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10시40분. 김대중(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두 손을 뜨겁게 맞잡는 모습이 TV로 방영되자 서울역 대합실 여기저기서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나왔다.

“살다보니 이런 날도 다 있네. ”

고향이 평양이라는 60대 할아버지는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이날 TV 생방송을 통해 김 위원장이 직접 순안공항에 나타나 김 대통령을 영접하는 모습을 본 시민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면”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이라며 탄성을 질렀다. 또 김 대통령이 트랩을 내려오기 직전 잠시 오른쪽으로 돌아 한동안 남쪽을 주시한 데 대해서도 “의연한 모습”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일부 시민들은 “양 정상이 붉은 카펫 위를 나란히 걸으며 다정히 얘기하는 모습을 보며 “저곳이 정말 평양이냐”고 놀라워하기도 했다.

이날 서울역 광장 멀티비전 앞에는 아침 일찍부터 시민들이 몰려들었다. 오전 10시20분 평양 순안공항발(발)로 생방송이 시작되자 지나던 군인, 출근길 시민, 외국인 등은 모두 대한민국 정상의 역사적 평양 첫 발걸음을 숨죽여 기다렸다.

10시30분쯤 공동취재단이 “국민 여러분… 평양은 27도의 맑은 날씨입니다”라고 첫 멘트를 보내오자 시민들은 여기저기서 박수를 쳤다. 이성태(이성태·65·영등포구 대방동)씨는 “오늘을 계기로 통일이 앞당겨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무웅(이무웅·58·서초구 방배동·공무원)씨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김 위원장이 김 대통령을 직접 영접하는 것을 보니 회담결과가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하루종일 전국의 역 대합실, 고속버스 터미널, 사무실, 학교 등에서 시민들은 평양에서 실시간으로 보내오는 남북정상회담 소식을 보며 ‘놀라움’과 ‘감격’을 얘기했다.

김동연(김동연·26·육군일병)씨는 “서울역 앞을 지나다 우연히 김정일 위원장이 직접 마중나온 것을 보고 1시간 동안 TV를 지켜봤다”고 말했다. 김용석(김용석·52·택시 운전기사)씨는 “이왕이면 두 정상이 포옹까지 했으면 좋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민단체들도 김정일 위원장의 ‘파격적 행동’에 놀랐다고 밝혔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서경석(서경석) 집행위원장은 “김 위원장이 솔직하고 열린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경실련 이석연(이석연) 사무총장은 “김 위원장이 직접 나와 환대한 모습은 냉전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한민족의 긍지를 보여준 장면”이라고 했다.

대학 캠퍼스도 남북정상의 첫 만남에 놀라워했다. 김동관(김동관·32·연세대 신학과)씨는 “김 위원장이 김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에게 세세하게 신경쓰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국제지역원 안병길(안병길) 교수는 “김 위원장의 행동은 북한에서도 이번 남북회담을 자기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하겠다는 의지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17년째 살고 있는 미국인 제이 피 모링(48·주한미군 군무원)씨는 “오늘 일은 한반도 통일의 첫걸음이라는 측면에서는 아주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감격과 놀라움은 밤까지 이어졌다. 서울 을지로와 테헤란로, 여의도 술집에서는 직장인들이 밤 늦게까지 남북 정상의 만남을 화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파트 촌(촌)도 밤 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원용범(원용범·56·광진구 자양동 대동아파트)씨는 “가족들과 방송 중계를 본 뒤에도 한참 동안 ‘역사적 사건’을 얘기하느라 늦게 잠들었다”고 말했다.

/안석배기자 sbahn@chosun.com

/이세민기자 john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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