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류는 이미 시작됐다. 정상들의 만남은 오늘 처음 이뤄지지만, 남북한 문화는 상호 교감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판문점을 넘어 오가는 것은 눈에 보이는 공연단만이 아니다. ‘분단 이후 처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문화적 사건이 올 들어 줄을 잇고 있다. 우리 출판사가 북한 저술가 원고를 정식계약 맺고 들여와 책을 냈고, ‘휘파람’ 등 북한 히트가요가 CD로 나오고 전파를 타면서 젊은이들이 흥얼거린다.

북한은 북한대로 그동안 금지돼온 ‘목포의 눈물’ ‘눈물젖은 두만강’ 등 이른바 식민지 시대 노래들을 최근 해금, 이들 곡을 담은 ‘계몽기 가요 선곡집’이 인기라고 외신들은 전한다. 분단 55년이 강요한 이질화의 외피를 서서히 벗어가며 남북 양측이 민간차원에서 문화적 동질성의 공감대를 적극적으로 타진해가고 있다.

출판계는 이제 북한을 문화적 파트너로 상대하며 저작권료까지 준다. 푸른숲출판사가 내는 ‘개성 이야기’는 북한 향토사학자 송경록씨와 직접 계약을 통해 돈을 주고 원고를 받아 간행했다. 서울대 출판부도 최근 북한서적 ‘조선유적유물도감’ 내용 일부를 우리 학술총서 ‘북한의 문화재와 문화유적’에 전재하면서 중국 연변대학측 중개로 북의 조선출판물수출입사로부터 정식으로 판권을 사들였다. 또 누리 미디어는 최근 고려 문인 이규보(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동국이상국집)’ 번역을 북한 사회과학원에 의뢰해, ‘CD-ROM 동국이상국집’을 냈다.

‘지금 북한에선…’류의 방송 프로그램 에서 ‘자료화면’으로나 살짝 대할수 있던 북한 영화와 대중가요들. 그러나 이젠 우리 구미에 맞는다면 ‘즐기는’ 문화상품이 됐다. 정부 허락에 따라 북한 SF괴수영화 ‘불가사리’는 곧 국내 극장가에 걸려 ‘북한판 용가리’로 가족 관객들에게 손짓할 것이다.

또 다른 북한영화인 ‘홍길동’, ‘사랑 사랑 내사랑’ ‘꽃파는 처녀’ 등도 수입 추진 중이며 별 문제없이 선보일 전망이다. TV마다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북한 영화도 넘쳐난다. MBC가 지난 10일과 12일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만든 영화 ‘사랑 사랑 내사랑’과 북한영화 ‘온달전’을 내보냈고, SBS가 10일 ‘홍길동’을 방송했다. EBS도 11일 ‘소년장수’와 ‘영리한 너구리’ 등 북한 애니메이션 특집을 내보냈다.

북한문화 공식 도입 러시도 괄목할 일이지만, 음악 미술 분야는 양측의 인적 접촉과 교류가 활발하다. 오는 8월 15일 광복절 임진각에서는 우리 소프라노 조수미와 북한 테너가 한 무대에 서는 ‘남북화합 야외 음악회’가 문화부·KBS 주최로 열린다. 우리 여성국극단도 북한 ‘피바다가무단’과 공동으로 8월이나 9월쯤 평양봉화극장에서 ‘대춘향전’을 공연키로 합의했다.

미술의 경우, 남북한 작가 33인의 판문점 합동전시회가 성사될 전망이다. 미술협회 박석원 이사장은 “합동전시회 실무 협의를 위한 미술계 인사들의 방북 허가를 통일부로로부터 이미 받았으며, 문화관광부에 예산도 신청했다”고 밝혀, 지난해부터 남북 미술계 사이에 진행된 비공식 협의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종교는 경제분야 다음으로 남북 교류 역사가 오랜 분야다. 불교 조계종은 최근 ‘민족공동체추진본부’를 구성하고 불교 유적 공동 조사 사업, 통일기금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감리교는 96년 폐쇄된 북한의 교역자 양성기관 ‘평양신학원’의 재개설 비용을 지원키로 지난 5월 북측과 합의했다. 가톨릭은 전국 15개 교구와 북한 각 지역간에 자매 결연을 했다.

이런 교류 무드 속에서 남북 정상회담이 좋은 성과를 맺으면 남북의 문화계 사이엔 더욱 커다란 물꼬가 트일 전망이다. 모든 장르에 걸쳐 상호방문과 교류·합작이 잇따르고, 일반 관객의 자유로운 왕래까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지휘자 정명훈씨는 98년 방북연주 승인을 받아놓고 북측을 노크하고 있으며 한국오페라단의 ‘황진이’, 민주당 김경재(김경재)의원이 단장을 맡은 남성 합창단 ‘프리모 칸탄테’가 평양공연을 준비중이다. 예술의전당은 2001년 4월을 목표로 북한 국립교향악단의 서울공연을,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북한 측 조선미술박물관의 교환전시회를 각각 추진중이다. 한편 한국연극협회는 10일 남북연극교류특별위원회(위원장 노경식)를 구성하고 올 가을 열릴 23회 서울연극제에 북측연극인들을 초청키로 했다. 가톨릭에선 김수환(김수환) 추기경과 서울대교구 교구장인 정진석(정진석) 대주교가 방북 의사를 밝혔다.

영화 방송의 남북한 합작 움직임도 활발하다. 평양 교예단을 초청해 대북 교섭력을 자랑한 NS21 김보애씨는 북한과 합작 영화 ‘아리랑’을 제작할 계획을 밝혔고, KBS는 대하사극 ‘태조 왕건’의 개성 현지 촬영을 추진중이다. 방북하는 차범석 예술원 회장은 “방북 중 남북한 문인들의 작품을 함께 수록하는 100권짜리 ‘통일문학전집’의 공동간행을 북측과 협의하겠다”고 밝혀 가장 교류가 뒤진 문학분야의 경우도 회담을 계기로 남북교류가 급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상호교류’라고 하지만 현재로선 우리가 북한 문화를 수용하는 쪽으로 치우쳐 있다.

/정리=김명환기자 mhk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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