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사설
[현장클릭] '탈북 기자'가 다시 본 탈북현장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01.07.13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안녕하세요. 통한문제연구소(NKchosun.com) 강철환 기자입니다.

얼마 전 중국을 다녀왔습니다. 이미 저의 기사가 사진과 함께 크게 실렸는데 사진이 너무 크게 나와 조금 쑥스러웠습니다. 정해진 지면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 다시 글을 쓰게됐습니다.

92년 1월 저는 압록강을 건너 장백(長白)을 지나 연길(延吉)-심양(瀋陽)-북경(北京)-대련(大連)을 거쳐 한국으로 왔습니다. 연길에서 기차를 타고 심양으로 가는데 공안원(경찰)이 제 곁을 지나갈 때 철렁하며 내려앉는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처음 한동안은 무척 고생을 했지만 3개월이 지나자 적응도 그런대로 되고 중국공안이 옆으로 지나가도 조금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새로 사귄 동포 친구와 함께 그가 알고 지내던 공안과 술자리도 함께 했었습니다.

대련에서는 대담하게도 북한 화물선에서 내린 선원들에게 접근해 평양에서 살았던 화교로 신분을 속이고 그들을 안내한 적도 있었지요. 제가 한국으로 넘어오기 직전에는 사실 중국에서 정착단계에 있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사실 이번에 제가 중국에 가서 처음 만난 탈북자는 도망자임에도 불구하고 저의 가이드 노릇을 했습니다. 라디오를 통해 제 이름을 알고 있던 친구라 당사자를 직접 만나보니 아주 감개무량했던 모양입니다. 그는 오히려 저를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제 이름이 너무 알려졌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한 마디했습니다. “나는 엄연히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그랬더니 이 친구 왈 “북한특무들이 그런 걸 가립니까?”

아무튼 조심하라고 하는 말이라 수긍은 했지만 그래도 숨어사는 사람보다 낫지 않을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중국땅 어디가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북경, 대련, 광주 등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자유롭게 중국땅을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미 중국에 와서 1년 반을 살면서 국적도 취득하고 동포들과 장사를 크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술집도 소개시켜 주었는데 “아가씨를 골라줄까” 하는 말에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누가 탈북자고 누가 ‘한국사람’ 인지 잠시 착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탈북자들이 이 친구만큼만 중국에 잘 적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언론에서는 탈북자 모두가 잡혀가고 쫓기고 있다고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지금 중국에는 정착에 성공한 탈북자들도 꽤 있습니다.

탈북자들 역시 중국에 와서 얼마나 빠른 시일내에 중국말을 배우고 문화를 익히는가에 따라 탈북의 성패가 좌우됩니다. 북한식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중국에까지 와서 싸우고 물건 훔치는 등 사고를 치면 영락없이 신고돼 공안에 끌려가게 됩니다.

중국 사람들은 싸우지 않고 도적질만 하지 않으면 누가 뭐라 할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보면 위험한 나라지만 또 한편으로 보면 중국만큼 안전한 나라도 없습니다. 뇌물과 안면이면 안 되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공안에 체포돼 끌려가는 대부분의 탈북자는 동포의 신고에 의해서입니다. 신고를 받았다고 해도 함부로 집에 침입했다가 만약 없으면 거꾸로 공안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그들도 확실한 단서를 잡기 전에는 함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요즘 탈북자들이 많이 잡혀가는 이유는 동포들의 협조가 그만큼 미온적이거나 소극적으로 바뀌었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국경지대 공안원들은 북한사람 한 명을 잡으면 특별보너스 3000위안(한달 월급800~1000위안)을 받는다고 합니다. 이 돈은 나중에 북한측에서 제공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국경공안과 북한의 변방보위부 사이에 이러한 비밀협정이 맺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돈에 눈이 먼 동포와 공안, 그리고 북한의 보위부 요원들은 국경지대를 배회하는 탈북자들을 끊임없이 잡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내륙으로 들어가면 이러한 위험은 많이 줄어듭니다. 탈북자를 잡아도 돈만 주면 거의 풀어주며 웬만하면 귀찮아서 그냥 풀어주기도 합니다.

1998년까지만 해도 북한의 보위부원들은 거지나 다름이 없었다고 합니다. 가장 싸구려 여관에서 자면서 여비가 없어 마음대로 다니지 못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바뀌어 달러를 물쓰듯하니 공안이나 동포들이 이들에게 협조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인지상정인지도 모릅니다.

