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통한문제연구소 이교관 기자입니다.

요즘 우리 대북정책 당국의 최대 고민은 여전히 대북 전력(電力) 지원 문제입니다. 북한은 지난해 12월 4차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제기했던 전력 50만㎾ 지원 요구를 올해 들어 김정일의 서울 답방(答訪)과 관련해 우리측 대북 라인과 가져온 막후 접촉을 통해서도 집요하게 해 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우리 정부는 김대중 대통령이 요 몇달 사이에 여덟 번씩이나 공개적으로 요청한 데서 엿볼 수 있듯이 김정일 답방을 성사시키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김 대통령이 이처럼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김정일 답방에 목숨 거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까닭은 자신의 3단계 통일방안 중 1단계인 남북연합을 실현시키기 위해선 김정일 답방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김 대통령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대북정책 당국으로서는 김정일 답방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라도 북한이 그토록 원하는 전력을 지원하고 싶어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릅니다. 이는 임동원 통일부 장관 등 대북정책부문 고위 당국자들이 최근 공개 석상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살펴보면 금새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임동원 장관이 지난 22일 언급한 것을 보노라면 우리 정부가 대북 전력 지원 문제를 목하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임 장관은 이날 제주도 호텔신라에서 열린 대한상의 최고경영자대학 초청 강연에서 1단계로 100만평이 개발되는 개성산업단지에 150개 기업을 입주시켜 연간 20억 달러의 수출을 기대하고 있다면서 개성산업단지에는 문산에서 개성까지 선로를 연결해 우리의 전기는 물론 가스를 공급하고 인천항을 통한 교통망도 갖추게 될 것이라고 밝힌 것입니다.

그는 또, 현재 북한의 전력 사정은 수요의 절반밖에 공급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워 작년 국민소득은 500달러 밑으로 내려갔고, 수출은 5억 달러 등으로 지난 90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임 장관에 의해 처음 공개적으로 밝혀진 것이지만 조선일보 북한섹션 'NK리포트'는 이미 지난 3월 19일자로 보도했던 것입니다. 기자는 당시 기사에서 임 장관의 대북 전력 지원 청사진이라고 적시하지는 않은 채 정부는 내부적으로 이미 구체적인 대북 전력 지원 방안을 마련해 놓았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북한이 지난해 현대와 합의한 개성공단에 전력을 공급하고 이 공단에서 생산된 물품은 개성과 인천 간에 고속도로를 건설해 인천항이나 영종도 신공항을 통해 수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기자는 또 당시 대북 정책 당국이 한 때 개성과 인천 간 거리가 3 시간이나 걸린다는 점을 고려, 임진강에 항만을 건설하는 문제를 검토했으나 임진강의 조수간만의 차가 일정치 않아 개성과 인천 간 고속도로를 건설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덧붙였습니다.

문제는 임 장관의 발언 배경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비판의 핵심은 김대중 정부로서는 김정일 답방을 성사시키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북한에 전력을 지원하고 싶은데 국내 여론도 좋지 않고 미국도 반대하자 임 장관으로서는 대북 전력 지원은 결코 일방적인 지원이 아니라 남북경협을 위한 것임을 강조해 국내의 비판적 여론과 미국의 반대를 누그려뜨리려 한 것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 같은 비판이 옳든 그르든 간에 김대중 정부는 북한에 전력을 지원할 수 없게 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미국이 전력은 미북 간 제네바합의와 관련된 것으로 한국이 관여하지 말라며 최종적으로 반대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 정부가 대북 전력 지원을 추진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은 미국의 반대였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 94년 10월 미국이 제네바에서 북한과의 핵 합의인 기본 합의(The Agreed Framework)를 체결하게 된 목적과 관련된 것입니다.

당시 미국이 이 기본 합의를 통해 북한에 경수로 2기를 지어주기로 약속한 까닭은 북한이 부족한 전력을 생산한다는 명분으로 건설한 영변의 흑연감속로에서 나오는 플루토늄으로 핵무기를 대량 개발할까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즉, 미국이 핵무기 제조에 쓰일 만큼의 플루토늄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려진 경수로를 2기 건설해주어 북한이 거기서 나오는 전력으로 전력난을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대신 북한으로 하여금 영변 원자로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데 사용한 연료봉(fuel rods) 등 이른바 과거 핵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게 함으로써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을 완전히 동결시키겠다는 것이 제네바 기본합의의 핵심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경수로 건설은 전력난을 겪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개발하지 못하게 막기 위한 미국의 지렛대인 셈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김대중 정부가 북한에 전력을 지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그 같은 지렛대의 힘을 확 빼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IAEA가 북한이 핵확산금지오약(NPT) 관련 의무 조항들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해 왔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로선 더욱 더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전력 지원을 탐탁지 않게 여겨 왔습니다. 클린턴 전 행정부도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클린턴 행정부는 지난해 개최된 한 미 일 간 대북 정책 공조를 위한 대북정책감독그룹(TCOG) 회의를 통해 한국 정부에 대북 전력 지원을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로서는 김대중 정부가 지난 98년 말 금강산 관광사업을 허용, 북한에 막대한 경화(硬貨)가 유입되도록 함으로써 미국이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의지해 온 대북 경제 제재라는 지렛대를 사실상 무용지물로 만든 전과(前科)를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한국이 북한에 전력을 지원할까 우려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 전력 지원은 잭 프리처드 미국 한반도 담당 특사가 지난 25일 북한이 NPT 의무를 준수할 때까지 경수로 건설을 중단하겠다고 밝히면서 어렵게 된 것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합니다. 프리처드 특사는 이 날 미 하원 국제관계위원회 아태 소위에 출석해 북한은 IAEA가 명시한 NPT 의무 조항들을 완벽하게 준수해야 한다며 북한이 그 같은 의무를 완벽하게 준수할 때까지 경수로 건설 계획은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즉 미국이 경수로 건설을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까지 북한으로 하여금 IAEA에 의한 핵사찰 등 NPT 의무 조항을 준수하게끔 만들기 위한 강경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마당에 명색이 동맹국인 한국이 이 같은 미국의 대북 전략을 훼손시킬 수 있는 대북 전력 지원을 추진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입니다.

