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인진·북한인권시민연합이사·고려대 교수

전체적으로 김현호 소장의 발제문은 객관적 사실과 합리적인 판단에 기초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본 토론자는 기본적으로 김현호 소장의 시각에 동조하면서 발제문에서 제기된 내용을 보완한다는 차원에서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1. 탈북과 사회적응의 통합적 이해 필요

김현호 소장은 "탈북자 문제는 크게 보아 탈북 발생, 제3국(주로 중국과 러시아) 체류, 한국 또는 제3국 입국과 정착이라는 진행과정을 밟는다. 이 3단계 과정은 상호 밀접하게 연계돼 있어 하나의 컨베이어벨트를 연상시킨다"고 지적하였다.

본 토론자도 이전의 논문에서 탈북과 사회적응의 통합적 이해를 강조한 바 있다(윤인진, 2000). 김현호 소장이 지적하듯이 탈북자가 탈북을 결심하고, 중국이나 러시아 등지로 월경을 하고, 일정 기간 체류를 한 다음, 국내로 입국하고, 국내에서 사회적응을 하는 과정들은 서로가 긴밀히 연결된 과정들(interlinked processes)이다.

따라서 탈북과 사회적응은 통합적으로 이해되어야 하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탈북 이전단계, 제삼국 체류단계, 국내 입국과 정착단계로 구분하여 각 단계의 특성들과 경험들을 긴밀하게 연관시켜 그것들간의 관련성을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림 1> 탈북과 사회적응의 통합모델


2. 재외탈북자 실태

중국과 러시아 등지에서 체류하는 재외탈북자들의 비참한 실태와 인권유린사태는 이미 잘 알려진 바이다. 특히 재외탈북자의 70% 이상이 여성인 상태에서 이들 여성들의 매춘 및 인신매매는 심각한 수준에 달하고 있다. 그러나 재외탈북자의 아동 및 청소년의 문제 중에서 그 심각성에 비교해서 잘 논의되지 않는 것이 이들의 교육문제이다.

이들은 불법체류자의 신분이라 중국내 학교에 다닐 수 없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중국내 호구(주민증)가 필요한데 이것을 만드는데 한국돈으로 100만원 이상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움의 기회를 박탈당한 이들은 간단한 셈조차 못하는 것은 물론 언어능력도 상당히 저하되어 있다고 한다. 이들이 북한으로 강제송환되건 아니면 한국으로 입국하건 다시 학교에 복귀하여 학업을 계속할 때 심각한 학습장애를 예상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지능과 인성 발달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critical period)이라고 할 수 있는 아동 및 청소년 시기에 기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것은 육체적 안전 문제 못지 않게 심각한 문제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3. 국내 탈북자의 사회적응 실태

여러 선행 연구들을 종합해보면 대부분의 탈북자들의 사회적응은 물질적인 측면과 정신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남한사회에서의 부적응은 종종 일탈, 범죄행위와 연결되기도 한다.

부적응 다음으로 일반적인 적응유형은 '고립'이라고 볼 수 있는데, 탈북자 중에는 비록 경제적으로는 안정된 직장을 갖고 적절한 수준의 소득을 벌어도 정신적으로는 북에 두고 온 혈육에 대한 죄책감, 북한의 테러위협에 대한 공포감, 남한주민들의 탈북자에 대한 편견과 차별로 인해 아직 남한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이들은 남한주민들과 친밀한 일차적 관계를 맺지 못하고 사회에의 소속감도 갖지 못하고 또래 탈북자들끼리만 교제하는 경우가 발견된다.

