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복 / 명지대 초빙교수

1948년4월 김구와 김규식은 북의 김일성·김두봉과의 이른바 ‘4김회담’을 위해 38선을 넘어 평양에 도착했다. 그러나 평양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4김 회담’이 아니었다.

김일성은 두 김씨의 도착에 때맞추어 소위 ‘북남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라는 이름으로 평양에 벌여놓은 굿판에 두 김씨를 억지로 참석시켜 단상에 앉혀놓고 들러리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는 지금 김정일의 북한이 소위 ‘8·15 민족통일 대축전’이라는 이름의 굿판을 평양에 펼쳐놓고 우리측 방문단을 상대로 53년 전 그의 아버지가 연출했던 시대도착적인 대남 정치공작극을 그대로 재연하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이를 통해 확인되는 것은 북한체제의 불가변성이다. 그 동안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현 정부는 작년 6월의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체제가 변하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변하기 이전의 북한체제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의 역사 해석을 시도해왔다. 즉 구 정권의 조작에 의한 적지 않은 왜곡과 오해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지금 평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통하여 우리는 북한체제의 그 같은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있다. 북한체제가 달라져서 이전의 북한체제와 같지 않다는 것은 김 대통령을 필두로 이 정부 대북정책 담당자들이 상상으로 그려내는 공상소설이지 실제의 상황이 아닌 것이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북한체제의 변화에 대한 이 정부 대북정책 담당자들의 이 같은 ‘오판’이 ‘무지’의 소산인가 아니면 ‘계산’의 결과인가의 여부이다. 만약 ‘무지’의 소산이라면 이 정부의 대북정책 추진 능력과 자격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어야 한다.

반면 ‘계산’의 결과라면 이 정부가 그렇게 함으로써 노리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제 평양방문단이 서울로 귀환한 후 이들에게 어떠한 조치를 취할 것인가가 정부의 몫이 되었다. 작금의 보도는 일부 평양방문단원들에 대한 처벌을 시사하고 있다. 이유는 ‘방북 허용조건 위반’이라는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이들의 ‘범법행위’에 대한 ‘법적 제재’가 불가피해 지는 경우에라도 이들에 대한 처벌은 지엽적인 것이지 본질적인 것이 될 수 없다. 보다 본질적인 차원에서는 정부가 어떻게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느냐는 문제로 귀착되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정부는 두 가지의 근본적인 잘못을 저질렀다. 첫째로는 북측의 행동을 예측하지 않았거나 못했고 둘째로는 일부 방문단원들의 행동을 예측하지 않았거나 못했다. 일부 방문단원들의 범법행위도 그 원인은 여기서 조성된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정부의 근원적인 잘못에 대한 책임추궁이 더 무겁게 다루어져야 함은 자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실무자의 몫이 될 수 없다. 당연히 위로 대통령을 비롯하여 통일부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의 몫이 되어야 한다.

이번 평양 사태는 우리로 하여금 또 하나의 근본문제를 짚어볼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이 나라의 이념적 정체성의 현주소이다. 작년의 6·15 남북공동성명 이후 남북간에는 북한지역을 무대로 연달아 ‘정치협상회의’ 형태의 ‘모임’의 자리가 마련되고 있다.

작년 10월 노동당 창건기념일에 즈음한 남측 ‘정당·사회단체 참관단’의 평양방문을 시작으로 지난 5월의 ‘남북 노동단체 공동행사’(금강산), 6월의 ‘6·15 민족통일 대토론회’(금강산) 및 7월의 ‘남북 농민 공동행사’(금강산) 등이 그것이다. 우리는 북한의 ‘노동당 창건기념 행사’를 ‘참관’하여 ‘경축’하고 돌아온 인사에게 2세 교육을 맡겨놓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번의 평양 사태는 국민적 차원에서 과연 우리가 이래도 되는 것인가를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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