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 통일부장관은 이른바 「평양 통일축전」에서 보여준 남측 일부 단체 회원들의 「국가망신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 이제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북한이 이 행사를 악용할 것이 충분히 예상되었는데도 대북정책의 책임자로서 따질 것은 따지고 점검할 것은 철저히 점검해야 하는 당연한 임무를 저버리고 졸속 방북승인으로 이 같은 사태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당초의 방북불허→북한팩스 한 장 믿고 하루 만에 번복→형식적인 각서 제출→남측 대표단 방북→남측대표단 내분→일부 단체 ‘조국통일 3대헌장 기념탑’ 행사 참석 등 일련의 전개과정은 이 나라가 나라로서의 기본적인 요건을 갖춘 나라가 아님을 만천하에 드러내 주었다.

첫째 국가안보 최고 결정기관인 NSC(국가안전보장회의)가 북한의 악용을 우려해 방북 불허방침을 정하고, 통일부도 그 방침을 따르기로 했다면 아무리 시간이 촉박했더라도 「변경절차」는 신중하고 사려 깊었어야 했다. 임 장관은 그 절차를 지키지 못한 책임이 있다.

둘째 통일부는 「3대헌장 기념탑」행사에 참가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300여명의 대표단 가운데 불과 4명으로부터 받고, 그나마 「방북교육」은 행사전날인 14일 밤중에 명동성당에서 했다. 그 과정에서 각서의 대표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면 전원 각서를 받든가 승인을 거부했어야 했다. 임 장관은 그런 행정적 책임을 이행하지 못했다.

셋째 남측 대표단들이 보인 졸렬하고 무책임한 행동에도 방북승인자로서의 정치적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인 이상 대표들이 각서를 썼으면 그 구성원은 당연히 지키는 것이 도리인데도 『우리는 각서에 동의한 적이 없다』 『여기까지 와서 헌장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을 수 없다』며 일부 회원들이 정부방침을 어기고 북한의 의도에 따라 행동해준 것은 궁극적으로 대북창구로서의 임 장관의 책임으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그들의 처신을 바라본 많은 국민들의 심경은 참담했다. 임 장관은 이처럼 국민을 참담하게 만든 정부각료로서의 책임이 있다. 이번 「3대헌장 기념탑행사」에서 북한은 그들의 「연방제통일」의 정당성을 계속 주장했으며 이른바 「자주」와 「외세배격」 등 종래의 상투적인 대남선동을 어느 때보다 강조했다.

임 장관은 대북정책을 책임진 통일부 장관으로서뿐 아니라 이 정부 출범 이후 외교안보수석, 국정원장 등 대북정책 관련부서에서 줄곧 일해와 북한의 이중성과 기만적인 행동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점에서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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