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8·15 민족통일 대축전」에 참가한 남측의 일부 민간단체 회원들이 정부와의 약속을 어기고 이른바 「3대 통일헌장 기념탑」개막식에 참가한 것은 우리 정부의 권위를 우롱하고 북한의 장단에 놀아난 결과를 가져왔다. 무엇보다 원칙없고 소신없는 통일부의 책임이 가장 크다. 나라 망신시킨 통일부 당국자들은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한다.

통일부는 당초 남한 민간단체들이 북한의 통일헌장 기념탑 개·폐막식 공동개최 요구를 수용하면 그것이 북한의 「연방제 통일」 연출에 동조하는 것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 이들 민간단체의 방북을 불허했었다. 그런 통일부가 「공동개최가 아닌 참관단 자격」이라는 북한의 팩스 한 장을 믿고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꿔 『개막식 행사에는 참가하지 않겠다』는 남측 대표단의 「각서」를 받고 허가로 돌아섰다.

「공동개최」와 「참관」은 말만 다른 것일 뿐 참가하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그것을 굳이 북한이 태도를 바꾼 것인 양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도 이해할 수 없지만, 통일부가 받았다고 하는 「각서」도 대표 몇명에 한정된 형식적인 것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북한이 이 행사를 서울과 평양에서 공동으로 개최하자는 남측의 요구를 거부하고 평양 행사만 고집할 때부터 북한의 의도는 분명했는데도, 이러다가 민간단체 교류행사마저 끊어지면 곤란하다는 통일부의 조바심이 결국 이 지경까지 초래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우리가 북한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주고 있다. 「참관단 자격」이라고 해놓고 남쪽 방문단의 분열을 조장하며 기어이 개막행사에 참석시킨 것은 기만술이라고 비난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남측 대표단 간에 의견통일이 되지 않았는데도 버스까지 대기시켜 놓고 『아침부터 평양시민 2만명이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부추긴 것은 남한당국을 의도적으로 깔아뭉개는 처사였다.

북한은 개회식뿐 아니라 폐막식까지 참석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니 우리를 가지고 놀아도 너무하는 것 같다. 북한이 입만 열면 「6·15정신」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이같은 민간행사마저 「통일전선」에 악용하고 있다는 것은 정상회담 이후에도 북한이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양에서 보인 남측 민간단체들 간의 처신도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아무리 대표만 각서를 썼다고 해도 약속을 한 이상 그것을 지키는 것이 도리이지, 그것을 어겨서까지 자의적으로 행동한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세일 수 없다.

통일부는 문제가 확산되자 뒤늦게 「사법처리 여부」 운운하며 책임회피를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것은 지금과 같이 「갈팡질팡」하면서 국민을 우롱하는 통일부 당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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