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55년 만에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각계 전문가와 시민들은 이 회담이 남북 평화공존, 나아가 통일의 초석이 돼주길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도 섣부른 낙관과 지나친 기대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경계를 잊지 않았다.

▲안병준(안병준) 연세대 교수=정상회담 이후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정상회담이 끝나면 북한을 동반자 관계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치의 동반자’는 아니더라도 ‘생존의 동반자’로 보고 서로를 배척하는 분위기를 없애야 한다. 서로 상생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북한의 남침위협, 전쟁위협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한 남북공조보다는 한·미공조가 앞서야 한다. 정치성을 띠지 않은 문화, 경제협력은 얼마든지 활성화되어도 좋다고 생각한다.

▲최우영 납북자가족협의회 총무=아버지(최종석·납북 당시 42세)는 87년 백령도 동진호 사건으로 납북되셨다. 남북 정상회담을 맞아 이산가족 상봉 등 여러 가지 기대가 있지만 동진호나 납북자 이야기는 전혀 언급되지 않고 있어 안타깝다. 대통령께서 납북자 가족들의 소원을 꼭 기억해 주길 바란다.

▲손창섭(회사원)씨=26개월의 군 생활이 우리나라의 보통 남자에게 지우는 무게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것이다. 200만군이 휴전선을 지키고 있는데 10분의 1만 부담이 완화돼도 얼마나 좋겠는가.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군축 등 단계적으로 통일의 초석이 마련되기를 바란다.

▲한완상(한완상·상지대 총장) 전 통일부총리=어떤 변화가 올지는 정상회담 성과를 보고 난 뒤 얘기하는 게 옳다. 다만 어느 정도의 성공을 전제로 할 때, 국제관계에서 북·미, 북·일 수교가 가까운 시기에 완성될 것이라는 점만은 말할 수 있다. 이는 한반도에서 교차승인이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한반도 냉전체제의 획기적 전환을 의미하고 한·미, 한·중, 한·일 관계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정화(현정화) 한국마사회 탁구팀 코치=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단일 코리아팀으로 출전한 기억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대화합의 원칙이 확인돼 탁구를 비롯한 스포츠가 다시 한번 ‘작은 통일’을 이루기를 바란다. 진정한 통일의 분위기는 작은 교류들이 활발해질 때 무르익는다고 생각한다.

▲이철승(이철승) 자유민주민족회의 대표상임의장=납북인사 8만명, 미귀환 포로 5만명, 납치인사 8000명인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한다면 이 문제에 대한 해결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리고 6·25남침에 대한 시인·사과와 재발 방지를 약속받아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와 국체를 지키려는 역사관과 원칙을 확립해야 한다. 안보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고은(고은) 시인=서로 적대해왔는데 이제 전환기에 올 만한 계절이 됐다. 물론 하루 아침에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한 세대쯤 지나봐야 약간이나마 이질감이 해소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걱정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는 일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일을 잘 수행할 수 있는 조건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력이 더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 않는다. 우리는 이미 몸집이 크다. 지금 해야 한다.

▲조명철(조명철·전 김일성대 교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우리의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현안 문제를 점진적으로 풀어가는 회담이 됐으면 한다. 이번 회담에 대해 여론이 분열되는 모습도 좋지 않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서울에 꼭 한 번 와서 발전된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변화된 서울을 보면 남한과 협력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김길선(전 북한 제2자연과학출판사 기자)씨=개인적으로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하지만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이번 회담이 남북한 정상의 개인적 이익에 이용되선 안된다. 민족 공통의 이익을 위해, 평화, 인권, 통일을 위한 회담이 돼야 한다. 두 정상은 자신들이 민족의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명심하고, 회담에 임하고 민족의 운명을 반드시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김병호(김병호) 국무총리실 총괄조정관=남북정상회담은 통일로 가는 큰 전환점이 될 것이다. 남북한 당사자뿐 아니라 미·일·중·러 등 세계의 지지와 관심 속에 이뤄지는 이번 정상회담은 만남 자체만으로도 우리 민족에게는 가슴 벅찰 일이다. 이에 더해 한반도의 오랜 대결구도를 종식시키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알찬 성과를 가져온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

▲오지명(탤런트)씨=정상회담이 열리게 된 것만도 큰 성과다. 특히 대중예술 분야의 벽을 조금씩 허물었으면 한다. 적어도 연극과 음악공연의 교류가 시작되면 통일을 훨씬 앞당기리라고 본다. 내가 동료 배우들과 북한에 가서 연극 공연을 할 수 있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다.

