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동방예의지국’과 ‘도덕’ 발언이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공산주의의 타도 대상인 봉건사회 유교윤리가 그의 입을 통해 나온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김 위원장은 13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외국 수반도 환영하는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도덕을 갖고 있다.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고파 인민들이 많이 나왔다”고 했으며 수행한 장관들에게는 “공산주의자도 도덕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북한에 정통한 사람들은 뜻밖이 아니라는 반응이다. “북한이 남한보다 웃어른을 존경하는 장유유서(장유유서)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김 위원장은 예절과 효를 상당히 강조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실권자로 부상한 후 ‘인덕정치’를 내세우며 70세 이상 노인에게 국가가 생일상을 차려주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83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는 이선념 당시 국가주석과 만난 자리에서 선배 혁명가에 대한 공경의 표시로 끝까지 자리에 앉지 않고 기립해 있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본받아야 할 일상생활의 모범’으로 전형화하고 이를 따르게 하는 ‘감화식’ 교육방식은 북한 체제유지의 유력한 요소 중 하나로 지적된다. 한 탈북자는 “길거리에서 젊은이가 연장자에게 무례하게 굴면 평양에선 주변 사람들에게 크게 혼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일성 사망 후 김 위원장이 3년상을 치르고 유훈통치를 한 배경에도 효를 강조하는 북한의 분위기가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전통적인 미풍양속을 봉건주의 잔재라 하여 금지하던 것도 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 개최를 계기로 대폭 허용했다. /김태훈기자 scoop87@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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