탈북자의 성공적인 사회적응을 위해서는 우선 경제적 자립에 필요한 소득과 안정된 직장을 갖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며, 그와 함께 민간단체(종교단체, 사회봉사단체 등)와 일반 남한주민과의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일부의 1998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친목단체에 참여하고 있다고 응답한 탈북자가 전체 응답자중 14%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져서 탈북자의 사회적 연결망 형성이 매우 취약한 것으로 드러났다.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의 1999년 설문조사 결과 역시 탈북 여성들이 가족 외에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정부관계자, 다른 탈북자들, 종교인들이라고 밝힘으로써 사회활동의 정도와 인간관계가 매우 제한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토론자가 남한에서 취업 경험이 있는 총 77명의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2000년에 수행한 연구에서는 취업 정보를 수집할 때 주로 본인 스스로 찾거나, 가족, 친구, 친지 등을 통하거나 또는 담당형사·통일부를 통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리고 자신에게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누구와 의논하는지를 살펴본 결과 주로 가족, 친척, 담당형사, 동료 탈북주민과 의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남한사회의 자원(직업 및 교육기회, 친분관계 등)에 연결될 수 있는 사회적 연결망의 확충은 필수적인 과제이다. 독일의 이주민 정책을 살펴보면 독일정부가 시민대학, 스포츠 동호회, 세미나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여 이주민들과 현지주민들간에 친밀한 교제와 접촉을 늘리려고 노력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도 전국에 수많은 사회교육시설, 종교계의 사회복지관 등의 시설을 활용하여 탈북자와 남한주민간의 교제와 접촉을 적극적으로 주선하여 양자간에 편견과 고정관념을 깨고 신뢰와 호감이 생기도록 해야 한다.

4. 사회통합 차원에서의 탈북자 보호 및 지원대책

통일 후 남북한 주민간의 사회통합은 이인삼각 경기로 비유될 수 있다. 두 사람은 공동운명체로서 함께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 이때 어느 한쪽이 보조를 맞추지 못하면 다른 한쪽에게 짐만 되고 결국은 양쪽 모두 경주에서 낙오하게 된다. 따라서 양쪽 모두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하고 협력관계를 맺어야 한다.

같은 이치로 통일 후 남북한 사회통합과정에서 북한출신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와 능동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독일 통일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 중의 하나는 통일 후 동독출신 주민들의 잠재력을 활용하기 보다 오히려 이 잠재력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방향으로 사회변혁이 일어나면서 동독출신 주민들이 '2등국민'이라는 열등감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동독정체성'이라고 하는 저항적 지역정체성이 발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런 점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회통합 과정에서 북한출신 주민들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그들의 가치와 능동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깨달아 갈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하고, 교육, 취업, 주거 등의 생활세계 영역에서 사회의 기회구조에 형평하게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1) 재외탈북자 보호 및 지원대책

재외탈북자들은 단지 이들의 생명과 인권보호 차원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우리가 큰 관심을 갖고 보호해야 할 존재이다. 7인의 탈북자 사건에서처럼 재외탈북자의 생명과 인권의 문제는 국제적인 외교마찰과 분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우리 정부는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중국, 러시아, 북한, 몽고, 태국 등 인접국가들을 상대로 인도주의적이고 동포애적인 견지에서 외교적인 노력을 펼쳐 이들을 보호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탈북자의 인권을 중요한 의제로 삼아 국제사회에서 공론화하여 인권보호에 앞장서야 한다. 인권문제는 정부의 대북정책과 외교정책의 주요한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외국정부와의 관계에서 북한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국가들을 통하여 탈북자 인권보호를 추진해야 한다. 아울러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나 국제회의에서 북한인권문제와 탈북자인권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야 한다.

