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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최경일]탈북자 실상과 대책에 관한 일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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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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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통일정책 부위원장· 목사

먼저 「탈북자 실상 및 대책 마련 공청회」의 중요한 자리에 토론자로 참여할 수 있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목회자의 자격으로 이런 귀한 자리에 불러주신 것은 인간의 생명존중과 자유와 인권이 가장 소중하기에 생명의 위협에 놓인 수 십만의 북한형제들의 절박한 삶에 대하여 우리가 소극적인 정책에서 벗어나 실천적인 대안을 모색하려는 주최측의 배려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현호(통한문제 연구소장 )님의 발제강연은 탈북자문제가 제기된 90년 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탈북자에 관련된 정치 및 사회관계의 근본적인 문제와 발전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원칙없는 대처방법과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하신 점은 탈북난민문제가 더 이상 방치 되서는 안되며 이제는 국제화된 탈북자의 인권문제를 국제적인 관점과 국가적 과제로 해결되어야 할 것을 제시한 것입니다.

Ⅰ. 본 토론자는 발제강연 내용 중에서 토론자에게 공감을 주고 토론내용의 결론을 말씀드리면 정부는 확고한 탈북자의 인권정책을 지켜야 하며 이제는 난민인정을 위한 국제협력의 틀을 만드는 획기적인 대안을 모색하고 탈북자들의 국내 정착과정도 임시처방이 아니라 남북통합시대를 바라보는 새로운 구조로 개편되어야 할 문제를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97년 식량난으로 북한을 탈출하여 4년 동안 중국을 유랑하다가 북경주재 유엔난민 판무관실로 긴급 피난하여 국제이슈화함으로 한국에 들어 온 장길수군 가족은 다행히 중국이 올림픽 유치경쟁을 벌이고 있는 외교적 시점과 맞아 떨어짐으로 단기간에 해결된 사건입니다. 그러나 약 10만명∼약 30만명에 이르는 탈북자들은 여전히 심각한 상태에 놓여 있다. 본인은 탈북난민문제 중 중요한 요소는 우리 정부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94년 6월 러시아 벌목공 50여명이 한국망명을 희망하였으나 우리정부는 북한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망명을 허용하지 않는다 라고 발표했다가 1주일 뒤 북한이 핵사찰을 거부한다는 발표가 나오자 맛대응으로 벌목공을 받아 드린다는 정 반대의 입장을 나타내고 이후 선별적으로 수용한 사실이 있습니다

2) 99년 11월에 북한을 탈출하여 중국을 거쳐 러시아로 밀입국하려다가 체포되어 중국으로 송환되고 다시 북한으로 송환되어 처형당한 「7인의 탈북자 사건」의 경우가 있습니다.

북한은 인권이 가장 심각한 나라입니다 정치범 수용소는 말할 것도 없고 탈북자에 대한 처벌도 엄격합니다. 북한이 인권이 개선되고 내부적으로 북한이 변화하리라는 기대는 어렵습니다 북한경제를 돕고 적대관계를 개선함으로 북한주민의 식량난을 해소하는 포용정책도 당연히 진행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은 언제나 자유와 인권이 우선되어야 한다. 오늘도 남북통일시대도 정부는 인간의 생명존중과 자유·인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확고한 확고한 정책으로 나가야 합니다.

둘째로, 중국과 러시아에 있는 탈북자들의 「난민지위문제」입니다.
장길수군 가족의 한국행 이후 중국공안당국과 북한당국은 대대적인 탈북자 색출작업으로 이미 1.000명 이상을 검거하고 북한으로 송환하고 있다고 보도합니다. 탈북자들이 단순히 식량을 얻으려고 온 사람들이라고 하나 중국에 넘어왔다가 북한에 돌아가면 정치범으로 처벌 받습니다. 탈북자들이 북한을 탈출하게 되는 배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식량사정으로 가족의 숫자를 줄이려고 식구 중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중국친척집에 보내는 경우
2. 친척방문으로 식량을 얻어 북한에 복귀하는 경우(수시로 탈북자하다가 체포된 후 감옥생활을 겪고 다시 탈북자가 됨)
3. 부모가 둘 다 사망하여 꽃제비가 된 경우
4. 가족이 대부분 굶어 죽어 남은 식구가 중국으로 넘어 오는 경우
5. 남편이나 아내가 식량을 구하려고 중국에 왔다가 비참한 북한의 식량사정을 생각하고 돌아가지 않는 경우
6. 북한내 장마당의 장사를 목적으로 불법으로 중국을 수시로 드나드는 경우
7. 공무를 목적으로 중국에 왔다가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무역업무, 러시아 벌목공, 건설노동자, 농업노동자, 보위부, 유학생)
8. 북한내 인신매매조직에 의해 중국에 팔려 가는 경우
9. 인민군이 국경부대를 이탈하여 중국으로 넘어 오는 경우

최근에는 가족단위의 탈북자가 급증하고 있고 이미 10년 이상 방치된 탈북자문제는 북한의 구조상 해결되지 않습니다. 탈북자 보호활동에 있어서 종교단체나 기타 NGO활동은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계속된 탈북문제는 충분하게 국제화 되어있으며 이제는 국가적 과제와 국제협력시스템으로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유엔 및 미국과의 공조활동 등으로 난민인정 지위를 획득하여 각국에 분산·수용을 해야 합니다. 월남패망 이후 베트남 난민인 보트피플(Boat People)의 예는 좋은 교훈이 됩니다.

