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수구명운동 본부장 문국한씨 "장길수군에게 띄우는 편지"

지난 2년 간 중국과 서울을 오가며 탈북 길수가족을 지원하고, 최근 망명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이들 가족을 돌봐온 ‘길수구명운동본부’ 본부장 문국한(49)씨가 그간의 과정과 심경을 "장길수군에게 띄우는 편지" 형식으로 보내왔다./편집자

베이징(北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너희 가족을 보내놓고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모른다. 그런데 겨우 나흘 만에 한국땅을 밟는 모습을 TV로 지켜보았구나. 감격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단다. 게다가 네 형 한길이가 하루 전에 미리 와 있었다니 이게 꿈이 아니고 무엇이겠니? 2년 전 중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 네가 내게 그려보였던 크레용 그림이 생각나더구나.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는 그림 말이다. 그것은 마치 실현 불가능한 꿈같이 아득했었는데.

13일 간의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기 전 너희의 농성장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단다. 일이 터지긴 터졌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에서 하염없이 울었단다. 지난날의 온갖 사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더구나. 너희 대식구와 부대끼기가 하도 힘들어 산속에나 들어가 조용히 살고 싶었던 기억, 아무리 애를 쓰고 공을 들여도 오히려 나를 원수로 대하듯 할 때는 사람이 미워지기도 했단다. 21세기 한반도에 정말 신이 존재할까.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을 이토록 방치하고 있을까 여러 번 생각했단다.

한국에 돌아온 지난 한 주 동안은 한국언론에 기삿거리가 온통 길수가족 얘기밖에 없는 듯한 착각속에 살았다. 어느 상점에 들러 넌지시 "길수가족 아세요?" 물어보기도 했단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듯 "모르면 간첩이죠"라고 하더구나. 그 동안의 온갖 설움과 고통이 다 사라지는 듯 했단다.

길수야. 너는 유난히 눈물이 많은 아이가 아니니. 그것도 이제 열일곱 한참 예민한 나이로구나. 아버지, 어머니, 맏형을 모두 북에 두고 온 셈이 되었으니 네 마음이 오죽하겠니? 네 일기장을 뒤적이다 어딘가에서 고통당하고 있을 어머니를 그리는 글귀를 읽고 눈시울을 적셨다. "나의 어머니. 이제는 늙으셨네. 꽃처럼 곱던 얼굴, 이제는 늙으셨네. 잊지 말자 나를 키운 나의 어머니. 내 크며 알았네. 어머니 그 정성…."

이제 네 어머니를 찾는 일을 도와야 할 것 같구나. 네가 그토록 어머니를 그리듯 또 다른 수만의 고통받는 조선의 어머니가 있음을 잊지 말자꾸나. 슬픔을 딛고 일어나 세상 어디에서든 자랑스러운 길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생활이 답답하고 낯설겠지만 너는 잘 견뎌낼 줄 믿는다. 3년 동안 숨 한번 크게 쉬지 못하고 살아오지 않았니. 네 또래 아이들의 노는 모습을 숨어 물끄러미 바라보던 네 모습…. 우리 곧 만나 동해바닷가에 나가 마음껏 소리라도 질러 보자꾸나.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