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 지이다리에 도적 끓듯 한다’는 속담이 있다. 영남 창녕(창녕)과 영산(령산) 경계인 지이다리에는 나무새를 앉힌 장대―곧 솟대(소도)가 서 있었다. 죄 짓고 포졸에게 쫓기거나, 빚지고 빚쟁이에게 쫓기거나, 척지어 원수에게 쫓기거나, 부부싸움으로 남편에게 쫓긴 아내가 이곳에 들면 더 이상 추적하지 못하게 돼 있는 성역인 것이다. 법이 생기기 전인 원시사회에서 복수나 원한, 망명에서 저질러지는 살상을 막고자 이처럼 성역을 만들어 두었다.

삼한시대인 마한(마한)에는 50개 부락국가가 있었는데 나라마다 솟대라는 방울을 단 큰 장대를 세우고 죄인이 그 경계 안에 쫓겨 들면 추적할 수 없게 했다. 여수와 순천 경계에 원집이라는 솟대 세운 집이 있었는데 죄짓고 이 집에 숨어들면 잡아가지 못하고 후에 두 고을 원님끼리 사안을 해결했다는 관행보고도 있다. 일본에서도 이혼하고 싶은 아내나 실화(실화)를 하고 쫓기는 사람이 특정 절간 담안에 신발만 던져도 추적에서 구제받는 솟대 성역이 있었다. 이처럼 정치적-사회적-인간적 보복에서 인명을 구제하는 성역을 유럽에서는 아지르라하는데 구약성서에만 아홉 군데나 나오며 프랑스에는 18세기 후반까지 이 아지르 관습이 남아 있었다. 아지르 성역은 교회나 사찰, 물방앗간, 대장간, 샘터 등으로 나라나 시대에 따라 달랐으나 이성을 상실한 상태로부터 인명 살상을 구제하는 솟대정신은 유사 이전부터 있었던 생명존중 관행이었다.

현대에는 외국 공관이 이 정치적 망명자를 위한 아지르 구실을 하고 있는데 1990년대 초에 알바니아의 서독-프랑스-이탈리아 공관에는 연 수만명이 피신을 해서 구제받았고 쿠바의 반체제인사들이 대거 체코 대사관에 피신한 것이며, 파나마의 노리에가가 바티칸 공관에 피신했던 것도 그것이다. 통일 이전의 동독 시민들이 헝가리와 체코의 서독 대사관에 피신한 것이 통일 독일의 전주곡이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러시아에 망명한 북한 남녀 7명의 강제 송환은 구약성서시대 아니 원시시대 이래의 생명존중사상, 곧 솟대정신의 거역이라는 차원에서 한국뿐 아니라 온 인류에 두고두고 기억될 통사(통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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