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8년 4월 굶주림을 피해, 아버지 손을 잡고 사선을 넘어 북한땅을 탈출했던 유철민(11)군이 남한 품에 안기기 직전인 지난 7일, 중국과 몽골 국경을 넘다 탈진해 숨졌다.

이 같은 사실은 탈북자를 지원하는 선교단체 ‘두리하나’가 9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시한 ‘철민이의 죽음을 전세계에 알립니다’라는 글을 통해 공개됐다.

두리하나 관계자는 “철민이가 다른 탈북자 4명과 함께 중국과 몽골 국경을 넘다 사막에서 길을 잃은 뒤, 30여시간을 헤매다 탈진한 상태로 쓰러져 숨졌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단란했던 철민이 가정이 깨진 것은 97년 4월. 식량난으로 마을 주민들이 쓰러져갔고, 철민이의 두 살 아래 남동생마저 5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끝에 목숨을 잃은 것이다. 산후조리를 잘 못해 친정에 가 있던 어머니도 굶주림으로 죽었다.

배추 재배 농장에서 일했던 아버지 유모(39)씨는 결국 희망 없는 북한땅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몰래 밤기차를 훔쳐 타고 중국 국경까지 가 두만강을 넘은 것이다.

하지만 유씨 부자는 중국에서도 함께 살기 힘들었다. 안정된 직장도 없이 중국 공안들을 피해다녀야 했던 아버지 유씨는 99년 5월 철민이를 잘 아는 조선족에게 맡겼던 것이다.

유씨는 “붙잡히면 둘 다 죽는 거 아닙니까. 할 수 없어서 그렇게 한 것인데 이후 제대로 된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버지 유씨는 작년 12월 남한 선교단체의 도움으로 한국에 오게 됐다.

이후 교회 관계자들은 수소문 끝에 2개월 전 철민이가 있는 곳을 알아내 중국 당국의 단속을 피해 그를 보호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버지를 찾아 남한땅으로 향했던 철민이는, 최근 단속을 강화한 중국 당국에 잡혀 11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장일현기자 ihj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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