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금강산 관광사업 부진을 엉뚱하게 미국의 방해 때문인 양 덮어씌우고 나섬에 따라 그 문제는 또다시 좌초위기를 맞게 됐다. 북한 아·태평화위는 8일 성명을 통해 『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남북한의 금강산 관광사업을 반대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금강산 관광사업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자신들이 한 약속은 도외시한 채 모든 것을 「미국 탓」으로 돌리는 저의는 여러 가지 일 것이다.

지난 6월 8일 현대가 「금강산 관광 미납금」을 지불하는 대신 북한은 육로관광을 허용하고 금강산 지역을 관광특구로 지정키로 현대와 북한은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북한은 육로관광 문제 토의를 위한 「7월 중 당국자 회담」 약속을 지키지 않았으며, 2개월내 지정키로 한 관광특구 약속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런 북한이 관광특구 지정약속 마지막 날인 8일 「미국 책임론」을 들고 나선 것은, 향후의 모든 남북간 현안은 미·북관계 진전 여하에 철저히 종속시키겠다는 「전략」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우리 정부의 거듭된 2차 남북정상회담 요망에 대해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다』며 계속 미루기만 하고, 예정되었던 장관급 회담도 일방적으로 무산시킨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북한이 금강산 관광까지 『미국 때문에 안 된다』는 식으로 연계시킨 것은 남한에 반미 분위기를 조작해내려는 의도도 내포할 것이다. 그러한 선동으로 남한 내 동조자들의 「투쟁」을 부추기겠다는 것이다.

또 한국 정부에 대해 『미국의 대북 강경자세를 바꾸게끔 하라』는 주문도 들어있는 것 같다. 남북대화가 제대로 풀리려면 먼저 「북·미」가 풀려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한국 정부가 미국 설득에 앞장서 달라는 것이다.

북의 이런 자세는 현 정부만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북한의 대남자세에 대한 일방적 「낙관」에 근거해 금강산 관광사업이 「돈만 주면」 잘될 것으로 전제하고 현대아산 외에 공기업인 관광공사까지 새 사업자로 끌어들이고, 우리의 선의에 대해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하는 등 온갖 법석을 떨었으나 결과는 「금강산 관광사업 좌초위기」인 것이다.

이것은 임기내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현 정권의 조급증과 북한도 항상 선의로만 호응해 줄 것이라고 하는 대북 정책당국자들의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발상에 가장 큰 원인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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