수 많은 남부 월남인들이 월맹의 정치보복을 피해 바다로 탈출을 시도하였다. 약 10만명이 바다에 빠져 죽은 것으로 보고되고 12만명 정도는 유엔의 난민판정으로 각국에 수용되어 보호를 받다가 약 70%정도는 월남의 귀환하였다. 이들이 보트피플(Boat People)이다.

80년 대 월남의 보트피플(Boat People)의 경우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들은 51년 난민협정과 67년 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음으로 국제법의 구속을 받지 않아 월남의 난민을 보호 할 의무가 없었다. 그러나 베트남을 탈출한 보트피플을 위한 긴급정책이 즉시 필요했다.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들과 유엔이 앞장서서 CPA(Comprehensive plan of Action)의 포괄적 협약을 세워 말레지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홍콩 등 인접국가들이 협정에 참가하였다. 이 규정은 베트남의 난민들을 서방으로 망명할 때까지 또는 베트남에 귀환할 때까지 수용, 보호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이때 일시적인 보호조치를 받은 월남난민의 숫자는 약 12만명에 달했다. 한국도 월남난민을 인도적인 차원에서 일시 수용하였다.

이들 난민들은 해당국가에서 난민판정을 받았고 이들 중 3만3.000명은 제 3국에 정착하고 이들 중 7만3.000명은 다시 남부 월남으로 돌아갔다. UNHCR와 유럽연합(EU)는 베트남에 직원을 파송하여 귀국한 월남난민이 형사처벌을 받지 않고 정착하도록 감시활동을 벌였다. 미국은 4개의 민간기구가 나서서 월남난민의 귀국을 돕고 800만 달러를 지원했다. 미국은 별도로 CPA와 협상을 벌여 베트남 난민 수 만명을 미국에 받아 들였다. 월남난민의 탈출러시가 진정되고 95년까지 이 협정은 존속되었다. 인간존중의 국제Program은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셋째로, 한국사회에 유입된 탈북자들의 정착문제입니다.
통일 후에 우리가 겪게될 남북사회 통합과정의 혼란은 심각할 것입니다 따라서 탈북자들을 통한 정착과제는 남북통합 예비과정이며 민족공동체의 실험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그동안 정부가 시행한 '하나원'에서의 정착교육을 탈북자들과 일반여론이 평가하는 점을 겸허하게 수용하고 새로운 방법을 구축하여야 할 것입니다.

국내입국 후 기초조사와 정착훈련단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탈북자가 남한으로 입국하게 되면 도착 즉시 '대성공사'라는 국방부 정보사령부에서 운영하는 조사. 수용시설에 도착 조사과정을 마치고 1999년 7월 설림된 하나원으로 이전하여 3개월 동안 교육생으로 훈련을 받습니다. 하나원을 마치면 남한사회에 편입하게 되고 각 지방자치단체별로 지정되어 거주지 보호담당관(145개 광역, 기초단치단체)을 통해 거주지 편입 및 각종 사후 지원을 받고 2년간 담당형사에 의해 신변보호 및 생활안내, 지도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1) 대성공사의 경우

탈북자들은 대부분 비참한 삶의 환경에서 고통을 받아 외상장애 스트레스징후군으로 고통을 받습니다. 조사과정에서 탈북자들은 억압사회에서 겪었던 고통을 상기시키고 다시 두려움을 갖게됨으로 남한과 북한이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큰 꿈을 안고 찾아왔던 한국사회에 첫 번째 좌절을 경험합니다.

2) 하나원의 경우

하나원의 교육은 매일 아침 점호에 이어 새벽기도나 개인운동을 마치고 오전 9시부터 일과가 시작되고 강의는 오전교육과 오후실습으로 나뉩니다. 탈북자들이 3개월 동안 받는 교육은 강의 520시간 문화적 이질감해소에 268시간 진로 및 기초직업훈련에 140시간으로 99년 7월 개원한 이후 약 500여명이 배출되었습니다.

