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통한문제연구소(NKchosun.com) 김미영입니다.


지난 달 제네바에서 북한은 16년만에 낸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일명 B규약) 정기보고서에 대한 심사를 받았습니다. 이와 관련된 뉴스를 접하다가 귀가 솔깃해지는 대목이 있었습니다. 북한이 사상(史上) 처음으로 '공개처형' 사실을 인정했던 것이지요.물론 공개처형이 북한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져 왔음을 시인한 것은 아니고, 지금까지 1992년에 '딱 한 건' 있었다고 했지만 말입니다.

이 딱 한 건은 여러분들도 이미 보셨음직한 벽보(사형공고문) 한 장에 담긴 사건입니다. “1992년 11월 15일, 함흥시 사포구역 창흥리 영대다리 아래 모래장에서 30세 '살인범죄자' 주순남을 사형집행한다”는 내용의 함흥시 안전부 명의의 공고문이었지요. 확인해 본 바에 따르면 그것은 90년대 중반 이 지방 사람이 탈북하면서 갖고 나온 것으로 한참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가 99년경에 세간에 흘러나온 것입니다. 조선일보뿐 아니라 다른 언론매체를 통해서도 사본이 나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지난 3월 북한의 공개처형 문제를 취재하면서 이 공고문의 주인공이 처형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함흥에 살다 탈북해 96년 한국에 들어온 이 사람은 그 목격담을 소상하게 전해 주었습니다. 탈북인들이 전하는 공개처형 사례를 묶어 보도하면서 이 케이스는 목격자뿐 아니라 구체적인 물증도 있어 맨 앞에 내세워 소개했지요. 지난 3월 26일자 조선일보(섹션 NK리포트) 지면(▶ 기사보기) 을 통해 소개한 탈북자 김인호(33·가명)씨의 증언은 이렇습니다.

"1992년 11월 15일 오전 11시 함흥시 사포구역 영대다리에서 주순남(당시 나이 30)씨가 공개 처형당했다. 그의 공개처형을 알리는 공고문이 시내에 나붙었고, 이것이 나중에 남한에까지 알려졌다. 주순남은 제대군인으로 당원이었다. 그는 어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외가에서 자랐다.

제대 후 담배장사를 했던 그는 외할아버지에게 술값을 보태달라고 언성을 높이다가 욕을 듣고는 홧김에 할아버지를 밀었는데 그 자리에서 숨지고 말았다고 한다. 공개처형이 있던 날 날씨가 매우 추웠는데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죽는 사람에 대해 별로 동정이 가지 않았다. 죽을 짓을 했구나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러나 “사람이 개처럼 죽는구나”하는 생각은 들었다."

7월 19일 제네바 인권이사회의 심사를 받는 자리에서 북한측은 전문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을 모두 피해갔지만, 공개처형 문제에 관해서만은 "1992년 10월에 함흥에서 폭력행위 상습자인 주순남이 친조부모인 주정은(84)과 할머니 최연옥(72)을 잔인하게 살해한 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그 지역 주민들의 한결같은 군중적인 요구에 의해 공개처형된 사실이 1건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북한은 주순남이 처형된 달을 10월이라고 했고, 죄목에서 외조부가 아니라 친조부모 존속살인이라고 했지만 같은 사건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렇게나마 북한이 공개처형을 인정한 덕분에 인권이사회는 7월 29일 북한에 "어떤 형태의 공개처형도 금지하도록 하기 위해 관련 법조항을 재검토하고 개정할 것"을 권고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장 구체적인 권고사항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의 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증(物證)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됩니다. 북한에서 공개처형은 일반적인 것으로, 특히 1996년에는 "인민들 사이에서 총소리가 날 때가 됐다"는 김정일 지시로 도(직할시) 안전부 선에서도 공개처형을 단행할 수 있게 됐다고 합니다. 그에 앞서 북한판 정인숙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여배우 우인희 공개처형은 평양시 대성구역에서 집행된 것으로 이런 방식의 처형의 대명사처럼 돼 있습니다.

이렇듯 북한사람치고 공개처형 못 본 사람 찾기가 어려운데도 북한은 오직 '주순남' 건에 대해서만 인정했다는 것은 물증이 참 무섭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몇 달간 유태준 처형 문제를 다루느라 저는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북한에서 최근에 있었던 공개처형에 대해 취재해 봤습니다. 99년경부터 확실히 현격히 줄었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거의 공개처형을 찾아볼 수 없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그러나 "공개처형은 없어졌지만 비밀처형은 계속되고 있다. 예전보다 오히려 더 잔인해지고 있어 더 무섭다"는 얘기도 함께 따라붙고 있습니다.

선언에 불과한 세계인권선언을 법규(조약) 형태로 강화한 국제인권규약과 그 메커니즘은 인권과 관련해서는 세계 최강의 힘을 갖고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규약 서명국인 북한에 대해 여기서도 시원스럽게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인권이사회도 '접근할 수 있게 하라'고 강하게 권고하고 있는 것처럼 북한의 인권문제는 외부인들이 가서 보고, 피해자들이 직접 고발할 수 있게 될 때 개선의 여지가 보일 것입니다.

그런 날이 언제 올는지요? 분단상태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역시 북한의 보통사람들 일 것입니다. 그들이 굶지 않고, 최소한의 인권을 확보할 수 있게 될 때 지금의 대북정책이나 한국을 비롯한 세계인들의 북한 지원이 보람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교착상태에 빠져 있는 인권문제야 말로 북한의 변화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터인데 언제쯤 청신호를 보게 될는지요. 이 더운 여름에 청량한 뉴스를 보내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입니다. /김미영 드림 miyou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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