▲공노명(공로명) 전 외무장관=북한이 기대하는 것은 남쪽으로부터 경제협력을 얻어내는 일이다. 베를린선언에서 이야기했듯이 절대로 북한이 모험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어야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상황에 의미 있는 변화들을 가져오기 시작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북정상회담으로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다 변화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현재 너무도 일찌감치 축제 분위기다.

▲서진영(서진영) 고려대 교수=남북 정상이 만나는 역사적 의의를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낙관론은 금물이다. 남북회담의 역사를 보면 7·4공동성명과 같은 역사적인 순간도 있었지만, 실효성이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이번 회담에서 일단은 공존공영을 하겠다는 포괄적인 합의와 이해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산가족 상봉 같은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평화공존의 필요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차승렬(차승렬) 경실련 통일협회 부장=남북 양 정상이 기존의 갈등과 반목에서 벗어나 민족의 이익에 앞장서길 기대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이산가족 서신교환과 장기수 송환 문제의 해결이다. 또 이번 회담이 평화 협정 체결, 평화적 군축, 법령 정비(북의 노동당 규약, 남의 국보법)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어령(이어녕) 이화여대 석좌교수=체제이데올로기같이 민감한 주제가 아닌, 분단 이전부터 양쪽에 공통적으로 있었던 것을 대상으로 공동사업을 하며 신뢰를 쌓아가는 작업을 해야 한다. 가령 고고학 공동발굴들이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세미나를 한다고 해도 기층문화, 민속 등 이런 주제로 하는 것이 좋다. 저쪽이 변한 게 없는데 성급하게 달려들면 실망만 한다. 민족 동질성을 대전제로 해서 서로 다르지 않은 것, 즉 문화적 완충제를 이용해야 한다.

▲손낙구(손낙구) 민주노총 교육선전 실장=남북이 정권유지의 수단이 아니라 남북화해와 통일의 실질적 진전의 발판으로 이번 정상회담에 임하길 바란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통일의 걸림돌인 제도와 법을 제거해 통일기반을 조성해야 한다.

▲이성만(이성만·실향민)씨=실향민 입장에서 감개무량하다. 예전 백두산에서 북한 땅을 바라봤을 때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믿지는 않지만 통일의 과정이 되리라 확신한다. 실향민으로서 바람이 있다면 서신왕래등 실향민을 위한 구체적인 해결책이 합의된다면 남북회담을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홍정길(홍정길·남서울은혜교회 담임목사) 남북나눔운동 사무총장=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한 교류와 협력은 봇물처럼 터져 나올 것이다. 정부에 지적하고 싶은 것은 북한 관계에 있어 우리 내부의 조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90년대 초부터 북한을 접촉하고 지원해온 종교계나 NGO들은 일부 기업이나 단체가 북한에 너무 돈을 많이 주는 바람에 굉장히 어려워졌다.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정말 북한을 돕고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인지 내부의 중지를 모아야 할 때이다.

▲김태호(김태호) 삼성 구조조정본부 부장=우리나라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은 아직도 한반도 하면 분쟁지역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선입견은 한국제품과 기업의 이미지를 끌어내리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은 개최 자체만으로도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지나치게 서두르다보면 자칫 북한을 움츠러들게 할 수 있는 만큼 한꺼번에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면 안 된다.

/김인구기자 ginko@chosun.com

/홍석준기자 udo@chosun.com

/이한우기자 hwlee@chosun.com

/안석배기자sbahn@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