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대(대)한반도 영향력 회복에 발벗고 나서기 시작했다. 크렘린궁은 9일 새벽(현지시각)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가까운 시일 내에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전격 발표했다. 발표 시간과 관련, 크렘린궁의 한 공보 관계자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여론 파급효과를 최고 극대화시킬 수 있는 시점이 선택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너무 일찍 발표하면 극적 효과가 떨어지고, 너무 늦게 발표하면 남북정상회담 뉴스에 밀린다는 점을 감안, 오늘 새벽이 선택됐다”면서 “한국 주요 일간지들이 일요일자(토요일 제작)를 발행하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됐다”고 전했다.

‘가까운 시일’이라고만 했을 뿐 정확한 일정은 발표되지 않았는데, 푸틴 대통령의 7월 18일 중국 방문과 7월 21일 G8 오키나와 정상회담 등의 일정을 고려해 볼 때, 7월 19일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이번 방북이 실현되면, 이것은 구(구)소련을 포함해 러시아 최고지도자의 첫 북한 방문이 된다. 푸틴 대통령의 방북은 소련 붕괴 이후 계속 약화돼 온 러시아 외교력을 복원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상실된 대(대)한반도 영향력을 회복시키겠다는 푸틴 정부의 강력한 의지 표명으로 풀이되고 있다. 지난 옐친 정부 시절, 러·북 관계는 매우 소원했었다.

러시아의 대(대)북한 영향력은 현저히 저하됐으며, 북한도 러시아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옐친 퇴진 이후 이런 껄끄러운 관계가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고 최근 양측의 접근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이런 시점에 남북정상회담이 발표되고, 또 이를 앞두고 김정일이 중국을 방문, 중국의 정통적 대북 영향력이 다시 한번 과시되자 행보를 서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은 푸틴의 방북 발표를 즉각 환영하고 나섰는데, 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견해도 많다. 현재 푸틴은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NMD)체제 구축을 막아야 할 입장에 놓여 있으며, 이에 72년 탄도탄 요격 미사일(AB M) 협정을 개정하자는 미국의 제안을 강력히 거부하고 있다.

클린턴 미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 간의 지난 4일 모스크바 정상회담에서도 NMD문제가 집중 논의됐으나 결국 견해차를 좁히는데 실패했다.

그런 데 속마음이 어떻든 미국 측이 ABM협정을 개정, NMD체체를 구축해야 한다는 표면적 명분은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이다. 따라서 푸틴으로서는 북한과 이 문제를 논의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는 미국으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라는 것이다.

/모스크바=황성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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