정부는 대북 포용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북한을 자극하는 일을 피해왔고 그로 인해서 북한인권문제와 재외탈북자들에 대해서 애써 개입하지 않으려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우리 동포인 탈북자들의 보호에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한다면 과연 무엇을, 누구를 위한 대북 포용정책인가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북한과의 화해 및 유화정책을 추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적절한 시기에 그리고 적절한 수준과 방법으로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추진하는 것은 대북정책의 효율적인 수행 그리고 전략적 운영이라는 측면에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강·온전략 혹은 '당근과 채찍'을 적정하게 구사함으로써 포용정책의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만약에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권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면 비공개적인 방법으로 즉, '조용한 외교'를 통하여 탈북자 소환중지, 한국행 허용, 탈북자 처벌 중지 등을 조건으로 북한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인권문제는 북한이 감추고 싶은 취약성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체면을 지켜주면서 거래할 수 있는 방안이다. 통일 이전 서독이 동독의 정치범 등 죄수들을 동독과의 거래를 통하여 석방하고 서독으로 이주시킨 방법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둘째, 정부는 NGO 또는 민간단체와 파트너십을 형성하여 역할분담을 통해 다양하게 탈북자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앞서 지적하였듯이 탈북자문제는 첨예한 외교마찰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정부가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 시민단체가 앞장서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정부는 이들 민간단체들이 탈북자 보호 및 지원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재정 및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 탈북자문제에 있어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문제해결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결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탈북자문제를 접근할 때 지나치게 민족적이고 감정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보다는 보다 현실적이면서도 효율적인 방식을 모색해야할 필요가 있다. 많은 민간단체에서는 재외탈북자들에게 난민지위를 부여하라고 중국과 러시아정부에게 주장하는데, 이들 정부들이 그러한 주장을 수용할 가능성은 현재 없고, 실제로 모든 탈북자들이 난민지위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의 사람들이 아니다.

재중탈북자의 경우 단기체류자, 장기체류자, 한국행 희망자로 구분될 수 있으며, 단·장기 체류자의 경우 한국으로 입국할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 특히 단기체류자의 경우는 식량을 구하러 일시적으로 월경한 사람들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탈북자의 처지와 특성에 따라서 구분되는 보호 및 지원방안이 필요하다.

단기체류자의 경우에는 식량 및 의료품을 지급하여 북한으로 귀환하도록 하는 것(북한으로의 귀환시 처벌을 받지 않는 상황이라면)이 바람직하다. 또한 현지에서 체류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고 그러한 정착여건이 충족된 경우에는 현지 정착을 지원하는 방안으로 노력이 모여져야 한다. 그 외에 북한으로의 귀환이 불가능하고, 현지 정착 가능성이 낮고, 본인이 강력히 희망할 경우 한국행을 적극적으로 주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와 같이 모든 탈북자들을 동일하게 취급하여 이들에게 모두 난민지위를 부여하는 운동을 벌이기보다는 비록 소수라도 진정으로 정치적 난민이라고 볼 수 있는 케이스들을 찾아내어 입증함으로써 UNHCR과 중국정부도 난민지위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들이 축적되고 확대되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난민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도록 하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재외탈북자들에게 난민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는 보다 실현가능한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한가지 대안이 '일시피난민 지위'이다. 일시보호제는 관련당사국의 합의하에 일반화된 갈등·분쟁 또는 인권남용지역을 탈출한 피난민에게 보호를 제공하는 한 방식으로, 난민보호상 의무인 난민인정 절차와 난민의 제반권리(교육, 복지, 노동권)에 대한 유보가 인정된다.

재외탈북자의 경우에 실향유민에 대한 '일시보호' 차원에서 강제송환을 금지하고 최소한의 보호를 실시하는 방식을 취한다면, 탈북자들의 인권을 보호하고 관련국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대안으로 평가된다.

중국과의 외교적 노력이 성공하지 못할 경우 탈북자들을 중국이 아닌 제3국, 특히 몽고로 유입하여 그곳에서 탈북자 보호시설을 민간단체 또는 국제인권단체로 하여금 운영하도록 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중국과 달리 몽고는 북한의 눈치를 그다지 크게 보지 않고 한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원하기 때문에 탈북자 일시보호시설의 장소로는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정부는 몽고에 대한 경제 지원 등을 할 때 탈북자 보호의 역할을 몽고 정부가 감당하도록 요구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보호시설 건립과 유지를 위한 재정지원을 하고, 실제 운영은 우리민족서로돕기, 한민족복지재단, 두레마을, 국제적십자, 앰니스티 인터내셔녈 등의 민간단체와 인권단체들이 감당하도록 하는 것이 인도주의적 성격을 보여주기에 적합하다.

