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상의 첫 만남을 보고 의미를 분석하면서 남은 일정의 진행을 전망해 보기 위한 기획의 일환으로, 조선일보는 이날 오후 공노명(공노명) 전 외무장관과 안병준(안병준) 연세대 교수를 초청, 긴급 대담을 가졌다.



▲공노명=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순안공항에 영접을 나온 것은, 이번 회담의 중요성에 비추어 김정일 위원장과 실력자들이 영접 나오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우리 언론이 그런 시나리오를 사전에 몰랐을 수 있겠지만 정부는 알았을 것이다. 차량에 동승하는 것도 사전에 합의됐을 것이다.

▲안병준=김 위원장이 직접 나온 것은 파격적 예우라고 생각한다. 이는 대한민국 대통령에 대한 예우이고, 상징적 차원이나마 대한민국에 대한 국가로서의 승인이라는 의미도 있다. 한국의 국내 여론도 의식했다고 생각한다. 동결된 남북관계를 해결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할 수 있고, 이번 만남 이후의 남북관계는 이전의 것과는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처음 열리는 남북정상회담에서 그런 예우를 했다는 것은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본다. 세인의 의표를 찌르는 드라마적 요소는 한국 국민들을 다분히 의식한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함으로써 이번 행사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실히 알려주는, 회담의 주도권을 처음부터 장악하려는 계산도 엿보인다.

▲안=김 위원장 모습을 TV로 보면서, 아주 건강하고 활동적이며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그쪽 보도를 보면 김 위원장은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권위를 많이 행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공=김 위원장은 말보다 머리 회전이 대단히 빠르다. 그가 외부세계를 방문한 것은 동구권뿐이지만, 영화 등을 통해 서방 세계에 대해서도 잘 안다. 서방의 정보, 언론 내용을 빨리 파악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상당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알려진 모습과 상당히 다르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이 세계 속에 데뷔하기 위한 무대로는 가장 잘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투사인 김 대통령을 공연자(공연자)로 해서 극적인 이미지 개선을 노리는 것이다.

▲안=중요한 것은 최근 들어 북한이 국제 사회에 편입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들어 이탈리아 등 서구 5개국과 수교했다. 이번 정상회담은 전세계 청중들을 상대로 이런 개방 의사를 선언한 것이다.

▲공=개방 움직임은 작년 후반기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베이징(북경)을 방문했고, 백남순(백남순) 외무상이 오랜 공백 끝에 유엔 총회에 다시 참석, 20여개국이 넘는 외무장관들과 회담하고, 귀국 길에 독일과 러시아 등을 방문했다. 또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참여 요청을 받아도 계속 거부해 왔던 아세안 지역안보포럼(ARF) 초청도 수락했다. 북한이 대외 정책의 변화를 시도 중인 것만은 분명하다.

▲안=이번 정상회담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14일의 본격적인 회담을 보기 전에 첫날 대면만 보고 예측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 임하는 북측 의도는 세 가지 정도로 분석할 수 있겠다. 첫째, 김 위원장이 회담을 열 수 있을 정도로 북한을 장악하고 있고, 그만큼 체제가 안정돼 있다는 점을 과시하려 한 것 같다.

둘째, 대미·대일 협상에서 큰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서방과의 협상력을 강화하려는 것 같다. 셋째, 김 대통령의 베를린 선언에 따라, 남측으로부터 얻을 것은 얻으면서 그들 경제발전의 전기를 마련하려는 것 같다.

▲공=북한은 경제 회생 없이는 정권 안보가 위태롭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한 듯하다. 경제회생을 위해서는 외부세계의 협력이 필요한데, 미국과는 핵·미사일 문제가 걸려 있고,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교섭도 우여곡절이 예상된다. 특히 미국의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이 집권하면 현재의 민주당 정부보다 강경하게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김 대통령이 햇볕정책을 계속 추진하면서 베를린 선언을 통해 경제지원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런 상황들을 감안한다면, 남은 일정 동안 우리 정부가 생각하고 있는 선에서 타결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경제협력 분야 같은 데서는 우리 생각을 앞지르는 합의가 나올 수도 있다. 경협은 우리가 주는 것이지만, 우리는 이산가족 문제에서 상당한 성과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또 에너지 부문에서도 석탄 공급을 위한 경원선 철도 복구 등, 뭔가 성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 최근 미·북회담에서도 상당한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안다.

▲안=이번 회담의 성패를 판단해 볼 수 있는 주요한 잣대는 후속 회담의 합의 여부다. 후속 정상회담 또는 분야별 각료급 회담이 이어질 수 있는가를 주목해야 한다.

▲공=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근본문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도 정상회담을 1회용으로 만들 생각은 없어 보인다. 생존을 위해서는 경제 회생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한국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를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북측도 지금까지 주장해 온 대의명분도 있고, 경제문제와의 균형도 필요한 만큼, ‘정치문제’를 거론할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주한미군 문제’처럼 구체적으로 일일이 거론하기보다는, ‘7·4공동성명의 정신’같은 원칙론을 펼 것 같다. 물론 명확히 점치기는 힘들다.

▲안=북측은 내일(14일) 회담에서 ‘근본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주민들에 대한 대내적 명분 때문에도 필요하고 또 그 주장의 일관성을 위해서도 제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표현에서 우리를 곤혹스럽지 않게 하려 할 것이다. 가령 7·4공동성명을 거론, ‘외세 의존 배격’같은 것을 언급할 수 있다.

▲공=남북 양측이 모두 승리하는 이른바 ‘윈·윈(win·win)’이라는 호혜적 입장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김 대통령이 수차례 밝힌 대로 쉬운 것부터 풀어간다는 자세를 취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다만 남북한간에는 좋은 합의가 있어도 그것이 실천이 안된다는 문제가 있는데, 이번에 91년 남북기본합의서의 분야별 이행 과제들을 실천해 나갈 수 있었으면 한다.

군사공동위가 가동된다면 그 자체만으로 신뢰구축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또 경제협력이 자주 거론되는데 기본합의서에는 그 문제를 다룰 분과위 구성이 명시돼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적어도 기본합의서에서 합의된 남북간 불가침 선언을 서로 확인해야 한다고 본다.

▲안=우리측은 원칙 문제에서 단호해야 한다. 동시에 북측과의 대화에서는 실용주의적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 이산가족문제와 경협을 연계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14일 회담의 성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 문제의 해결 과정을 출범시키는 데 있다. 가령 최고위 당국자간 ‘핫라인(hot-line)’ 개설같은 것은 신뢰 구축의 첫걸음이다. 과거에는 협상중에 밀고당기기가 만만치 않았는데, 이번에는 사전에 상당한 의견 절충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기본합의서 이행을 북측이 꺼린다면 최소한 각료급 회의를 통해서라도 관련 분야를 다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공=북한은 55년간 우리와 대결해 왔다. 그런 상대가 지금 새롭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정작 그들이 변화하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지금부터의 일이지, 현재까지는 미확인된 사실일 뿐이다. 침착하고 냉정할 필요가 있다.

▲안=속단하기보다는 앞으로 북한의 행동을 지켜봐야 한다. 작은 변화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

/정리=정권현기자 khjung@chosun.com

/박두식기자 dspark@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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