자들에게 자유가 주어질 것이란 기대감에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비밀사항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국민통합21의 정몽준 대표가 “(노무현 후보와의) 선거 공조에 관한 우리의 책임을 다하려면 대북정책에 대한 의견 조율이 먼저 있어야만 한다”며 노 후보의 대북정책 변경을 요구했다. 엄격히 말하면 철학과 정책에 있어 너무나 상이한 시각을 가진 두 사람의 단일화 협상은 이런 차이를 먼저 해소한 뒤에 하는 게 일의 순서였다.때늦은 감은 있지만 본격적인 선거 공조를 앞두고 정 대표측이 첫 정책 조율 대상으로 ‘대북정책’을 꼽은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후보 단일화의 완성을 위해 불가피한 과정이다.대북정책은 두 사람의 견해 차이가 가장 컸던 영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작업을 포함해 군사분계선(MDL)을 넘는 모든 행위는 유엔사의 사전승인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제임스 솔리건 유엔사(司) 부참모장의 발언이 논란을 빚는 것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 발언을 놓고 마치 미국이 남북교류에 제동을 걸기 위해 공연한 트집을 잡고 있는 것인 양 하는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고 한다. 어쩌다 한·미 동맹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답답할 뿐이다.그러나 솔리건 부참모장의 발언은 우리의 엄연한 안보현실을 그대로 적시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남북교류가 왕성하게
李革宰/국제부 차장대우 elvis@chosun.com 북한에 납치됐던 일본인 중 5명이 지금 일본에 귀국해 있다. 원래 지난달 말 북한으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여전히 머물고 있다. 그들이 요즘 일본의 최대 화제다.피랍(被拉) 일본인의 귀국을 지켜본 우리의 납북자 가족들은 “일본 정부는 자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는데…”라며 우리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그런 모습은 “한국이 부러워한다”는 식으로 일본 언론에 보도됐다. 일본 정부에 대해선 “종군위안부라는 역사의 죄악을 망각한 채…”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그에 앞서 우선 일본 정
朴斗植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종종 “똑바로 쳐다봤더니(look in the eye)…”라는 말로 상대방을 평가하곤 한다. 상대의 눈 속을 꿰뚫듯 응시하는 ‘부시식(式) 관심법’인 셈이다. 세계 정상(頂上) 가운데 이 테스트를 통과한 인물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고이즈미 일본 총리다.고이즈미 경제개혁에 관한 비난이 쏟아져도 부시는 “그의 눈에서 개혁의지를 발견했다”고 일축한다. 전직 소련스파이 출신인 푸틴에 대해서도 “그의 눈을 들여다보고 믿을 만한 친구로 여기게 됐다”는 대답이다.일단 부시 ‘관심법’을 통과하면 그 나라의 세상
金明燮대학시절 정문에서 시위를 벌이다 뒷산까지 쫓기면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진 돌기둥 하나가 우리를 맞아 주었다. “소년은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시멘트가 채 마르기 전에 누군가가 써넣은 듯한 이 말 한마디는 전경 군단이 쏘아대던 페퍼포그보다 더 우리의 눈시울을 붉혔다. 그 ‘소년’이 이른바 386이 되고 486이 되었으며, 진보의 중견도 되었다. 그리고 그 세월과 함께 내일에 대한 소년의 꿈도 이루어져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구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구하는 것과 같다”던 외국 언론의 오만도 우스개
중국 공산당이 당헌에서 ‘공산당 선언’이란 문구를 삭제했다고 한다. 만약 지구상 유일한 공산주의 대국을 붉은 용에 비유한다면 ‘공산당 선언’은 그 용이 물고 있는 여의주가 아니었던가. 이제 그것을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3개 대표이론’으로 대체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포린 팔러시’라는 잡지가 21세기 들어 ‘역사의 쓰레기통’에 내던져진 사상 6가지 중 첫째로 마르크시즘을 꼽은 게 엊그제였다. ▶헤겔은 ‘법철학’ 서문에 이렇게 썼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어두워질 무렵에만 날개를 펼친다.” 마르크스는 1848년 1월 브뤼셀에서 ‘공
朴勝俊 때는 1971년 10월 22일 오후 4시15분부터 오후 8시28분까지였다. 장소는 중국 베이징(北京)의 인민대회당이었다. 마주 앉은 사람은 헨리 키신저와 저우언라이(周恩來)였다. 키신저는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의 안보담당보좌관이었고, 저우언라이는 마오쩌둥(毛澤東) 아래의 총리였다. 나중에 세계를 주무른 외교전략가로 평가받은 키신저와 저우언라이 두 사람이 이날 4시간 넘게 마주앉아 주고받은 이야기의 절반 가량은 한반도 문제였다. 원래 백악관 1급비밀(Top Secret)이었다가 30년 만인 작년 4월에 비밀해제되고, 조
정세현 통일부장관이 엊그제 미국 뉴욕에서 가진 한 연설에서 “북한이 우리와 함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전을 모색함으로써 남북이 공존 공영하길 원한다”고 밝혔다.남·북한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방향으로 체제통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언급 자체를 반대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불과 며칠 전까지 같은 정부에 속한 외교부 대변인의 반박 성명까지 들을 만큼 ‘햇볕 전도사’를 자임했던 정 장관이 갑자기 북한의 ‘체제 변화 필요성’을 언급하니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이같은 언급이 정부 내 의견 조율을 거친 것인지, 아니면 정 장관이 그간 감춰온 소
정몽준 후보의 현대전자 주가조작 개입 의혹을 제기한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돌연 귀국한 배경을 놓고 일각에서는 설왕설래가 분분하다. 2년 넘게 외국에 가만히 있다가 어째서 대통령선거를 한 달밖에 안 남긴 시점에 갑자기 들어왔느냐 하는 것이다.그러나 우리로선 현 시점에서 그의 귀국을 그런 특별한 선입견이나 특정한 입장에 서서 예단하고 싶지 않다. 그보다는 그가 도쿄와 로스앤젤레스에서 잇따라 제기한 주장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그가 주장한 것이 만약 사실이라면 대통령 후보로서 정몽준씨의
崔普植/사회부 차장대우 congchi@chosun.com 김수영(金洙暎)의 시에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던 것에 분개하고…’라는 구절이 있다. 정말 분개해야 할 대의명분 앞에서는 가만히 있고, 일상(日常)에서 쩨쩨하게 5원, 10원 잔돈푼이나 따지는 자신이 싫었던 모양이다. 쩨쩨함의 절정(絶頂)은 시일이 흘렀는데도 그런 잔돈푼을 잊지 않은 채 머릿속에 담아두는 데 있다. 이제 몇몇 담대한 세인의 기억에는 멀어졌을 테지만, 현대전자(하이닉스)가 200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다음달부터 대북 중유(重油)공급을 중단키로 결정한 것은 대북 압박 조치의 첫단계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강경 대응을 할 경우 대북압박의 강도는 더 높아질 것이고, 자칫 본격적인 핵(核) 위기로 발전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일단 대북 압박에 들어간 이상 한·미·일은 치밀한 계획 아래 북한 핵문제를 조기에 평화적으로 매듭지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튼튼한 한·미·일 공조다. 이번 중유중단 결정과정에서 드러난 일련의 혼선과 불협화음이 두 번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