이런 보호시설을 자활공동체(예를 들어 농장 또는 공장)로 발전시켜 탈북자들이 그곳에서 함께 일하고 한국에 대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장소로 삼는 것이 좋을 것이다.

2) 국내탈북자 지원대책

국내로 입국한 탈북자들은 우선적으로는 신변의 안전이 보장되었지만 이들의 한국사회적응은 순조롭지만은 않다. 이들을 위한 정착지원은 기본적으로 이들의 경제적 자립과 사회문화적 통합을 이루는 방향으로 세워져야 한다. 일시적이고 임시방편적인 지원정책이 아닌 장기적 자립 정착을 유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정책이 원칙과 일관성을 가지고 지속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부 정책은 국민의 공감과 지지를 얻을 때만이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탈북자 정착지원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노숙자, 실업자, 생활보호대상자와 같은 사회약자층과의 형평성을 고려하여 시혜적인 지원보다는 자립 정착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즉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스스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고 장비를 제공하는 것이 국민적 동의와 지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길이다.

그렇지만 형평성을 고려한다고 해서 탈북자를 단순한 사회약자층으로만 간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들은 민족적 과제인 남북통일을 준비하고 통일 후 남북한 주민간의 사회문화적 통합을 이끌 통일역군이기 때문에 이들의 경험과 역량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이런 시각에서 탈북자의 자립정착의 핵심과제는 첫째, 자립정착을 위한 기회구조를 확충하고, 둘째, 사회적 연결망과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탈북자의 자립정착을 위한 정부와 민간단체의 지원은 단순히 경쟁력과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경제적 논리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보상과 배려와 같은 사회적 논리도 동시에 고려하며, 그 두 논리간의 접점을 증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제가 성공적으로 수행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사회환경이 탈북자에게 우호적인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우선 탈북자에 대한 국민의식을 개선하고 국민적 합의와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교육과 홍보가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탈북자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확대되어야 한다. 현재와 같은 재정적, 인적 자원으로 앞으로 계속 증가하는 탈북자의 자립정착을 도모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관심과 지원을 확대할 때 민간분야의 참여가 확대될 것이다.

(1) 자립정착을 위한 기회구조 확충사업

구체적으로 자립정착을 위한 기회구조의 확충과 관련하여 시행할 수 있는 지원사업들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 현재의 일시불로 지급하는 정착금제도를 고용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한 아무리 정착금 액수를 늘린다고 해도 밑빠진 독에 물붙는 격이다. 그리고 노숙자, 실업자, 생활보호대상자와 같은 우리 사회의 다른 종류의 사회약자층과의 형평성 문제를 고려해서도 냉전시대의 산물인 포상적 차원에서의 정착금 지급제도는 재고될 시점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착금 제도를 바꾸는 것은 상당수의 탈북자를 빈민층으로 전락할 수도 있고, 지금까지 받아왔던 것을 포기하라고 하면 탈북자들이 강하게 반발할 것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다.

새로운 정착금 제도는 당분간 현재의 지원수준을 유지하면서, 한편으로 탈북자들이 초기 단계의 정착에 필요한 물적 토대를 마련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취업기회를 증대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두 과제를 동시에 성취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정착금을 두 영역으로 구분하여 시행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한 영역은 물적 기반 조성을 위한 것으로, 2,000만원 정도의 지원금(주택지원금을 포함하여)을 현재와 같이 초기 정착단계에 지급하도록 한다.

다른 영역은 취업과 직장적응력을 증대하기 위한 것으로, 2,000만원 가량을 실업수당 또는 고용지원금으로 활용하여 사회 편입 후 최소한 2년 동안 탈북자의 적성과 능력에 적합한 직장에서의 임금을 지원하도록 한다. 만약 고령이나 신체적 장애로 인해 취업할 수 없는 사람의 경우에는 종전과 같은 방식으로 정착금을 지급하도록 한다.

