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불과 하루 남짓 앞두고 회담 일자를 연기했을까. 북측이 내세운 ‘기술적 문제’가 진짜 이유일까.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또 정부는 정말 10일 밤 처음으로 연기 통보를 받았을까. 북측의 돌연한 회담 연기를 둘러싸고 궁금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국제 관례상 정상회담 연기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대해 박재규(박재규) 통일부장관은 “남북관계를 제3국 관계와 비교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물론 과거 북측이 회담을 연기한 적이 없지 않았다. 91년 4차 평양 고위급회담은 당초 합의한 2월에서 10월까지 무려 8개월이나 연기됐다. 그때는 북측이 기본합의서 논의 과정에서 회담을 미루는 게 전술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상들끼리의 만남이고, 회담을 거부하기 위한 것도 아니어서 경우가 다르다.

때문에 청와대를 비롯해 우리 정부 당국자들은 “정상회담 준비가 덜 끝났기 때문”이라는 북측 설명을 그대로 믿는 분위기이다. 한 당국자는 “북측도 준비를 하느라고 했는데, 도로 정비와 경호·의전 관련 등 준비가 완벽하게 끝나지 않은 것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당국자는 “북한이 회담을 하지 않으려는 것이면 몰라도, 준비 미비 외에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북측이 공개적으로 밝히진 않았어도, 우리 언론들이 평양 일정을 상세히 보도해, 양 정상과 우리 대표단의 안전에 문제가 생겼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고위층 출신 귀순자는 “북한에선 김정일의 동정이 미리 새 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특히 외부 사람들이 들어올 경우, 테러의 위험성도 있어 더욱 보안을 강화한다”고 설명했다. 박준영(박준영) 청와대 공보수석이 11일 회담 연기사실을 발표하면서 그동안 우리 언론의 보도 방식에 강한 불만을 토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한 당국자는 “북한 측도 인터넷을 통해 국내 신문 보도를 거의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있다”면서 그동안 북측이 우리 언론 보도를 여러 차례 문제 삼았음을 지적했다.

이와 관련, 일부에선 북측이 며칠 전 ‘완벽한 경호와 안전을 위해’ 회담 일정을 하루씩 연기하자고 평양에 있는 우리 측 선발대(선발대)에 제의, 이 문제를 비공개리에 협의하다가 10일 밤 최종 합의한 것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회담 연기는 북측의 일방 통보가 아니라 남북한의 ‘합작품’이란 것이다.

이같은 분석대로라면, 10일 밤의 북측 전화통지문이란 것도 실제로는 선발대가 최종 결정을 서울에 보고한 내용이며, 이를 11일 오전에 발표하기로 북측과 이미 합의한 것으로 관측된다. 정부 당국자들이 “회담 일정이 하루 연기됐지만, 정상회담 자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일부 남북회담 전문가들은 북측이 회담의 이니셔티브를 쥐고, 몇몇 미합의 사항에서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기 위해 우리 측을 한 번쯤 밀어보는 전술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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