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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통일의 무게’에서 벗어나자 ‘통일논의’ 혐오하는 이유 체제-이념 떠나 접근 때 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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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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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향민. 흔히 일컬어져 오기로는 이북내기 또순이. 그 태반은 50년 겨울, 속칭 1·4후퇴 시에 월남했으니, 하루 하루 살아내기가 여북했을 것인가. 그악스럽고 억척스럽지 않고서는 이 바닥에서 견뎌낼 수가 없었다. 전란중임에도 이미 부산의 국제시장에서 가장 활기찬 사투리는‘앙이, 뭣이 어쩌구 어째? 이 간나아새끼’하고 듣기만 해도 기겁을 하고 달아나고 싶은 함경도, 평안도 사투리였었다. 그렇게 초장부터 벌써 그 시장을 주도적으로 이끈 것은 바로 이북내기 실향민들, 또순이였던 것이다.

환도 후도 마찬가지였다. 을지로 일대의 철물점이며, 해방촌의 밤낮으로 시끌벅적한 분위기며, 전쟁 직후의 이 나라, 이 사회를 일으켜 세웠던 것은 바로 실향민들이었다. 동대문시장, 남대문시장, 군(군), 경(경), 관(관), 교육계, 문화계 할 것 없이 허허벌판을 뛰듯이 달려왔던 것은 바로 실향민들이었다. 지난 50년 동안에 오늘 이 나라를 이만큼 키워내는 데 중심 역할을 했던 것이 바로 혈혈단신으로, 혹은, 용케 제 식솔 몇명을 이끌고 나왔던 실향민들이었던 것이다.

이 실향민들이 현 북한을 바라보는 대체적인 시각을 두고 ‘보수적인 통일관’이라고 요즘 더러 지식인들 간에는 폄(폄)하는 쪽으로 보려고도 하는 모양인데, 여기에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잣대를 함부로 들이대는 데 대해서는,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반대 입장이며, 차라리 실향민들의 그런 반응을 나는 아픔으로써 공감하고 안쓰럽게 이해하는 쪽이다. 그들에게 있어서는 ‘통일’이니 뭐니, 그런 잘난 소리부터가 죄다 겉멋 든 하이칼라 소리로 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야, 통일? 마땅히 어서 빨리 이뤄져야 할 우리 민족의 최대과제임은 그들인들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흔한 ‘통일 논의’라는 것들에는 실향민들 거개가 혐오하고 있다. 왜? 너무 혼자서만 잘난척 하려는데 이 용어를 써먹는 경우를 많이 보기 때문이다.

사실로 그 용어로만 말한다면, 지난 반세기 동안에 남과 북 합쳐서 이 용어만큼 많이 쓴 용어가 달리 있었을까. 하지만 남 북의 현실은 끄떡도 않고 있으니, 노상 빈 메아리로만 되돌아왔을 수밖에. 그렇게 되면서 그 용어에는 알게 모르게 땟국이 끼고 더뎅이가 앉으면서, 심지어는 표득하게 ‘권력화’되는 면마저 없지는 않았다. 즉 그 용어는 대목대목 생 사람 잡는데 쓰였고, 남 겁 주는데 쓰이기가 일쑤였다. 소위 통일운동가라는 사람이 친북 성향으로 불온해 보이는가 하면, 그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은 그 날부터 보수 반동에, 반 민족적 형태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아주아주 운신하기가 불편하고 고약해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 국면에서 우리 모두가 일단 시원하게 해방부터 되자는 것이, 바로 실향민의 한 사람인 나의 생각이다. ‘통일, 남북통일’이라는 상투어와, 그리고 그러저러하게 빚어진 기괴한 ‘억압감’으로부터의 해방.

사실로 이미 지난 2,3년 동안에 남북관계는 왕창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 여북하면 나 같은 대표적인 실향민마저 북한을 다녀오기까지 했을 것인가. 바로 그렇다. ‘한 살림!’, 남북간의‘한 살림!’. ‘통일’이라는 한문자 용어 대신에 ‘한 살림!’. 실제로 지금 남북 간의 ‘한 살림’은 비록 우여곡절은 겪고 있지만, 부분부분으로 형편형편만큼 진행되고 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 그렇게 ‘체제’니 ‘이념’이니 하는 골치아픈 것에서 일단 놓여나 보자.

/이호철 소설가·경원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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