김대중 정부는 이처럼 대북 전력 지원이 불가(不可) 판정을 받는 국면에 직면하자 단기적으로 효과가 좋은 품목을 찾고 있다고 합니다. 현재 대북 정책 당국에 의해 가장 유력한 거론되고 있는 선물로는 쌀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우리 정부가 전력 대신 쌀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깊이 고려하고 있다면 이는 북한이 지난 5~6월부터 1997년이래 최악의 식량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데이비드 모튼(David Morton) 세계식량계획(WFP) 평양사무소장은 지난 4월 본지와 가진 서울-평양 간 이메일 인터뷰에서 지난해와 올해 초 한국을 포함해 외부에서 지원된 식량이 지난 5월부터 거의 바닥날 것이며 이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벌써 소화 문제를 야기하는 대체 식량 개발에 나섰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북한은 이처럼 어떻게든 시급하게 외부로부터 식량을 동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몰려 있습니다. 그러나 경화가 부족한 북한으로선 태국이나 베트남 등 재고식량이 넉넉한 동남아 국가들에게서 쌀을 비롯한 식량을 구입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외상도 불가능한 실정입니다.

태국은 지난해에 이미 쌀을 외상으로 달라는 북한에 그 전의 외상을 갚기 전엔 절대 안된다고 거절한 적이 있고 베트남도 지난 11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방문하기 전에 그가 쌀을 외상으로 달라고 할까 봐 미리 외상은 안 된다는 얘기를 흘려 기사화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으로선 일본에서 들어오고 있는 50만t의 식량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는 것이 한 대북 전문가의 지적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북한이 하반기 식량난을 돌파하는데 필요하다고 보는 100만t의 쌀을 김대중 정부에 요청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대북 정책 당국도 그 가능성에 대비, 쌀을 전력 대신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말하자면 남북 관계에서 쌀은 전력의 대체재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은 것입니다. 최근 태국의 쌀 상인들이 한국 정부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수십만t의 쌀을 구입해 북한에 지원할 것이라는 예측 하에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는 한 대북 전문가의 귀띔이 예사롭지 않게 들리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문제는 김대중 정부가 실제로 전력이 아닌 쌀을 비롯한 식량을 지원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국회 동의를 거치는 등의 최소한의 몇 가지 원칙을 지키겠느냐는 우려가 제기된다는 것입니다. 동포들인 북한 주민들이 최악의 식량난을 겪는 상황에서 누가 식량 지원의 필요성을 부인하겠습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김대중 정부는 북한에 지원할 식량을 구입하는 데 소요되는 수천억 원의 남북 교류협력기금이 정부가 마음대로 사용해도 되는 쌈짓돈이 아니라 국민들의 혈세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이와 함께 김대중 정부가 김정일 답방을 앞당기기 위한 수단으로 대북 식량 지원 카드를 활용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 또한 높습니다. 식량을 김정일 답방을 성사시키기 위해 지원할 경우 누가 주고 누가 받는지 전혀 분간이 안될 정도의 굴욕적인 주객전도(主客顚倒)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뭘 줄테니 뭐라도 내놓으라는 식의 기계론적 상호주의에 집착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국민 혈세로 대규모 식량 지원을 하는 만큼 북한이 정부 차원에서 예의를 갖춰 정중하게 식량 지원을 요청하게 하고 지원된 식량이 북한 당 정 군의 중간 간부들에 의해 착복되지 않고 일반 주민들에게 골고루 전달되는지를 체크하는 기제를 북한 당국으로부터 보장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는 지난해 하반기에 우리 정부가 차관 형식으로 태국 등지에서 구입한 쌀 등의 식량 중 상당량이 북한 중간 간부들에 의해 장마당으로 빼돌려져 팔리기도 했었다는 것이 일부 확인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지적이 많습니다.

어쨌든 프리처드 특사의 25일 발언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정부가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북 전력 지원을 강행할지 아니면 전력 대신 식량을 지원하게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지도 모릅니다. 부시 미 행정부로선 여전히 김대중 정부가 지난 98년 11월 미국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막기 위해 취해 왔던 경제제재 조치를 사실상 무장해제시키는 금강산 관광사업을 허용, 클린턴 행정부를 물 먹였던 전례를 반복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북 전력 지원 문제로 살펴 본 한미 관계는 이처럼 양국 관계를 언제 혈맹이라고 불렀는지 의심할 정도로 급속히 신뢰를 상실해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가 한미 관계 등 대북 문제와 관련된 외교에서 아무 문제 없다고 확신에 찬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에 대해 00하면 용감하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하여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이교관 기자 haedang@chosun.com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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