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다음달 2∼4일 평양 남북정상회담 기간에 북측의 아리랑공연을 관람키로 한 것은 향후 남북간 상호 신뢰 차원에서 `징검다리'로 삼기 위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아리랑공연 관람 시기는 방문 둘째날인 3일 밤 우리 측이 제공하는 `답례 만찬'이 끝난 뒤 이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도 노 대통령과 함께 공연을 관람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된다.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은 27일 오전 브리핑에서 북측의 아리랑 공연 관람 제의를 수용한 배경에 대해 "남북관계 발전의 기본은 남북이 상호 인정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세가지 수용 이유를 밝혔다.

우선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우리 측이 올라가는 `손님'이 되고 북한측이 접대를 맡는 `주인'격이 되는데 북측이 접대하는 차원에서 제기하는 문제여서 긍정적으로 검토했다는 것이다.

특히 백 실장은 이번 회담이 민족발전이란 관점에서 한단계 `레벨-업'하는 수준이 돼야 하고, 그렇게 하려면 기본이 남북이 상호 체제를 인정, 이해하면서 그 바탕에서 협의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여기에는 지난 2000년 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에 대한 인식의 질적 변화가 있었지만 아직도 남북간에는 `냉전적 사고'가 잔존해있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세번째는 명분보다는 실리에 접근하자는 `실용적' 사고다.

백 실장은 "아리랑 공연이 북한 체제를 선전하는 것이라고 해서 거부하면 북에 가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나중에 다음 정상회담이 서울서 열렸을 때 남에서 북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뭐겠나"라고 반문한 것은 같은 맥락이다.

그는 이어 "남쪽에서 보여주는 것도 분명 우리 체제라는 의미가 깔려있다"며 "한국에서 제작하고 북에서 오신 분들에게 보여주려면 우리가 지향하는 자유민주주의 기반으로 하는 내용이 아니겠나"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자꾸 체제선전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볼 게 아니다"며 "우리도 북측 인사에게 포항제철이나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공장을 데려가는데 그런 식이라면 그것이 다 자본주의 체제 선전 아니냐"고 강조했다.

결국 남북간 이해와 신뢰를 형성해나가기 위해서는 계기가 필요하며, 이번 정상회담 기간에 아리랑공연 관람을 상호 신뢰를 위한 `징검다리'로 삼겠다는 게 정부 입장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처럼 자세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의 아리랑공연 관람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이 공연이 문제가 되는 것은 공연의 주 내용이 북한의 체제선전인 데다 2005년 공연에서는 인민군이 국군 복장의 군인을 때려 눕히는 장면으로 논란이 있었고 어린 학생들의 강제동원에 따른 인권문제도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점을 의식한 듯 백 실장은 "아리랑 공연은 우리 국민도 올라가서 많이 봤다"며 "국민정서를 분명히 유의하고 있다. 민감하다 싶은 부분에 대해서는 북측에 제기했고, 북측도 이를 수정하겠다는 의향이 전해왔다"고 말했다.

백 실장은 `구체적으로 수정부분이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현재의 것을 봐도 별 문제가 없다고 보는데 국민적 관심이 많아 제기한 것"이라며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청와대 관계자도 "이 공연은 공연 때마다 내용이 다르다"면서 "최근 봤는데 몇 군데를 포괄적으로 지목해 북측에 수정 제의했다"고 설명했다.

백 실장은 또 "이번 아리랑공연보다 더 심한 내용이 들어있는 내용도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도 가서 봤다"는 전례를 들기도 했다. 과거 한.미 고위 당국자들도 이 공연을 관람했던 사례를 든 것이다.

2000년 10월 방북한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이 김 위원장과 함께 `아리랑'의 전신인 집단체조 `백전백승 조선노동당'을 관람했고, 2005년에 정동영 당시 통일장관이 제16차 장관급 회담 참가차 방북해 아리랑을 본 적이 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방송사의 통일전망대나 남북의 창 프로그램에서 북한 방송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고, 남북 쌍방이 방송을 개방하고자 노력하고 있고, 더 많은 내용들이 공개될 것"이라며 "이는 우리 국민이 부정적 영향을 받지 않고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는 우리측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것이다. 과거 20∼30년전 사고방식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아리랑공연은 지난 2002년 4월 고(故) 김일성 주석의 90회 생일행사를 기념해 최초로 공연된 집단예술이다.

학생과 근로자, 예술인 등 총인원 6만여 명이 동원돼 일제시대 항일무장투쟁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카드섹션과 집단체조 등을 통해 펼쳐진다. 이 공연은 통상적으로 15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평양의 `5월1일 경기장'(일명 능라도 경기장)에서 열린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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