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3일과 14일 김대중(김대중)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모두 김 대통령의 숙소에서 했다. 회담장소를 이렇게 잡은 것은 분명히 김정일 위원장이 정했다고 본다. 정상회담을 제 나라를 방문한 외국 국가원수가 묵고 있는 숙소에서 갖는다는 것은 아마 다른 나라에선 거의 찾기 힘드리라 생각한다.

김정일 위원장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정주영(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에도 밤중에 숙소로 찾아가 만났다. 과거 중국의 국빈(국빈)급 대표단이 방북했을 때에도 종종 이런 형식의 회담이 있었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한 예의랄까, 뭐 그런 것을 의식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파격적인 회담방식은 김일성(김일성) 주석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다. 김 주석이 소련과 동유럽 등을 방문하면서 느낀 인상적인 정상회담 방식을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지시한 적이 있다.

김 주석이 살아있을 때에도 김 위원장은 가능한 한 김 주석의 지시라면 무조건 따랐으며, 죽은 뒤에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김 주석이 불가리아를 방문했을 때, 그쪽 공산당수가 김 주석을 공산당 청사가 아니라 집으로 초청해 회담을 가졌다. 회담 분위기는 아주 좋았으며, 김 주석도 흡족해 했다고 한다.

90년대 초 조(북한)·일 수교회담 때 당시 전인철 북한대표가 일본대표들을 집으로 초청해 비공식 회담을 가진 것도 김 주석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94년 카터 부부와의 유람선상 회담도 김 주석의 지시를 염두에 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아이디어였다고 들었다. 유고의 티토가 이런 방식의 회담을 즐겼다고 한다. 김 주석이 70년대 유고를 방문했을 때, 산을 끼고 있는 보힌호숫가에서 가든 파티를 겸해 회담을 가졌다. 이어 티토는 유람선에서도 회담을 하자고 해 김 주석을 깜짝 놀라게 했다는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김 주석의 이야기를 전해듣고, 기온변동(편차)이 그리 심하지 않고 경관도 수려한 장소를 물색, 묘향산에 초대소를 만들어 중국의 고위 대표단과 회담을 갖곤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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