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정상회담 하루 연기를 통보해오자 통일부 관계자들은 속으로 더욱 애를 태우고 있다. 그 동안 평양 일정에 관해서는 ‘첫날, 회담과 만찬’, ‘둘째날, 회담과 만찬’ 정도의 큰 윤곽은 알고 있었지만, 좀더 구체적인 세부 사항은 거의 아는 것이 없었던 터에, 다시 전체 일정이 하루씩 순연되자 답답해하는 것이다.

우리 측은 경호·의전 실무 관계자들이 선발대(선발대)로 5월 31일부터 평양에 올라갔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교체되면서 지금까지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세부일정 협의는 거의 진전이 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우리 측 관계자들은 회담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다고 통일부 관계자들은 전하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측은 선발대 방북 이전까지 판문점에서 5차례에 걸쳐 진행된 준비접촉 과정을 북측의 요구대로 비공개로 넘겼다. 회담 의제나 내용에 관해서도 구체적인 사전 협의를 하지 못했고, 대통령의 일정을 출발 직전까지도 국민들에게 알리지 못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에 따르면 첫날인 13일 만찬 주최자가 김정일(김정일) 국방위원장인지 김영남(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지도 아직 확인이 안 되고, 다른 일정들도 대부분 최종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같은 방식이 북한 측의 ‘전형적’ 수법이라며 초기부터 충분한 대비책을 세웠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북한의 고위층 출신 기술자는 “무엇보다 김정일 위원장의 신변 안전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다 보니, 일정 비공개나 연기 등, 그쪽 편의대로 조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송영대(송영대) 전 통일부차관은 “과거에도 회담을 앞두고 연기시키거나 무산시킨 적이 있었다”며 “북한 측에 불리한 의제를 꺼내지 못하도록 하는 심리적 견제용으로 협상을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최병묵기자 bmchoi@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