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백남순 외무상을 참석시키지 않은데 이어, 25일 이 포럼에 제출한 ‘연례안보전망 보고서’를 통해 미국을 맹비난하고 나서 미·북 대화 진전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북한은 영문 8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서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MD) 구축과 강경한 대북정책을 ‘북한 사회주의 체제 말살 책략’으로 규정하면서 미·북관계가 94년 제네바 합의 이전으로 회귀할 수 있음을 경고했고, 국방력 강화 방침까지 천명했다.

북한은 이날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서도 유사한 입장을 피력했다.

이런 기조는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북한이 일관되게 밝혀온 것이기는 하나 국제사회에 처음 제출한 보고서에서 이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는 점에 전문가들은 주목하고 있다.

이는 북한의 전략이 쉽게 수정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북한은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발을 맞춰가면서 미국과의 대화를 진전시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미국을 상대로 ‘벼랑끝 전술’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자세임이 거듭 확인된 것이란 분석들이다.

북한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 구축에 비판적인 중국 등이 참여한 이번 회의에서 미국의 미사일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함으로써 미국을 압박하고 이를 향후 협상의 지렛대로 삼겠다는 나름의 판단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팀들은 그동안 북한이 ‘벼랑끝 전술’을 펼 경우 연연하지 않을 것임을 수차 밝혀왔기 때문에 북한의 의도대로 미·북관계가 굴러갈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하노이=허용범기자 he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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