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과학기술 교류를 위해 지난 5월 북한 평양을 다녀온 정용승 고려대기환경연구소장은 평양시내 인근의 대동강변에서 뜻밖의 풍경과 마주쳤다. 대나무가 숲을 이룬 채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대나무는 대표적인 아열대 식물로 한반도 충청 이남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정 소장은 “어른 엄지손가락 정도 굵기의 대나무가 높이 2m는 넘게 자라 있었다”며 “지구 온난화로 한반도의 생태계 변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말했다.

지구 온난화의 여파는 한반도에도 밀어닥치고 있다. 우리나라 온난화 속도는 세계 평균의 두 배에 이를 정도로 가파르다. 지난 100년간 세계 평균 기온이 섭씨 0.74도 오르는 사이 우리나라는 1.5도나 상승했다. 바닷물의 기온 상승은 세계 평균(0.5도)의 세 배 가량이나 된다.

◆군 작전 수행에 영향

온난화의 부작용은 군(軍)도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지표면과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면서 군 작전 수행에도 막대한 차질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공군기상전대 관계자는 “기온이 상승하면서 전투기의 연료 소모량이 증가하는 부작용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비행기를 이륙시키려면 활주로를 달리는 동안 주변에서 공기를 여러 번 빨아들여 압축한 뒤 여기에 연료를 분사하면서 추진력을 얻게 된다.

이때 기온이 올라가면 밀폐된 공간에서 공기가 희박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 비행기가 한 번에 빨아들이는 공기량이 적어진다. 그에 따라 이륙을 위해 걸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연료 소모량이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해군 역시 마찬가지다. 해군 관계자는 “바닷물 온도가 상승해 해수(海水) 밀도가 떨어지면서 (잠수함의 음향탐지기인) 소나(Sonar)를 운용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말했다. 바닷물 내에 기포가 많이 발생해 잠수함에서 발사된 음파(音波)가 목표물에서 반사돼 되돌아오는 속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작물 재배에도 영향

온난화현상은 농작물 재배 북방한계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과거 대구와 경북 일대가 주산지이던 사과는 강원도 영월은 물론 경기 포천지역에서도 잘 자라고 있다.

강원도 인제와 양구, 화천 같은 곳에서도 사과 재배를 시도할 정도다. 전남 보성의 녹차는 강원도 고성에서 시험 재배되고 있고, 한라봉과 감귤은 제주도에서 전남 해안지방까지 올라와 생산되고 있다.

또 전남 순천과 여수 같은 남해안 지방의 도심엔 몇 년 전부터 난대성 식물인 후박나무가 가로수로 등장했고, 경남 통영에선 ‘워싱턴야자수’가 10년째 쑥쑥 자라고 있다.

바닷물이 따뜻해지면서 난류성 어류인 오징어가 갈수록 많이 잡히고, 해파리와 식인상어가 출몰하는 빈도가 갈수록 잦아지고 있는 것도 이미 널리 알려진 현상이다.

정부간기후변화협의체는 최근 이번 세기 말의 지구 평균 기온은 현재보다 최소 1.8도는 더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100년간 0.74도 상승했는데도 지구촌 곳곳에서 기상 이변이 폭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엔 더 심각한 피해가 불가피한 상태다.

국립기상연구소 권원태 기후연구팀장은 “온실가스 감축도 중요하지만 변화하는 기후에 적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특히 아열대성 전염병 피해 방지에 대한 연구에 시급히 착수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재준 기자 promej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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