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식 산업자원부 장관이 밝힌 ‘대북 전력지원 구상’은 진의와는 관계없이 그 발언의 배경을 둘러싸고 석연치 않다는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국내 정치적으로 김정일 답방을 위한 분위기 조성 의혹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갑자기 전력지원 문제를 거론한 것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다. 더욱이 북한측이 요청해온 50만㎾의 전력공급과 관련한 남북한 실무협상이 지난 2월 한차례 열린 이후 지금까지 전혀 진전이 없음에도 새삼스레 우리측이 알아서 전력공급 방안을 언급해야 할 것인지도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다.

북한측은 잇단 가뭄과 발전설비 낙후로 인해 심각한 전력난을 겪고 있으며, 이에 대해 매우 절박한 처지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측이 미·북대화 재개와 관련한 첫 공식입장을 밝히면서 ‘경수로 공사지연에 따른 전력손실 보상’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대북 전력지원은 기술적인 어려움과 함께 최소 5000억원의 재원조달 방안 등 선결과제가 많아 신중히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무엇보다 남북한의 전기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에 북한측이 주장하는 직접 송전은 불가능하며, 송전탑과 송전선로뿐만 아니라 변전소, 차단장치, 계통시스템 등 많은 설비가 필요하다. 지난 2월에 열린 실무협상에서 우리측이 ‘선실태조사 후지원방법 결정’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도 이 때문이며, 이는 지금이라고 해서 달라질 이유가 없다.

더욱이 문제는 최소 5000억원에서 최대 1조원으로 추산되는 전력 지원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이냐는 점이다. 정부는 한국과 중국을 연결하는 북한 철도 수송권을 확보하거나 북한 광물을 현물로 받아 비용을 충당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지만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재정에서 충당할 가능성이 높아보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국민적 합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올 들어 급격히 악화되고 있는 우리 경제가 그같은 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검토해봐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말은 꺼내놓고 의문이 쏟아지자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바가 없다”는 상투적인 장막을 치며 대북 전력지원 문제가 공론화하는 것을 꺼리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엄청난 국민적 부담이 예상되는 사안이 밀실 결정을 통해 ‘깜짝쇼’하듯 진행되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된다. 정부는 투명한 절차와 국민적 토의에 그 당부를 묻겠다는 자세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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