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 개최일이 눈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실향민들은 자기들이 두고온 저 북녘땅을 우리의 국가원수가 공식방문한다는 점에서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번 회담에서는 ‘이산가족문제’도 다뤄진다고 하니 실향민들은 ‘반세기의 한’이 이제야말로 풀리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갈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산가족문제는 실향민들만의 간절한 관심사가 아니다. 최근 어느 여론조사기관이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정상회담에서 해결해야 할 의제 선호도를 물었더니 이산가족문제를 가장 많이 짚어 40%에 달했다. 이북도민회의 동화연구소가 실향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47%가 이산가족문제를 꼽아 역시 수위로 나타났다.

그러고 보면 실향민들 자신이나 남한토박이나 할 것 없이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첫손에 꼽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며 그럴수록 남·북 정상회담에 거는 국민적 기대와 촉구의 강도를 실감하게 된다.

이산가족문제는 이처럼 뜨거운 현안이 되어 있지만 그 해법은 신중에 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키워드부터 말하자면 이산가족문제의 ‘상품화’를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이산가족문제를 자기의 정치체제 차원에 묶어 놓고 다뤄왔었다. 그들이 과연 인도적 문제로 접근할 것인지 아직은 촌탁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측이 사려깊지 못한 발상으로 접근했다가는 또 낭패를 당하기 쉽다.

이러한 의구심은 북한이 일관되게 보여온 행태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우리 측 대표가 공을 서두른 나머지 ‘자기꾀’에 자승자박하는 일도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산가족해법에서의 ‘자기꾀’란 섣불리 경제협력과 직결시키려는 경박한 경제논리이다. 이 경제논리는 오늘의 북한이 매우 궁핍하다는 사실과 통일 이전의 동·서독이 경제지원과 인도 문제를 연결시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전례에 근거를 두는 것 같다.

북한이 이산가족문제를 진실로 동포애와 인도적 차원에서 풀어 가려는 실천의지를 보여 주면서 그 바탕 위에서 경제적 대가성을 원한다면 긍정적으로 수용할 만하다. 그러나 이산가족문제를 종전처럼 정치체제 차원에 묶어둔 채 ‘보급투쟁’하듯이 일방적으로 챙기기만 하면서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면 이거야말로 이산가족문제를 악용하는 사술(사술)에 다름아닌 것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 측이 실향민들의 참마음을 바로 읽지 못하고 이산가족문제를 상품화하는 것이다.

이산가족 절대다수가 원하는 해법의 첫 단추는 희망자 전원의 생사확인과 서신교환의 실현이다. 실향민 여론조사에서도 73% 이상이 생사확인, 서신교환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백명의 고향방문단 교환이나 한두 군데 면회소 설치로 한정된 인원의 면회 실현에 만족하려 한다면 본말전도의 시행착오에 다름아닌 것이 된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고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로써 그나마 성과가 아니겠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이산가족들의 참마음에는 그러한 단순논리가 적용되지 못함을 알아야 한다.

가령 100만명이 굶주리고 있는데 그들의 허기를 채워줄 밀가루나 라면을 제공하지 않고 고작 100명만 선정하여 비프스테이크를 대접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구휼책이 될 것인가. 위화감을 조장하고 내부분열만 유발하게 된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얻어내야 할 해법의 데드라인은 전반적인 생사확인과 서신교환의 실현이다.

이번 회담에서 당장 결실을 보지 못하면 다음 회담을 기약하면서 꾸준히 추구함이 옳다. 회담 성과의 공을 서두르는 나머지 북한이 노릴지도 모를 이산가족문제의 상품화에 말려들어 본말이 뒤바뀐 악과를 따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마땅하다.

/ 이 경 남 전 동화연구소(이북5도민회 중앙연합회 부설) 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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