하나원을 졸업한 탈북자들은 하나같이 답답하고 교육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라고 말하고 배운 내용 중 유일하게 운전면허 하나만 필요하고 박사들은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강의 하는 바람에 잘 이해되지도 않고 주로 남한사회에 환상을 심어주는 말을 하지만 퇴소 후에는 실망감이 더 커진다 라고 말합니다. 대부분 탈북자들은 하나원은 임시수용소 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1999년 탈북자교육을 위한 「하나원」이 문을 열면서 사회적응훈련이 시작되었는데 하나원에서 실시하는 교육이 한국사회 적응교육에 다음과 같은 한계점을 갖고 있습니다.

① 탈북자들의 출신성분, 가족구성, 직업배경 등이 다양화한데도 불구하고 개인특성은 무시하고 집단교육을 실시하고 있고,
② 영락교회에서 기증한 미싱 몇대로 재봉기술과 자수를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고 있지만 탈북여성들이 하나원에서 배운 직업교육이 한국사회에 나외서 써 먹을 것이 없다고 말하며,

③ 하나원의 위치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직업교육을 대행할 기관이 근처에 없고 민간인들의 출입을 통제함으로 사회통합훈련의 가장 중요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집단주의·감시·통제가 싫어서 한국에 왔는데 계속해서 통제와 감시속에서 교육을 받으라고 하니까 교육자체가 싫다는 것입니다. 반면 독일의 경우 철저하게 개인능력 개발위주의 푸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반해서 하나원은 사회통합교육이 아닌 집단훈련을 실시하는 셈입니다.
④ 전문성의 결여 : 직원들이 탈북자들의 생활지도는 물론 교육까지 맡고 있음으로 개인차를 인정하는 교육과 상담 등 전문성이 부족함.

⑤ 교육기간의 부족 : 3개월 동안의 교육으로 50년 동안 단절된 이념과 문화, 사회와 교육과 직업 등 남북사회 통합훈련과 한국사회 적응을 위한 교육기간이 너무 짧고 주입식 교육보다 사회적응과 적업교육의 훈련방법으로 개선되어야 함.

독일의 경우

서독은 난민수용정책에 있어서 정치성을 배제하고 동독주민의 사회적응력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서독 기본법 제 116조는 동독이주민을 내국인으로 간주하고 동법 제 11조는 이들에게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며 이들이 서독대사관을 통하여 서독입국을 원하는 경우는 모두 내국인의 입국절차를 적용하고 1989년 11월 베르린장벽이 철폐되면서 수 많은 동독주민이 서독으로 이주하자 대규모 난민수용정책을 수립하여 실행하였고 1990년 7월에는 긴급수용법을 제정하여 이주민들에게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원을 제공하였습니다.

이주민들이 서독사회에서 자립, 정착하기 위한 기초적인 지원과 동독에서의 재산권을 포기하고 생명을 무릅쓰고 동독을 탈출한데 대한 보상의 차원에서 물질적인 보상을 실시하였습니다. 이주민들의 수용절차는

(1) 연방수용소(입국 후 2∼3일)
(2) 주 중앙수용소(2∼3일 수용)
(3) 임시거주지(개인주택 입주 전 약 1년∼2년)
(4) 개인주택 입주절차

서독정부는 이주민대책에 있어서 정부는 재정지원과 제도적인 법률지원을 하고 민간단체는 자문활동, 세미나, 사회적이며 심리적인 푸로그램을 담당하여 정부와 민간단체의 협력을 효과적으로 수행함으로 비용절감은 물론 사회통합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였습니다.

정착정책의 원칙은 초기에 적응훈련과 최소한의 보상을 감당하고개개인의 생활문제는 자신이 책임지는 방법을 택하고 경제적인 능력이 전혀 없는 경우는 사회복지체계로 흡수시켰습니다. 치밀한 계획과 실천으로 동·서독통합을 실시함에도 동독주민은 자기비하를 느끼고 서독사람을 경제밖에 모르는 자로 비난하고 서독사람들은 동독사람들이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른 자 라고 비평함으로 서로의 편견을 극복하고 정신적 통합을 이루기란 얼마나 어려운지를 깨닫게 합니다.

결론

탈북자들의 비참한 환경을 정확히 조사하고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난민인정활동을 강화하여야 합니다. 그럼으로 북한민주화가 진행됩니다. 현재 1.600여명에 달하는 탈북자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인식 대전환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치르게 될 통일비용의 절감과 효율성 그리고 남북통합의 에비과정을 잘 거쳐야 합니다. 남한주민들의 탈북자에 대한 인식은 그리 곱지는 않습니다. 사회적응에 실패한 탈북자들을 이등국민으로 여기고 앞으로 통일 후에 부담하게될 문제들을 매우 귀찮게 여기고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의 난민지위와 국내정착을 통한 남북통합훈련은 거쳐야 할 통일의 과정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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