현재 통일부에서는 취업보호제를 시행하면서 탈북자 근로자의 임금을 반 액 지원하고 있다. 취업보호제에서 시행하고 있는 고용지원금 제도를 정착금 제도와 통합하여 운영할 경우 중복지원을 줄이고 동일한 액수의 지원금으로 더욱 실효있는 정착지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탈북자이라고 해서 보상차원으로 정착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취업기회를 확대하는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 국민적 공감과 합의를 이끌어내기 쉬울 것이다.

둘째, 경제력이 없는 탈북자들에게 국가, 지방자치단체, 또는 기타 공공단체가 설치·관리하는 공공시설의 식료품·사무용품·신문·잡지 등 일상생활용품의 판매를 위한 매점이나 자동판매기의 사업권 기회를 현실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이러한 소규모의 자영업을 운영하는 데에는 특별한 기술이나 지식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정착 초기 단계의 탈북자들에게 적합하며, 특히 가족성원들이 함께 참여해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경제적 자립을 앞당길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현재 탈북자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에는 이러한 방안이 포함되어 있지만 실제적으로 혜택을 본 탈북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정부는 보다 적극적으로 공공편의시설 사업권 기회를 확대하여 자활·자립능력 부족자, 생계곤란자로 하여금 근로소득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셋째, 자영업의 육성은 탈북자의 자립정착을 위한 효과적인 자조모델이 될 수 있다. 자영업 육성을 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시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생계형 창업지원제도」는 지속적으로 운영되어야 하고, 단지 생계형 창업지원에만 국한하지 말고 사업성있고 경쟁력있는 탈북자 기업가들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확대되어야 한다.

자영업의 장기적 발전을 내다보며 소수의 사례라도 성공적인 모델 케이스를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도기업가 육성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 방식을 통해 경쟁력있는 기업가를 우선적으로 지원하여 성장하도록 하고, 이들의 성장효과가 다른 탈북자들에게 고용창출과 창업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겠다.

그리고 탈북자가 경영하거나 또는 다수의 탈북자를 고용하는 기업체를 대기업이나 국유기업체의 하청업체로 선정하여, 제품의 안정된 판로와 수입을 보장하거나 우수기업체로 선정하여 세제혜택, 홍보, 연구개발비 등의 우선적 지원 등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탈북자의 적성과 능력을 활용하여 통일 대비 통일 역군으로 활용한다는 차원에서, 북한에서 교육에 종사한 경력이 있는 교사, 교수들을 재교육하여 초중고등학교의 통일교육의 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현재 국정원, 경찰청, 통일원 등에서 개별적으로 탈북자의 생계지원과 관리 차원에서 안보강연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안보강연은 비정기적이고 일시적이어서 일자리로서는 부적절하다. 이러한 비체계적인 안보강연을 초중고등학교의 정규 교육 커리큘럼으로 통합하여, 탈북자가 정식 교원으로 통일교육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때 탈북자 교원은 자신이 거주하는 교육구에 속해서 해당 구의 초중고등학교를 순회하면서 통일교육을 실시하고, 그의 임금은 해당 구의 학교들이 공동으로 부담하든지 정부에서 지급하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

이런 제도는 우리 사회가 탈북자의 북한에 대한 산 경험과 지식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으면서, 본인에게는 통일을 위해 봉사한다는 사명감과 자긍심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2) 사회적 연결망과 안전망의 구축 사업

탈북자들이 우리 사회에서 사회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남한 주류사회로의 사회적 연결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연결망을 확충하기 위한 사업들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 통일부, 탈북자후원회, 민간단체협의회 등의 지원기관의 재정과 인력을 확충해서 실질적인 지원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통일부의 인도지원국 정착지원국의 경우 담당 사무관이 4∼5명 정도에 불과하고, 이들의 역할은 남북이산가족상봉과 같은 탈북자의 정착과 직접 관련없는 일까지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

