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허구를 배합한 김일성 회고록


◇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92년 4월 김일성 80회 생일을 맞아 1, 2권이 동시 출간된 이래 현재 8권까지 나와 있다.

김일성 주석 회고록이다. 92년 4월 그의 80회 생일을 기념해 1, 2권이 동시에 나온 이래 98년 제8권까지 출간됐다. 이 가운데 제7, 8권은 김 주석 생전 그가 남겼다는 증언과 각종 자료에 기초해 그의 사후에 쓰여진 것으로 "계승본"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다. 시기적으로는 1912년 4월 그의 출생부터 1945년 8월 광복까지 30여 년의 기간을 포괄하고 있다.

북한은 광복 직후부터 저자와 제목, 형식을 달리하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김일성 전기물을 발행해왔다. 하지만 김일성 본인이 자기 삶을 반추하는 형식을 취한 전기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세기와 더불어≫는 부분적으로 새로운 사실을 적시하거나 설(說)로만 떠돌던 얘기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전주(全州) 김씨의 혈통과 평양 만경대에 정착하게 된 사연, 가계(친·외가)와 기독교의 관계, 만주 길림시절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장을 지냈던 손정도 목사 집안과 맺은 인연 등이 그 예다. 김일성이 만주에서 빨치산활동을 하다 40년 말 소련으로 넘어가고 광복 후 배를 타고 원산을 통해 입북하는 일련의 과정은 공식 역사서인 ≪조선전사≫에도 언급되지 않은 내용으로 흥미로운 대목이다.

반면 확인할 수 없거나 검증되지 않은 것들을 사실화한 내용도 적지 않다. 증조부인 김응우를 남의 묘를 봐주는 산당지기로 묘사하면서도 동시에 제너럴 셔먼호 격침사건의 주역으로 등장시킨 것은 역사왜곡이다. 1930년 7월 첫 당조직 ‘건설동지사’를 결성했다는 얘기, 김정일이 백두산밀영에서 태어났다는 주장 등도 ‘회고록’의 의미를 무색케 하는 것들이다. 전체적으로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놓음으로써 더욱 교묘하게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김일성 회고록 발간문제가 제기됐을 때 당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와 당역사연구소가 서로 자기들이 집필하겠다며 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문학작품의 관점에서 보면 선전선동부의 소관사항이 되고, 우상화와 역사적 시각에서 접근하면 당역사연구소의 업무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김정일 위원장이 나서 전반적인 업무는 당역사연구소가 주관하고, 선전선동부는 작가들을 지원하라며 교통정리를 했다. 실제로 회고록을 쓴 사람은 권정웅 최학수 김정 등 이른바 "수령형상문학"의 산실인 4·15문학창작단 소속 작가들이라고 전해진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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