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고구려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원로 사학자 손영종(74)이 집필한 고구려 통사(通史)이자 북한 고구려연구의 결정판이다. 1990년 북한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에서 제1권(382쪽)이 나온 이래 97년 제2권(270쪽), 99년 최종판인 제3권(239쪽)이 발간됐다. 97∼99년 국내에서도 영인, 출간됐다.

이 책은 북한이 삼국 가운데 정통으로 삼고 있는 고구려 연구를 집대성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저자 개인의 입장에서도 일생의 학문활동과 연구성과를 집약하고 있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남한 학계에서 변변한 고구려 연구서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에서 국내외의 기존 연구성과를 꼼꼼히 점검하고 그런 바탕 위에서 고구려사 전체를 여러 시각과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점도 이 책이 갖는 특장(特長)으로 지적된다.

『고구려사』는 몇 가지 점에서 기존 연구서들이 보여주지 못한 독특하고 새로운 학설을 제시하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고구려의 건국연도. 종래 고구려 건국기원에 관한 동양삼국의 견해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기원전 37년이 정설로 통용돼 왔다. 그러나 『고구려사』는 이 같은 통설을 과감히 부인하고 고구려의 건국연도를 이보다 200년이나 앞선 기원전 277년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그 논거로는 ▲고구려의 존속기간이 약 1000년에 이른다는 기록이 있고 ▲광개토왕릉비에 광개토왕이 시조 추모왕(동명왕)의 17세손(삼국사기는 12세손)으로 되어 있으며 ▲옛 역사서에 고구려 건국연대가 "갑신년"으로 되어 있을 뿐 구체적 숫자로 명기되어 있지 않은 점 등을 예시하고 있다.

또한 이런 주장의 연장선상에서 기원전 4∼5세기에 고구려의 전신으로 "구려"(句麗; 졸본부여)의 존재를 새롭게 인정하고 그것을 고구려의 역사에 편입시키고 있으며, 초기 5부족 연맹체에 대해서도 이를 왕기(王畿)의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기존 고구려 연구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주장들을 펼쳐내고 있다.

이 밖에 고구려의 영토가 최전성기에 서쪽으로 요하(遼河)를 넘어 대능하(大凌河)유역에까지, 북쪽으로는 거란족이 웅거하던 내몽고자치구까지 미쳤다고 보고 있으며, 지금의 평양일대에 있었다고 하는 한사군(漢四郡)의 하나인 낙랑군에 대해서도 동이족의 한 갈래인 낙랑국이 있었을 뿐이라고 설파하고 있다. 『고구려사』의 이런 대담한 주장은 91년에 출간된 『조선전사』제3권 개정판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저자인 손영종은 박시형(朴時亨) 김석형(金錫亨) 전석담(全錫淡) 등으로 대표되는 북한 역사학계 1세대의 뒤를 잇는 선두주자로 이제는 어언 원로의 반열에 들어서 있다. 상기 선배들과 마찬가지로 남한 출신으로 서울대 사학과에 재학 중이던 50년 10월 이들의 뒤를 따라 월북했다. 90년 일본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기회에 부인과 아들 등 남쪽의 가족들과 극적으로 상봉,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저자는 지난해 3월 『고구려사』의 흐름을 이으면서 그것을 논점 중심으로 재검토해 엮은 『고구려연구의 제문제』를 내놓았다. 이 책은 국내에서도 저자의 동의를 얻어 출간됐다.

/김광인기자 kk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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