탈북자후원회의 경우도 상담원과 대외협력부장과 같이 실무적인 일을 수행하고, 민간단체와의 연계사업을 추진해야 하는 담당자들이 낮은 수준의 경제적 보상으로 이직률이 높고, 전문가로서 성장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민간단체들의 경우도 인력난과 재정난의 문제로 인해 탈북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정부는 통일부와 탈북자후원회의 인력과 재정 지원을 대폭 확대하여 명목적인 차원이 아닌 실질적인 차원에서의 지원사업이 전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민간단체에게 자신들의 전문영역에서 세분화된 지원 사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정부 지원만으로 부족할 경우에는 탈북자후원회와 민간단체협의회가 공동으로 기금조성을 위해 대국민 캠페인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탈북자의 규모도 증가할 것이고 통일 후 북한 출신 주민의 사회통합을 준비한다는 차원에서 현재의 북한이탈주민후원회를 확대 발전시켜 장기적으로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공단」 또는「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재단」 을 설립하는 것도 전향적으로 구상할 필요가 있다.

둘째, 각종 자원활동과 결연사업을 확대하여 탈북자를 우리 사회의 기회구조에로 연계할 수 있는 사회적 연결망을 확충하여야 한다. 현재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자원활동을 전개하고 있는 북한인권시민연합, 천주교 민족화해위원회,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한국인성개발연구원, 하나로 교육복지연구원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원활동과 결연사업은 참여하고 있는 인적자원의 구성면에서 주로 대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어 연령층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점이 문제이다. 또한 자원활동에 필요한 최소한 교통비와 활동비도 변변하게 지급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다양한 연령층의 그리고 전문적 기술과 경험을 갖춘(예를 들면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전문가, 사업가, 법률인, 직업상담전문가 등)의 자원활동가들이 참여하여 다양한 욕구와 필요를 갖고 있는 탈북자들을 우리 사회의 자원처로 연계시키는 사회적 연결망의 확립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셋째, 탈북자들에게 남한 사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고, 탈북자들간에 그리고 탈북자와 남한 주민간의 교류를 증대시키기 위해서 홈페이지를 구축하고 온라인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온라인 공동체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구성원들간에 평등한 관계에서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게 하므로 사회적으로 위축된 탈북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홈페이지를 통일부 또는 탈북자후원회와 같이 관 주도로 하게 되면 자발성과 창의성이 떨어지게 되어 탈북자들의 참여가 부족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와 민간간에 역할을 분담하여 정부는 재정 지원을 담당하고 전체적인 방향을 제시하도록 하고, 개인 또는 민간단체들이 자신들의 전문 영역에서 다양하고 창의적인 내용(contents)을 담은 홈페이지를 개발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정부나 북한이탈주민후원회는 자신들이 모든 것을 다하려는 생각보다는 네트워크의 네트워크(the network of networks)를 구축한다는 차원에서, 각종 탈북자 관련 사이트를 연계하는 포탈 사이트(portal site)를 구축하는 것이 비용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탈북자들을 상담하고 지도하는 전담 사회복지사가 확충되어야 한다. 현재는 보호경찰관이 사회 편입 후 1∼2년 동안의 보호관리를 담당하고 있고, 그 이후에는 거주지보호담당관과 취업보호담당관이 일상생활과 취업에 관련한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보호경찰관이 보호 이외에 다른 형태의 지원사업을 하는 것도 무리이고 전문성이 떨어진다. 상당수의 탈북자들이 보호경찰관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하는 것도 보호경찰관이 경찰이 자신의 전문 영역이 아닌 것까지 감당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거주지보호담당제도와 취업보호담당제도는 형식은 갖추어져 있지만 탈북자의 입장에서 그들에게 적합한 지원사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이제는 탈북자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상담기술을 갖춘 사회복지사들이 하나원 입소부터 사회 편입 후에도 연계해서 탈북자의 사회 적응을 책임지는 제도로 발전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탈북자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단위별로 1∼2명의 전담 사회복지사를 채용하여 지원 프로그램과 모델을 개발하고 실효성을 검증한 후, 점차 다른 지역으로도 적용범위를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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