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러시아 방문기간 군수공장을 비롯해 공장ㆍ기업소, 박물관, 유명 관광지에 이르기까지 약 30곳을 둘러본 것으로 집계됐다.

김 위원장은 양국간의 군사 및 경제협력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러시아방문 목적에 걸맞게 무엇보다 군수업체와 중공업 및 생필품생산 등 경제분야에 대한 참관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특별열차를 타고 지난달 26일 북ㆍ러 국경도시인 하산역에 도착한 김 위원장은 같은달 29일 시설물 첫 참관 일정으로 옴스크에 위치하고 있는 서부 시베리아지역의 최대 방산업체인 `트란스마쉬'사를 방문했다.

여기서 T-80 탱크를 비롯한 이 회사 생산품과 T-80 조립장면을 깊은 관심을 갖고 둘러본 뒤 이 탱크의 기동훈련을 담은 영화를 감상했으며 이 회사내 다른 공장인 `ZTM트랙터생산공장도 참관했다.

김 위원장은 모스크바에서 불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에도 우주센터와 우주지상통제소를 참관했으며 귀국하는 길인 지난 11일에는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세베리아 제1의 과학단지인 아카뎀고로독을 찾아 핵물리학연구소를 둘러본 뒤 최신형 전폭기인 수호이(Su)-34를 생산하는 츠칼로프공장도 방문했다.

김 위원장은 츠칼로프 공장에 이어 시베리아 국립 철도대학을 방문, 시베리아횡 단철도(TSR)와 한반도종단철도(TKR) 연결 문제에 큰 관심을 표명하고 수행 중인 김용삼 철도상에게 북한 대학생들의 연수를 지시했다.

이외에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레닌그라드금속공장(LMZ)에 이어 키로프공장을 찾아 250∼300마력의 무궤도 트랙터, 불도저, 진동식 롤러, 스크레이퍼, 목재 적재기, 목재 반출용 트랙터 등에 관심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또한 북한의 당면과제인 `먹는 문제' 해결에도 관심을 가진 듯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발티카 맥주공장, 하바로프스크의 유아식 제조공장, 중앙백화점 식료품점도 둘러봤다.

특히 유럽 최대 맥주공장인 `발티카' 맥주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공장장에게 영국 장비를 들여와 북한에 맥주공장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발티카의 기술자문 등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북한에서는 현재 김 위원장의 지시에 따라 연산 7000만ℓ의 생산능력을 가진 대동강맥주공장를 건설 중에 있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 방문기간 군사 및 경제분야에 주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각지 유명 박물관을 비롯해 문화예술유적의 참관과 관광도 함께 즐겼다.

김 위원장은 모스크바로 가던 중 풍광이 수려한 바이칼호(湖)에 접한 슬류드얀카 마을에 내려 세계 최대의 담수호를 잠시 둘러보면서 시베리아의 놀라운 자연경관을 감상하는 여유를 보였다.

옴스크에서는 푸슈킨 박물관을 관람한데 이어 모스크바 정상회담 이튿날에는 크렘린궁 박물관을 관람했으며 하바로프스크에 들러 박물관을 둘러보고 유람선 `모스크바호'를 타고 아무르강도 유람했다.

특히 상트 페테르부르크시를 방문하는 동안 17세(1959년) 때 아버지인 김일성 주석과 함께 둘러봤던 에르미타쥬 박물관(겨울궁전)을 다시 찾아, 표트르 1세 시대 작품들에 큰 관심을 표시했으며 `표트르-파블롭스키'요새에서 알리는 12시 포성도 들었다.

김 위원장의 행보에서 특히 눈길을 끈 대목은 레닌묘 헌화 등 첫 사회주의국가를 세운 레닌과 제2차 대전시기 소련을 지켜 싸운 군인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표시한 점이다.

그는 정상회담에 앞서 지난 4일 크렘린 외벽에 위치한 무명용사의 묘와 붉은 광장에 있는 레닌 묘에 대한 헌화를 하는 것으로 모스크바일정을 시작했다.

소련 붕괴 이후 외국 수반의 공식 헌화는 김 위원장이 처음이었다는 점에서 러시아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지난 11일 노보시비르스크에 들렀을 때에는 레닌의 이름을 딴 지하철도역인 `레닌광장역'등을 불시에 참관했으며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2차 대전시기 레닌그라드전몰용사 묘인 `피스카료브스코예 공동묘지에 헌화했다.

북한에 도착하기 하루전인 17일 하바로프스크에서도 1945∼1946년 북한에서 근무할 때 김 주석을 만난 적이 있는 참전용사의 집에 들러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이러한 행보를 통해 사회주의체제를 끝까지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내외에 천명하는 것과 함께 이른바 `혁명적 의리'를 귀중히 여긴다는 점을 과시하려 했던 것으로 분석된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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