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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시론 김정일위원장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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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0.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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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남·북간에는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났다. 1972년 7월 4일, 이른바 7·4 성명이 발표되었을 때의 흥분은 아직도 가시지 않고 있지만 남과 북은 합의한 3대 원칙에 대한 해석을 두고 극심한 대결을 계속했고 결국 7·4 성명은 기념탑으로 남을 뿐이었다.

1992년에는 너무나도 획기적인 남·북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가 공표되었지만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핵무기를 에워싼 치열한 대결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1994년에는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합의가 이룩되었고 역사의 새 장이 열릴 듯했지만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긴 안목에서 볼 때 양측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고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는 ‘전환적 국면을 여는 것’을 목표로 삼을 것이다. 이 목표를 이룩하기 위한 이정표도 이미 설정돼 있다. 남·북기본합의서와 부속합의서가 그것이다. 남아 있는 일은 두 수뇌가 이 합의서들을 재확인하고 그대로 이행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합의서를 이행해 나가는 데는 장애물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난 몇 해 동안 일어났던 많은 일들은 양쪽의 환경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남·북이 공통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안정’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남쪽이 무엇보다도 바라는 것은 한반도의 안정이고, 평화공존체제의 확립이다. 그래야만 남쪽은 경제 발전을 계속할 수 있고 여러 가지 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그런데 북쪽에 더욱 긴요한 것은 북한의 경제와 체제의 안정이다. 그래야만 북한은 대등한 입장에서 참다운 교류와 협력에 동참할 수 있다. 언뜻 보면 양측의 목표는 같은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양쪽의 단기적 목표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왜 북한이 한반도의 안정보다도 북한 내부의 안정을 추구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는 장황한 설명이 필요치 않다. 지난 몇 해 동안 북한의 경제가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일이다. 궁핍한 상황 속에도 국방력을 유지해나가야 하므로 일반 사회에 식량과 물자의 배정이 감소할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사회적으로도 많은 문제가 야기될 수밖에 없었다. 상대적으로 취약해진 국방력을 보강하기 위해, 그리고 외화를 획득하기 위해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고 수출한 것은 이런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북쪽에서는 자위책으로 신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했는데 남쪽과 주변국가에서는 도발적인 행위로 받아들인 것이다.

북한 측은 지금까지 지탱해온 정책을 통해 군사적 균형을 유지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지만 한반도에서의 군비경쟁이 지속되는 경우 너무나 큰 희생이 따른다. 군비경쟁은 경제적으로 취약한 쪽에 너무나 불리하다.

따라서 북측에서는 남한 내에 존재하는 위협적인 요소들을 감소시키고 나아가서는 제거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남한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력에 대한 언급이 있을 수도 있고, 또 한국군의 군사력 증강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남쪽에서는 북한의 위협적인 무기개발 문제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인데, 이러한 문제들의 제기는 대화의 결렬을 가져올 수도 있는 한편, 대화의 지속을 가져올 수도 있다. 양측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해결책에 대한 대화의 통로를 만들어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미국과 북한 간의 현안이기도 하기 때문에 복잡성을 띠지만 평화공존을 지향하는 남쪽으로서는 진지한 토론을 환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이 문제가 정상회담에서 거론되고 토의 대상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북한 측에서 다음으로 중요시할 것은 북한의 경제부흥에 대한 남한 측의 동참이다. 우선 식량문제가 해결되어야 하고, 동력이 필요하고, 노후한 공장들의 복구가 시급하다. 그리고 앞으로의 경제발전을 위한 기틀이 만들어져야 하는데 너무나도 많은 자본, 기술, 노하우가 필요하다. 현재 남쪽의 경제도 시련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남쪽에서 적극적으로 임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남·북간의 정치체제의 차이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김대중 대통령은 민주체제가 선거한 행정수반이고 국회와 민중에게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일방적인 경제협력을 약속할 수가 없다. 이산가족 문제에 대한 조치를 강구하지 않을 경우 그는 분노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쪽에서는 이산가족 문제를 체제의 안보 문제와 직결되는 것으로 간주해왔기 때문에 쉽게 응할 수가 없다. 어쩌면 이 문제는 남·북간의 아킬레스의 건인지도 모른다. 이 문제에 대한 현명한 해결책이 강구된다면 남·북간의 분위기에는 획기적인 변화가 올 것이다.

/ 이정식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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