최근 탈북자들은 한결같이 북한당국이 남한으로부터 지원받은 쌀이나 물자를 되팔아서 그 돈을 전부 국경지대 보위부 활동자금으로 보내준다고 합니다. 주민들을 먹여살리라고 도와준 물자(돈)로 결국 탈북자를 잡아가고 체제를 유지하는데 쓰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연길에서 한 한국인 사업가를 만났습니다. 그는 저를 대접하겠다면서 북한이 운영하는 류경호텔로 안내했습니다. 거기 가보고는 사실 조금 놀랐습니다. 김일성 배지를 단 아가씨들이 “어서 오십시오” 하고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이 제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점잖게 식당으로 들어갔습니다.

춘희라는 27살난 팀장이 직접 우리를 접대해 주었습니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평양시 선교구역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내가 태어났던 중구역과는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불과 다리(대동교) 하나 사이인 것입니다. “실은 나도 고향이 평양”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한국인 사업가는 구면인 듯 농담도 곧 잘했습니다. “저번에 사준 립스틱은 갖다 바친거요?” “아닙니다 내가 씁니다.” “다 빼앗지 않아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는 미국놈들 때문에 우리가 서로 원수같이 지낸다는 말을 했습니다. 제가 남한주민들은 북한사람들을 원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자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머리를 갸웃거리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들이 철저한 교육과 훈련을 받은 기관원이라는 것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저에게는 고향의 동생 같은 처녀들이었습니다. 사진을 같이 찍을 수 있냐고 묻자 흔쾌히 응해주었습니다.

도문을 시작으로 개산툰, 삼평에 이르는 두만강 국경지역을 돌면서 북한의 접경마을을 보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벌거벗은 산등성이엔 무엇을 심었는지 새싹이 돋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밭에서 일하는 모습도 여전했구요.

삼평에서는 중국 공안원들의 경비가 아주 삼엄했습니다. 이유는 삼평을 마주하고 있는 북한의 무산에서 자동차밀수를 끊임없이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몇 달 전에 자동차 밀수를 단속하던 공안원 2명이 북한인으로 추측되는 괴한에 의해 살해돼 공안들의 심기가 아주 불편해진 상황이었습니다.

또 지난 6월 초에 마약을 대량으로 밀매하던 북한인 2명을 체포했는데 중국공안이 연루돼 있어서 공안자체에서도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탈북자 문제뿐 아니라 북한의 공식 기관원이나 외교관들까지도 이제는 중국공안의 집중단속을 받고 있으며 마약밀매와 같은 범죄를 적발했을 시는 과거 북한으로 즉각 송환했지만 요즘은 감옥에 가두고 중국법대로 처리한다고 합니다.

중국 공안에게 북한인들은 달갑지 않은 존재가 된지 오래됐습니다. 또 중국교포들에게도 탈북자는 별로 반갑지 않은 손님이 된 것입니다. 물론 돈이 있거나 한국사람이 도와주는 탈북자는 사정이 다소 다릅니다만.

돈에 미쳐 버린 중국공안과 일부 동포들이 북한 보위부의 상금유혹에 빠져 탈북자들을 대량 신고해 넘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남북화해라는 미명아래 탈북자를 외면하고 박대함으로써 죄없는 수많은 생명이 죽어간 사실을 그 어떤 변명으로도 설명할 수 없게 됐습니다.

심지어 지원해주는 물품들이 되팔려 오히려 동족을 사냥하는데 쓰인다는 증언이 있고 보면 문제는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탈북자들이 최소한 잡혀가지 않도록 조금만 도와줘도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의 답방도 중요하지만 더 시급한 것은 이국을 떠도는 가엾은 동족에게 최소한의 구원의 손길을 보내는 것입니다.

태산같이 믿고 구원을 요청하는 탈북자들에 대한 한국공관의 냉대가 계속될수록 남한에 대한 북한사람들의 반감은 더 쌓여갈 것이고 그만큼 통일의 길은 멀어지지 않을까 그게 걱정입니다.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 이 글은 이메일클럽 NK리포트로 발송된 내용입니다.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  Tel : (02)724-6650,6523  |  E-mail : nkchosun@chosun.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SITE_MANAGER
Copyright © 2013 NK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